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한겨레 서울&] 헌 교과서 수거사업 언론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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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Date
2018-03-0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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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에서 실시된 헌 교과서 수거사업이 2월 9일판 한겨레신문 '서울&'의 커버스토리에 실렸습니다.

 

헌 교과서 한 권이 살려낸 평화의 날갯짓


‘헌 교과서 날개를 달다’ 캠페인 현장 폐지로 팔아 북한 어린이 등 지원




“평소에는 종이가 의미 없고 하찮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헌 교과서도 중요하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지난 2일 오전 송파구 장지동 송례초등학교(교장 최치수) 5학년 라온반 김유준(12) 군은 홍선미 담임 선생님의 설명을 듣다가 갑자기 생각이 떠오른 듯 말했다. 2006년생인 같은 반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나타냈다.

홍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남북통합 엔지오(NGO·비정비기구)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사무총장 강영식)이 서울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서울시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전병식)와 함께 진행하는 ‘헌 교과서 날개를 달다’ 캠페인을 설명하던 중이었다.

홍 선생님의 설명은 초성 퀴즈로 시작됐다. 선생님이 칠판에 하얀 분필로 써놓은 자음 4개, ‘ㅎㄱㄱㅅ’이 무엇인지 맞히는 퀴즈다. 어른들은 한참 고민해도 답을 못 맞힐 것 같은 퀴즈에 아이들은 금세 ‘헌 교과서’라 답한다.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종업식을 남겨둔 이맘때가 되면 ‘헌 교과서’는 이미 서울 시내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익숙한 단어가 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헌 교과서 수거’ 캠페인은 세 기관이 마음을 모아 2011년 7월부터 8년째 해왔다. 송례초등학교는 2014년 개교 때부터 참여했다.

해마다 2월과 7월에 학생들이 다 배운 교과서를 모아 폐지업체에 판 돈으로 북한·중국 동포·러시아 고려인 어린이들을 돕는 것이 바로 ‘헌 교과서 날개를 달다’ 캠페인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구체적으로 “북중 접경지역인 함경북도 지역의 유치원과 탁아소, 중국 동북3성 지역의 조선족 학교, 그리고 러시아 볼고그라드의 고려인 한글학교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서울의 한 학생이 헌 교과서를 기부하면, 북한 유치원 어린이 한 명이 점심을 먹을 수 있고요, 한 학급이면 러시아 고려인 친구들에게 한국어 교재를 지원할 수 있다고 해요. 또 한 학교가 캠페인에 참여하면 중국 동포 학교 도서실에 튼튼한 책장을 보낼 수 있답니다.”

홍 선생님이 교실의 대형 모니터에 관련 내용을 띄워놓고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 순간은 아마도 유준이와 친구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한’이라는 단어를 ‘자신과 직접 관련 있는 무엇’으로 경험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내가 모아서 낸 헌 교과서가 북한 어린이의 점심 한 끼가 된다.’ ‘별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헌 교과서가 유준이와 친구들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북한’을 ‘가깝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헌 교과서 날개를 달다’ 캠페인은 북한과 국외 동포를 돕는 캠페인이면서,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는 캠페인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평화로운 한반도’를 꿈꿀 수 있는 값진 체험의 순간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통일연구원 박주화 부연구위원이 1월30일 발표한 ‘20~30대 통일의식에 대한 변명’이라는 보고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 연구위원은 글에서 “20~30대가 여성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에 비판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뒤 “그것은 그들이 1991년 탁구 단일팀이나 그 뒤 축구 단일팀의 기억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에 따라 “우리 젊은이들은 올림픽 때 한국과 북한이 단일팀이 아니라 개별팀으로 참가하는 것을 당연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는 올림픽 단일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40대 이후 세대와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박 연구위원은 “학생들에게 교과서나 뉴스가 아닌 경험을 통해 북한·통일·평화를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유준이와 친구들은 ‘헌 교과서 날개를 달다’ 캠페인에 참여함으로써 제대로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실질적 체험’ 덕인지 아이들은 곧 상상의 나래를 크게 펼쳐나갔다.

“평창올림픽 성화봉 마개도 디엠제트(DMZ·비무장지대) 철조망을 녹여서 만든 거래요.”

안시연 양의 말에 친구들은 “그거 녹여도 되는 거예요?” “철조망을 녹이면 삼팔선이 갈라지잖아요?”라며 말을 쏟아냈다.

학생들은 이날 오후 ‘모둠 발표’ 주제도 ‘평창올림픽과 남북단일팀’으로 삼았다. 전체 22명의 학생은 3~4명씩 모둠을 이루어 평창올림픽과 남북단일팀에 대해 조사해온 내용을 발표했다. 학생들은 제각각 8절지 크기의 파란색 도화지에 한반도기랑 평창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반다비 그림을 붙여놓은 뒤, 다양한 글씨체로 ‘남북단일팀’의 의미를 써나갔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이성환 학생도 친구 둘과 함께 작성한 발표문에서 “남북단일팀을 하려는 이유는 북한과 평화·통일 이런 쪽을 위한 것 같다”며 나름의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학생들의 분석은 대부분 서툴렀지만, 스스로 남북관계를 평가하고 전망하는 기회를 경험한 것이다. 이 또한 ‘헌 교과서’가 이들에게 준 선물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헌 교과서 수거를 맡은 손종도 부장은 “이 캠페인은 자신의 작은 기부와 활동이 우리 민족의 큰 부분과 연결된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어떤 교육보다 더 큰 통일·평화 교육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남북 단절의 골이 깊어진 지난 몇 년 동안, 서울 시내 학생들은 엔지오와 함께 헌 교과서에 날개를 달아주는 캠페인을 계속해왔고, 날개를 단 그 헌 교과서들은 다시 아이들 마음속에 ‘평화’라는 작은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 ‘작은 날개’를 어떻게 더 키워줄 수 있을지, 교육 현장을 넘어 서울 시민 모두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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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교과서 한 권이 살려낸 평화의 날갯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