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대표에게 길을 묻다 17) 윤여두 대표, "먹고 사는 일은 이데올로기와 관계 없어… 한반도 차원의 농업•식량 문제 같이 고민해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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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Date
2022-10-0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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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2020년 하반기 <공동대표에게 길을 묻다> 시리즈를 기획하고 현재까지 시리즈로 대표님과의 인터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대북협력과 평화운동에 매진하는 민간단체로 앞으로의 길을 모색하는 게 기본적인 목적입니다. 창립 26주년인 올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창립과 운동의 취지를 다시 되살리고 변화된 조건과 환경에 맞는 우리의 운동을 어떻게 설계하고 준비해 나가야 하는지 공동대표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열일곱 번째 인터뷰 자리에 모신 분은 윤여두 상임공동대표입니다. 윤여두 대표는 우리나라 농업기계산업의 1세대로 초창기 농업기계 국산화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70년대 초반, 농림원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GMT 회장,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동양물산기업 부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사단법인 매헌윤봉길월진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여두 대표와의 인터뷰는 지난 9월 22일 오전, 마포에 소재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 인터뷰의 첫 머리를 근황으로 열고 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기업 경영에서 손을 뗀 지는 몇 년 되었고, 지금은 여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상임공동대표와 (사)매헌윤봉길월진회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가 있은 지 90주년 되는 해로, 최근 여러 기념사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그 일들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기도 하지요."
- (사)매헌윤봉길월진회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사)매헌윤봉길월진회(이하 월진회)는 과거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로 의거하러 떠나기 전 조직했던 ‘월진회’를 유지 계승한 단체입니다. 친일파가 조직한 ‘일진회’에 대항하여 만든 조직으로, 윤봉길 의사가 초대 회장으로 추대를 받았고, 일제 강점기에도 유지되다가 지금은 제가 14대 회장을 맡고 있어요. 윤봉길 의사는 우리에게 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고, 해외 일부에서는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농민 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월진회 역시 야학과 농촌 계몽 운동 등으로 열심히 활동했지요. 저는 과거 대학에 다닐 때부터 윤봉길 의사가 한학에 조예가 깊은 계몽 운동가였다는 점에 관심을 두었고, 지금 월진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대표님은 19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창립 때부터 함께 하셨고, 2000년에 공동대표가 되셨지요. 벌써 22년이 지났네요.
"1967년에 서울대학교 농과 1기생으로 입학한 후 저는 평생을 농업과 농기계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에 북에 가보니 농기계가 거의 없더군요. 2002년 방북 당시, 모두 손으로 하는 협동농장의 모습을 보고 농기계를 들여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인데요. 첫째는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싶었고, 둘째로는 기계로 해야 수확량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으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대표로서 북쪽에 농기계를 보급하고 농기계 수리공장을 지었어요. 북에서 사용하던 농기계를 수리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남쪽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했지요.
사실 과거에는 농기계 산업에서 북한이 남쪽보다 먼저 발전했습니다. 1950년대에 북한은 뜨락또르(트랙터)를 갖고 있었어요. 소련제 뜨락또르를 가져와 개조해 28마력의 뜨락토르를 만들었지요. 그러다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타이어나 다른 부품 등 수급이 어려워졌습니다. 방북했을 때 보니, 벼 베는 것도 전부 낫으로 베더군요. 모내기는 조금 늦어져도 상관없지만, 벼 베기는 시기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칩니다. 그래서 한 달 안에 다 처리해야 하는데 손으로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그래서 이앙기, 콤바인 등도 북에 전달했습니다. 새 것뿐 아니라 중고품도 같이 보냈어요. 북은 인건비가 싸고 기술이 좋기 때문에, 거기서 수리를 하며 사용했습니다."
- 북에 대북지원을 한 여러 단체 중에서 농업, 특히 농기계 분야의 협력사업을 진행한 것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유일했습니다. 특히 중고 농기계 지원에서 농기계 수리공장, 농기계 조립공장 등으로 단계적으로 사업을 발전시켜 왔는데요, 그 과정에서 잘했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아쉬운 점은 어떤 점을 꼽고 계신지요?
