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와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 공동 칼럼을 발표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예측 불가능이 희망의 증거
박문수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
저는 북한학을 공부했습니다. 가톨릭 신학자이지만 뒤늦게 관심이 생겨 북한학을 공부하게 되었지요. 제가 한창 북한학을 공부하고 있을 때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습니다. 그때 남북의 분위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다들 꿈에 부풀어 있었지요. 적어도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하노이 회담 전날 남한의 기라성같은 북한 학자들이 각 방송국마다 출연해 다음 날 북미 간에 좋은 일이 있을 것인지 예측하느라 열심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모두 낙관적인 입장이었습니다. 확률은 1/2인데 이날은 희망이 섞여서인지 다들 된다는 쪽에 걸더군요. 결과는 기대와 달리 결렬이었습니다. 결렬된 다음 날 제가 다닌 학교에서 교수들이 ‘북한 전문가는 북한에 대해 전문적으로 틀리는 사람’이라는 자조적 농담을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도 북한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저는 북한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야 어느 정도 언론의 자유가 있으니 어느 일방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대충 반대편 입장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이런 방식이 안 통하는 곳이니 도무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 북한을 공부해 오신 분들은 이런 조건에서도 나름 북한을 잘 읽어내더군요. 물론 이런 분들한테는 비결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나오는 출판물을 주의 깊게 그리고 지독하다 할 만큼 꾸준히 탐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있기 전에 북한이 서서히 빌드업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읽는 분은 모르지만 늘 읽던 분은 미세한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북한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려면 부지런하면서도 우직해야 합니다.
불가 예측성이 희망
제가 학위를 마칠 때는 남북 관계가 냉랭하다 못해 냉각된 상태였습니다. 졸업 후 배운 것을 활용해 보겠다는 꿈은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이 꿈은 더 덧없어졌습니다. 코로나 때문이었겠지만 우울감마저 느꼈습니다. “참으로 남북 관계는 알 수 없구나.” 잠시지만 내가 북한학 공부를 잘 하긴 한 것인가 하는 후회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시 정신을 차렸습니다.
누군가는 남북 관계가 늘 이렇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무언가 될 듯하다가도 늘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 다반사기 때문이지요. 정말 그렇습니다. 남북 관계는 이분들 생각대로 늘 그렇습니다. 희망을 갖기 어렵습니다. 아니 희망하는 것조차 짜증이 납니다. 특히 요즘처럼 남북 관계가 꽉 막혀 있을 때는 더 그렇습니다.
그럼 이런 생각에 머물러야 할까? 제가 신학자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저는 남북 관계의 이런 상황이 오히려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남북 관계는 뜬금없다 할 만큼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급진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이 남북 당국의 공모였든 어느 일방의 절박한 요구였든 간에 모두의 예측을 뛰어넘어 의외의 결과가 있었지요. 이런 경험 덕에 저는 모든 게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도 이것이 끝이나 단절은 아니라 보게 됩니다. 동족 간에 처절한 전쟁을 치렀는데 빠르게 효과가 나타나리라 기대하는 게 오히려 무리가 아닌가 생각하지요. 그래서 저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희망을 갖습니다. ‘동족 간에 전쟁을 치른 경우는 화해하기 위해 적어도 다섯 세대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니 긴 호흡으로 희망하는 것이 필수적이지요.
화해로 나가는 길, 희망
기성세대는 대부분 통일을 염원합니다. 물론 이 통일은 우리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또래나 저보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에게 ‘여러분이 원하는 통일은 어떤 모습인가요? 통일할 때 남북 어느 체제든 다 괜찮은가요? 아니면 남한 체제로 통일해야 하나요, 아니면 북한 체제로 통일해야 하나요?’하고 묻곤 합니다. 이때 저는 이분들로부터 예외 없이 ‘통일은 원하지만 이는 남한 체제로 통일하는 경우에 한하여’라는 답을 듣습니다.
그럼 북한 주민은 우리의 이런 생각에 동의할까요? 이분들은 이런 통일을 일방적이라 여기지 않을까요? 이렇게 되면 말 그대로 통일은 흡수통일이고 현재와 같이 국력 차이가 현저할 때 자신들은 이등 국민이 되는 것인데 이에 동의할까요? 자존심이 강한 이들이 이런 상황을 감내하려 들까요? 더욱이 자신이 망할 지경이 아니고 어느 정도 살만한 상황이라면 이런 선택을 할까요? 아마도 북한 주민이 자본주의 맛을 알고 돈독이 올라 불평등한 조건을 감수하고라도 통일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는 통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북한을 공부하면 할수록 남북 간에 존재하는 깊은 심리적 상처를 보게 됩니다. 아직 치유와 화해를 이야기하는 것이 시기상조라 생각할 만큼 상처가 깊어 보입니다. 그래서 더 기다릴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적대했던 경험을 가진 이들이 모두 떠나고 다시 한두 세대가 더 지날 때쯤이나 마음을 여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보게 됩니다.
물론 그전에도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어느 일방을 굴복시키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합니다. 어차피 남북은 자기 힘만으로는 상대를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니 힘으로 해결할 생각은 버리고 상대방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 가운데 하나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포함됩니다. 더 좋게는 못해도 나쁘게는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가 변할 수 있고 반드시 변하리라 희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긴 호흡으로 화해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방법입니다.
사진 설명
사진1: 남북 선수단의 공동입장 모습 ⓒ 시사저널e “평창올림픽 남북 하나된 개막식”
사진2: 꽃다발 받는 김정은, 2차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019년 2월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과 접경지역인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해 환영단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