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와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 공동 칼럼을 발표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오물 풍선과 회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장 강주석 신부
영화 ‘와스프 네트워크’(Wasp Network, 2019)는 1990년대 미국 내에서 활동했던 쿠바 첩보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당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는 쿠바 정권을 반대하기 위해 결성한 ‘탈쿠바민’ 단체의 활동이 활발했었다. 일부는 쿠바 본토에서 테러까지 자행했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쿠바 정부는 첩보원들을 미국에 거짓으로 망명시켰다. 애국심으로 무장한 요원들이 ‘반(反)카스트로’ 단체 내부에 잠입해서 활동한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에서 주인공은 ‘위장 망명’ 후 ‘반(反)카스트로’ 단체의 비행기를 운행한다. 그는 바다에서 표류하는 ‘탈쿠바민’을 구조하는가 하면, 아바나 상공까지 날아가 쿠바 정권을 비난하는 ‘삐라’를 뿌렸다.
영화에 등장했던 삐라 살포는 실제로 미-쿠바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6년 2월, ‘탈쿠바민’에 의해 결성된 ‘구호를 위한 형제단’(Brothers to the Rescue) 소속 비행기가 쿠바 영공에서 카스트로 정권을 비난하는 삐라를 살포하다가 쿠바 공군기에 의해 격추되고 만다. 민간 항공기가 격추된 후 미국은 쿠바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는데, 이렇게 한층 더 악화된 미국과 쿠바의 관계가 개선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경제제재로 직접적인 피해를 겪어야 했던 쿠바 주민의 고통도 더 오래 이어진 것이다.
북한은 지난 5월 28일 야간부터 오물과 쓰레기를 매단 풍선들을 남측으로 살포했다. 북한이 날려 보낸 ‘오물 풍선’은 접경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발견됐는데, 경기도의 주민들은 한밤중에 위급 재난 문자를 받기도 했다. “북한 대남전단 추정 미상물체 식별”과 같은 메시지에다영어로 쓰인 공습(Air raid)이란 표현도 놀란 마음에 부채질을 더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린 데다 심상치 않은 내용까지 읽은 사람들은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남전단 풍선’이 살포되고 다음날인 5월 29일 김여정 조선로농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자신들이 보낸 ‘오물짝’들을 “진정어린 《성의의 선물》로 정히 여기고 계속 계속 주어담아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저 한국것들의 눈깔에는 북으로 날아가는 풍선은 안보이고 남으로 날아오는 풍선만 보였을가”라며 대남전단 살포는 대북전단 살포에 따른 대응이란 사실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대북전단 금지법’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나온 이후, 올해 들어 ‘북한인권단체’들의 대북전단 활동이 다시 활발해졌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5월 10일에만 30여만 장의 대북전단이 살포됐으며, 보름 후인 26일에는 북한의 국방성이 담화를 통해 대남전단 살포를 예고했었다.
그간의 남북관계에서 대북전단 살포는 북한이 가장 강하게 반발했던 사안이었다. 삐라를 날려 보내는 행위 자체가 바로 남북의 적대를 드러내고 있으며, 갈등을 계속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북한은 2020년 6월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도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았었다. 당시에도 탈북민 단체가 대북전단 50만 장 등을 대형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내자, 북한은 담화를 통해 이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사건으로 규정하고 “북남공동련락사무소부터 결단코 철페할 것”을 미리 공언했었다.
북한이 6월 2일 ‘오물 풍선’ 살포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땅에서 ‘삐라’를 둘러싼 대결과 갈등은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 국방성은 담화에서 “한국이 공화국삐라살포를 재개하는 경우”에 오물 풍선을 다시 집중적으로 살포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일부 단체가 계속 대북전단을 날려 보내고, 북한이 다시 ‘오물 풍선’을 대량으로 살포한다면, 우리 정부는 과연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더 많은 양의 대북전단을 살포한다고 해서, 또는 더 성능이 좋은 대북확성기를 사용한다면 ‘삐라 사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현재 남북 간의 소통은 단절됐고 서로에 대한 불신은 극한에 도달하고 있다. 이처럼 강 대 강의 대치만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대남전단’ 살포가 계속 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 만일 북한 당국이 정말 감내할 수 없다면, 아니 남한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면,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명동대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서 화해, 일치, 평화가 회심(回心)의 은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회심을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우리의 삶과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마음의 새로운 변화”라고 설명했다. 그리스도교에서 ‘회심’이나 ‘회개’로 번역하는 그리스어 ‘메타노이아(Metanoia)’는 보통 가던 길에서 ‘돌아서다’는 의미로 설명되는데, 단어 자체에는 ‘앎’(노에오)을 ‘넘어서는’(메타)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따라서 회심은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것이고, 지금까지 안다고 믿었던 ‘편견’을 넘어서 ‘새로운 인식’을 찾는 것이다.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2024년 6월부터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칼럼’을 연재하고자 한다. 평화를 위한 ‘회심’을 강조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간절한 호소를 기억하면서, ‘공동칼럼’이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찾는 노력이 되기를 희망한다. 파멸이 아니라 평화를 원한다면 한반도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한다. 진정한 평화를 원한다면 상대를 비난하고 위협하는 적대가 아니라, 서로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때로는 감내할 수도 있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야 한다.
사진 1) 영화 <와스프 네트워크> 포스터와 스크린샷 ⓒ넷플릭스 제공 사진 2) 1996년 ‘구호를 위한 형제단’이 떨어뜨린 삐라 ⓒ위키피디아 사진 3) 29일 경기도 파주시에서 발견된 북한의 대남전단 풍선. ⓒ연합뉴스
* 단체 소개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분단의 현장에 자리하고 있는 천주교의정부교구가 2015년 9월에 설립하였으며,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이웃 종교인들, 그리고 시민 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이 땅의 화해와 평화 정착 방안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북한의 식량난이 가장 극심했던 1996년 6월,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6대 종단 및 시민사회 인사들이 함께하는 국민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인도적 대북지원과 남북교류협력사업,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다양한 정책사업, 시민참여활동, 국제연대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