"북쪽의 농업 생산성 증대를 위해 중고 농기계 지원에서부터 농기계 수리공장 건설로 사업을 확대하다가, 야심차게 추진한 일이 농기계 조립공장을 북쪽에 짓는 일이었습니다. 2005년 9월이었는데요, 북쪽의 평안남도 강서군에 위치한 ‘금성 뜨락또르 공장’ 옆 부지에 다목적의 기계 조립 공장을 세웠습니다. 150만 달러 정도를 들여 최신 설비를 갖추고 컨베이어 벨트 등도 넣어 트랙터와 콤바인 등을 만들 수 있도록 했어요. 당시에 예산이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고품과 부품을 가져가 해체와 재조립을 하는 것으로 우선 시작했지요. 그러면서 조립 기술도 전수해 주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습니다. 당시에 지은 조립공장 이름이 <우리민족/금성/농양 농기계 공장>인데, 규모가 작지 않았어요. 사실 어떤 일이든지 새 것을 주는 건 오히려 쉬워요. 하지만 일을 이렇게 진행하면 그건 일회성 사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고 농기계를 전달하면, 정비 기술도 알려줄 수 있는 등 사업의 내용이 많이 달라지지요. 단순한 지원 사업이 지식교류 사업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농기계 조립 공장을 지으면서, 이걸 좀 더 발전시키면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중국에 수출도 할 수 있는 농기계 조립 공장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했어요. 그런데 2010년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고 더 이상 이 일을 지속하지 못했던 게 많이 아쉽네요.
또 하나 아쉬운 일로는 북쪽이 사용하던 뜨락또르의 엔진을 교체하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북에서 새로운 농기계를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이 기존에 사용하던 뜨락또르를 수리해 사용하는 게 경제성이 훨씬 있는 일이지요. 다만 북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뜨락또르가 28마력으로 힘이 약해요. 우리는 35마련 엔진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북의 28마력짜리 뜨락또르를 엔진만 교체해서 35마력으로 만들면 힘센 엔진을 탑재한 북한형 농기계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남과 북의 교류가 재개되면 이 일은 반드시 하고 싶어요. 이건 단순히 식량을 지원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사업이 될 수 있어요.
사실 북은 과거 우리 남쪽보다 농사짓는 체계 면에서 더 나았지요. 50년대부터 농경지 정리를 했으니까요. 농경지 규모가 우리는 1천 평 정도면 큰 건데, 북쪽에서는 2천~3천 평의 큰 규모가 많았어요. 협동농장 체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넓은 농지를 경작할 물자와 기계가 부족했어요. 조직이나 시스템은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북에 기술이 없거나 인력이 없거나 한 게 아니라 경작에 필요한 물자가 부족한 게 가장 큰 약점이었지요."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상임공동대표로서 하시고자 하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요?
"이제까지 계획했던 사업 중에 진행되지 못한 것들이 남아 있고, 또 우리민족이 ‘서로 도울’ 일이 아직 태산같이 남아있다고 봐요. 북쪽의 장점과 남쪽의 장점을 접목해서 사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단순히 돈을 모아서 전달하는 것은 미래지향적인 대북사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북이 자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식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북한은 잠재력이 굉장히 많은 나라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기술이 좋고, 생활력도 좋습니다. 지금 당장의 물자 부족이라는 상황을 극복하면 훨씬 나은 미래를 남북이 함께 그려나갈 수 있지요."
- 마지막으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처음 방북한 이후 벌써 2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니 북에 대한 협력 사업도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겠지요. 우리가 쓰는 농기계도 크게 발전하면서 이제는 대부분이 전자화, 자동화되고 있고요. 반면 북쪽의 농업 상황은 지난 20년간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면밀히 분석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왕래를 못한다고 포기하기 보다는, 가능할 때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말이지요. 물은 결국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이에요. 농업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기술과 물자를 지원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북은 식량이 부족하고, 남은 쌀이 남아 돕니다. 북쪽은 물자가 부족하고 남쪽은 축분이 넘쳐서 문제가 될 정도에요. 농업 부분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식생활’과 연결됩니다. 분명한 건, 식량 문제, 즉 먹고 사는 일은 이데올로기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식량 자급률이 매우 낮잖아요. 다른 것을 모두 내려두고, 한반도 차원의 농업과 식량 문제는 같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에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과거부터 농업 분야 사업을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협력을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려면 서로 부담이 큽니다. 하지만 민간 차원에서 진행하면 더 자유롭지요. 지금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하나씩 개발해서 사업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사업 진행보다 준비가 더 어렵습니다. 북과 협력한 역사가 길고 또 과거 사업경력도 많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지금의 시기를 슬기롭게 보내며 앞으로를 잘 준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