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의 조율 소리에 조명의 밝기가 낮아집니다. 자연스레 공연장 내 소음이 사라지며 모두의 시선이 어두운 무대 위를 향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추어 우아한 전통한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나타납니다. 동그랗게 손을 맞잡고 풍작과 풍요를 기원하는 춤 ‘강강술래’를 추기 시작합니다. 서양의 악기 소리에 강강술래라니? 그런데 낯설지도 난해하지도 않고 이렇게 아름답다니? 첫 무대부터 ‘전통’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경기도 무용단과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 만든 <살풀이> 공연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비탈리가 쓴 바이올린 곡 ‘샤콘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으로 불린다고도 하는데요. 청력의 저 깊숙한 곳까지 건드는 듯한, 카랑카랑한 바이올린의 슬픈 선율이 공연장에 울려 퍼집니다. 그에 맞추어 무용수가 하늘거리는 명주천으로 허공에 곡선을 그리며 진혼무인 살풀이를 춥니다. 어찌 보면 가장 한국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한’의 정서를 서양 악기가 표현할 수 있을까? 문득 떠오른 의문은 공연의 시작과 함께 의식할 새 없이 금방 흩어져버렸습니다. 1에 1을 더한다고, 꼭 2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선한 조화가 익숙한 감정을 더 깊게 자극할 수도 있구나. 우리 악기에 맞춰 출 때와는 또 다른 ‘한’이 표현됩니다.
본 공연을 기획한 김상덕 예술감독은 인사말에서 “본질은 본질과 만난다”고 말합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감정과 애환은 인간 본질의 특성입니다. 그렇기에 각자의 문화와 표현의 도구가 다르더라도, 인간의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킨 우리의 춤과 서양의 음악이 맞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전혀 다른 두 문화의 만남이 주는 새로움과 신선함을 보고 듣고 느끼며, 남과 북의 무용이 어우러지는 무대를 상상했습니다. 각각의 아름다움을 가진 둘이 만나 또 다른 방식의 아름다움이 새롭게 탄생한 것처럼, 남과 북의 만남 또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1 + 1 = 2 의 방식이 아니라, A + B = C 가 되는 방식으로요. 새로움을 탄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역시 만남이라는 확신 또한 함께 얻었습니다.
힘이 넘치는 <진도 북춤>을 보며, 전국 팔도 지역의 전통 무용이 갖고 있을 각자의 아름다움을 그려봅니다. 한반도 구석구석의 아름다움을 우리가 고루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남과 북이 가진 같음과 다름으로 더 풍부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바라고 또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