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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후기] 한반도 평화의 마르지 않는 지하수, 우리민족에서의 시간들 - 김영민

작성자/Author
관리자
작성일/Date
2019-05-0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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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19년 1월부터 5월까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인턴으로 함께한 김영민씨의 후기를 나눕니다. 현재 미국의 UC버클리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있어, 군복무 후 한국에서 머무른 길지 않은 시간 중 4개월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인턴으로 근무했습니다. 인턴생활은 끝났지만 앞으로도 항상 응원할게요!



한반도 평화의 마르지 않는 지하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의 시간들


김영민


올해 24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저와 동갑입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고, 제가 걸음마를 떼고 배우고 커가는 동안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역시 (더 빠르고 성숙하게) 성장해온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 1월, 저는 인턴으로서 KSM과 교차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앞으로의 삶에 자양분이 될 경험을 쌓았다는 사실은 저에게 매우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초등학교 이후로 해외에서 공부한 저에게 북한은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존재였습니다. 분단정국이라는 환경 속에서 자라왔고 제가 속한 사회와 인간관계 역시 동일한 영향을 받아왔지만, 한국을 떠나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북한은 점점 제 삶에서 희미해져갔고, 어느 샌가 TV 속보에서나 상기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동북아 지정학을 공부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열정이라고 고백하는 한 한국인으로서, 북한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은 사실 너무나도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절박함은 제가 KSM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더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배우게 해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논리가 첨예하게 - 그리고 많은 경우 적대적으로 - 충돌하는 국내 및 국제사회에서 선명하고 치우치지 않은 대북 스탠스를 유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에서부터도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힘들고, 뿌리 깊게 내린 남남·남북 불신은 장기적인 전망을 종종 위협하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근무했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가장 깊은 뿌리를 가꾸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인도적 가치를 나누는 일입니다.

북한이라는 특수성과 지속되는 어려운 대북지원 여건 때문에 핵심사업에 참여할 기회는 제한적이었지만, 우리민족에서 쌓은 경험 하나하나는 그 동안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인도주의에 대해 새로운 지평선을 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공부하는 한민족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헌 교과서들을 수거하면서 민족 화해의 본질을 배웠습니다. 평화축구 교실에 참여하면서 화합의 가치를 풀뿌리에서부터 심는 과정을 목격했습니다. 포럼과 컨퍼런스에 참여하면서 한반도의 목소리를 꾸준히 소통하고 전달하는 노력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영문 레터 창간호를 제작하면서 그러한 노력이 조금씩 구체화 되는 과정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음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하나하나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4개월 동안 인턴하면서 느낀 점들을 간단히 적어보자면, 첫 번째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공동체 및 시민단체들과도 긴밀한 연대를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한국의 관점과 해외의 관점 사이에 일정한 간극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하다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에게 분단이란 매 순간 사회 곳곳에 상존하는, 긴박하고도 당면한 문제이지만, 해외의 시각에서 한반도 상황은 그저 복잡하게 얽힌 일련의 지정학적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근 몇 년 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즉 한국 정부가 대북정책을 타 국가들의 아젠다와 조율함에 있어서 발생해온 몇 차이점들에서 이 현상은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서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오고, 지속적인 대화와 의견 교류를 통해 점진적으로 이 차이를 줄여나갈 때에 변화의 동력은 비로소 만들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꾸준하게 주도해온 인도지원 국제회의와 다양한 정책포럼들은 조금씩, 하지만 확고하게 합의의 공간을 창출해내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두 번째로, 한반도 평화과정을 구축해 나감에 있어서 민간단체의 목소리가 더 반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존 레더라크 노트르담 대학교 교수가 제시한 평화 피라미드 모델에 따르면, 최상부에 위치한 ‘최고 지도층’(top leadership)은 본질적으로 정치적·단기적 우선순위에 비중을 두며, 협의가 가능한 상대 역시 제약이 상당한 편입니다. 2018년 남북한과 미국의 ‘최고 지도층’이 되살린 평화의 여정은 과연 놀랍고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과거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톱-다운’ 협의과정의 출발은 거침없었으나 “악마들이 도처에 잠복해있는” 디테일을 논하기 시작하자 급격하게 경색되었고, 언제부턴가 저희는 청와대와 백악관의 발표성명만 초조하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대북교류의 암흑기였던 2000년대 말과 2010년대 중순 사이에서도 대화의 끈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맥락과 관계없이 오직 인도적 가치에 의지해 구호활동과 재해복구활동 등을 전개한 민간단체들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시원한 소나기와도 같은 정상급 회담들은 분명 극적이고 획기적인 역할을 맡지만, 이내 메말라버리는 땅에 계속해서 수분을 공급할 지하수, 즉 민간단체의 역할 역시 필수적입니다. 남북평화 대화과정에 민간단체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장됨으로써 더욱 지속가능한 협력체가 형성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도주의적 가치는 위협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작년 하반기 이래로 평화협의과정이 난관에 봉착하면서, 인도적 논의를 포함한 많은 사안들이 군사안보적 고려에 의해 잠식되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국가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비핵화 과정 역시 대화를 통해 빈틈없이 진행되어야 하겠으나, 가장 좁은 의미에서 정의되는 인도주의적 노력이 급변하는 정세에 의해 흔들려선 안 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국제사회의 공동조치를 주도하는 UN의 역할이 핵심적입니다. UN 대북제재 결의 2397호 25항은 제재가 북한 주민들의 인도주의적 상황에 부정적인 역할을 미치거나 개선활동을 제한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인도주의적 목적에 한해서는 면제를 허용할 것임을 명시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면제를 허가받음에 있어서 국내외의 지원단체들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서상의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적 지원 허가에 한해 추가적 조치를 통해 정체된 지원 활동을 타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북한이라는 곳에 대해 더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했지만, 알 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음을 느꼈고, 북한에 대한 ‘충분한 이해’조차 아직 요원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안주하던 지식의 안식처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싸울 때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믿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회복함에 있어서 핵심은 상호간의 인식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입니다. ‘장마당과 선군정치’의 저자 헤이즐 스미스 런던대학교 SOAS 교수는 “북한은 유별나게 불가사의하다는 ‘상식’화된 가정”은 더 냉철한 분석을 가로막으며, 주민들을 비인간화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근무하면서 무엇보다 감사했던 것은, 북한에 대해 공부하고 배우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온갖 오해와 편향된 관념들이 파열음을 내며 부서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기에 인턴을 마무리하는 지금, 저 역시 미래에 아주 작은 기여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해가고 이해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사무총장님, 국장님, 부국장님, 부장님, 간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구보다도 경험이 부족하고 지식은 얕았지만, 언제나 귀 기울여 주시고 따뜻하게 돌봐주신 덕분에 짧은 시간 속에서도 깊은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재개할 때도 한반도의 상황에 대한 한국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국제사회와 공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겠습니다. 나아가 여기서 쌓은 귀중한 추억들이 삶 속에서 새롭게 적용되는 것을 경험하리라 확신합니다.

모두가 지향하는 가치, 가장 보편적인 가치가 뚜렷해질 때 사회는 시민운동의 힘을 발견합니다. 가장 깊은 본질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의 변화에도 꿋꿋하기 때문에 우리는 시민사회에서 위로를 얻습니다. 동갑내기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더 닮아가고 싶고, 앞으로도 계속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소중한 인연과 기회 속에서 빠르게 지나간 4개월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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