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말라리아 공동 방역사업을 자문해오던 ‘말라리아 전문가’ 박재원 가천의대 교수(44)가 지난 14일 라오스에서 불의의 사고로 숨졌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말라리아 자문관인 박 교수는 캄보디아·라오스·민주콩고·북한 등에서 말라리아 퇴치사업에 주력해온 국내 최고의 이 분야 전문가다.
주 라오스대사관 관계자는 17일 “박 교수가 지난 14일 오후 비엔티엔에서 WHO 말라리아 국제자문관회의를 마치고 루앙프라방 꽝시폭포를 방문해 수영하다가 소용돌이에 휩쓸려 숨졌다”고 밝혔다. 박 교수의 한 지인은 “평소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수영에 능숙했지만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라오스 루앙프라방 지역의 봉사활동을 위해 사전답사차 이곳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는 1985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해 말라리아 질병을 연구해 98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민주콩고·캄보디아·라오스·파푸아뉴기니 등 말라리아 빈발국의 현장에 접근하기 위해 비상식량을 등에 지고 밀림을 관통해 의료봉사를 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0년부터는 북한의 말라리아에도 관심을 갖고 남북 말라리아 공동 방역사업에 적극 참여했다. 지난해 4월 처음 북한을 방문한 뒤 지난 1일까지 6차례 방북해 조선의학과학원 산하 기생충연구소와 말라리아 연구를 해왔다.
지난 1일 말라리아 방역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북한 개성을 방문해 자남산여관 정원에서 사진을 찍은 가천의대 박재원 교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제공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국장은 “박 교수는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말라리아 환자를 접하고 풍부한 방역 예방·치료 경험이 있다 보니 북한 측에서도 매우 신뢰하고 경청하는 분이었다”고 애도했다.
정부는 지난해 5·24 조치 이후에도 남북 접경지대에서의 말라리아 창궐이 경기·강원 북부 지역에도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북한 내 말라리아 방역사업 지원을 위한 방북을 허용해왔다. 박 교수는 북한 어린이들의 말라리아 발병 진단을 위한 초음파 진단기기를 북한에 보낼 수 있도록 정부에 반출 승인을 요구하며 관련 보고서도 작성해둔 상태다.
박 교수의 시신은 가족들 입회하에 현지에서 화장됐으며 18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분당 서울대병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유족으로 부인과 아들 두 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