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2일부터 19일까지 몽골 울란바토르를 다녀왔습니다. 처음 가보는 몽골. 최근 유명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돼서인지 한국인 관광객이 적잖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들 틈에 끼어 넓은 초원을 달리고, ‘쏟아지는 별빛’도 구경하고 싶었지만...이번에는 패스.
6월 13일과 14일에는 UN 정치평화구축국에서 주최하는 ‘여성 평화안보(Women Peace & Secutiry, WPS)’ 회의가 있었습니다. 몽골 외무부가 공동 주최한 이 회의는 평화‧안보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를 제고하고, 젠더 관련 이슈의 진전 상황을 공유하는 자리였습니다. 모르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2000년 UN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 1325’를 채택했습니다. 이 결의안은 분쟁 상황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 분쟁예방 및 해결 과정에서의 여성 참여 확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후 9개의 후속 결의안이 채택됐는데,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은 여전히 주요 사안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여성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평화를 만들어가는 주요 주체로서 여성의 역할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이 회의에는 한국을 비롯해 몽골, 일본, 미국, 호주, 그리고 UN 사무국 직원 30여명이 참여했습니다. 평화와 안보라는, 비슷해 보이면서도 너무도 다른 두 영역이 함께 다뤄졌기 때문인지 회의에는 인도지원‧평화‧인권단체 활동가들, 공무원, 군인, 연구자, UN 직원 등 다양한 직군의 전문가들이 함께 했습니다. 관심 주제도 접근법도 저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참여자 모두가 동의했던 몇 가지 지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평화‧안보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는 여전히 저조하다. 둘째, 평화 구축 과정에 더 많은 여성을 비롯, 다양한 관점과 시각이 포함돼야 한다. 셋째, 무언가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이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그래! 변화를 원한다면 내가 목소리를 내자!’ 다짐하며,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간 ‘울란바토르 프로세스(Ulaanbataar Process, UBP)’에 참여했습니다. 울란바토르 프로세스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시민사회 인사들이 함께 의견을 나누고 공동의 평화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무장갈등 예방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GPPAC) 동북아위원회가 주관하는 이 회의에는 남측, 북측,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몽골 등의 시민사회 인사들이 참여합니다. (그리고 UBP의 패럴랠 회의로 1.5트랙인 울란바토르 다이알로그, UBD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2023년 UBD는 UBP 직전인 6월 15일, 16일 양일간 진행됐습니다)
코로나 이후 두 번째 대면 회의로 치러진 이번 회의에 아쉽게도 북측은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북의 방역 규정이 아직은 엄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북측 대표단은 작년에 이어 회의 주최측에 서신을 전달,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함께 연대하겠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사흘간 이어진 회의는 울란바토르 다이알로그 주요 내용 브리핑, 미국의 동북아 외교 전략에 대한 세션, 몽골의 비핵무기국가 지위에 대한 세션, 하노이회담 시뮬레이션, 동북아 평화 정착을 위한 시민사회의 공동 전략 모색 및 계획 수립 세션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프로그램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시뮬레이션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북측과 미측으로 나뉘어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고, 많은 양의 배경 자료를 받았습니다. 이와 함께 시뮬레이션 진행자는 한 가지 중요한 지침을 내립니다. ‘양측은 합의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 물론, 합의에 이르든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든, 그것은 당사자들의 결정이었습니다. 참가자가 많았던 지라, 북미 각각 두 개의 팀을 만들어 그룹 A와 B가 회담에 임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그룹 B는 합의에 이르러 ‘역사적인’ 공동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룹 A는 현격한 견해차로 과거 2019년 그랬듯,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진행자는 그룹 B에게 합의에 이른 결정적인 요인을 물었습니다. 그룹 B의 참가자들은 ‘양측 모두 합의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컸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이것은 비단 ‘허구적 환경’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긴장 고조와 교착 국면의 장기화는 어려운 현실 너머를 상상하지 못하는, 그래서 평화를 향한 의지마저 꺾여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조금은 씁쓸하지만, 그래도 작은 희망을 발견하며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