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경향신문] 강영식 총장 인터뷰 - 달라진 남북 환경에 맞춰 '20년 된 대북지원' 업그레이드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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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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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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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강영식(55)은 예정대로라면 인터뷰가 지면에 실릴 무렵 남북 공동 말라리아 방역사업 협의차 북한을 방문 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지난 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문제 삼으며 방북은 무산됐다.


대북 강경 태도로 일관하던 박근혜 정부가 물러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남북을 가르는 빙벽(氷壁)은 아직 굳건하다. 보수정권 9년을 거치며 남도 북도 많이 변했다. 20년 전엔 북한 동포를 돕는 데는 좌우를 가리지 않았지만 북한 핵·미사일 개발, 보수정권의 ‘반북 공세’ 영향으로 지금은 ‘인도적 지원’에서조차 의견이 갈린다. 북한도 ‘가다 서다’ 하는 남측의 대북지원 사업이 미덥지 못한 듯하다. 북의 경제사정도 호전되고 있다. 여러모로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사업은 지난 20년을 성찰하며 변화를 모색해야 할 전환기에 서 있다.


국제사회는 상황이 좀 다르다. 유엔은 핵·미사일 개발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북한당국과 협력해왔다. 유엔과 북한 간의 협력을 위한 유엔전략계획(2017~2021년)에는 유니세프(UNICEF),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 13개 산하기구가 식량 생산성 제고, 여성·아동·노인 등 취약계층의 영양상태 개선, 물·위생 시설 보급, 양질의 교육 제공 등 14가지 항목에 걸쳐 협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내에는 주로 북한 핵·미사일 제재에 앞장서 온 것으로 비쳐져온 유엔의 또 다른 얼굴이다.


북한주민접촉 승인을 받아 방북을 준비 중이던 강영식을 지난 5일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만났다. 강영식은 지난 20년간의 대북지원과 사회·문화 교류를 비판적으로 성찰해 업그레이드할 시점이라며 “대북지원도 1회성 단기지원이 아니라 북한이 재난과 사회적 위기를 스스로 극복해 나갈 복원력을 갖추도록 돕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글로벌 스탠더드’이자,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헌법정신에 비춰볼 때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이기도 하다”면서 “인도적 지원이나 민간교류 없이 대북 제재만을 강조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 “대북지원 성찰과 업그레이드 필요”


- 문재인 정부 대북지원 첫 사업으로 말라리아 공동방역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박근혜 정부 이후 4년 만에 재개되는 대북지원인 만큼 남북 주민에게 ‘윈윈’이 되는 사업이 국민적 공감대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말라리아는 북한 주민은 물론 경기 북부나 강원, 인천지역 주민의 건강과 안전에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 보수진영에선 ‘국제사회는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데 우리는 대북 접촉이 봇물을 이룬다’고 지적한다.


“맞지 않는 이야기다. 미국, 유럽연합(EU) 등도 북한 핵·미사일과 관련해 대북 제재에 앞장서지만 인도적 지원은 용인한다. 미국도 자국민 몇 명이 북한에 억류돼 있지만 민간인의 북한 방문을 차단하지는 않는다.”


- 지난해 북한 대규모 수해 당시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도 국제사회에 대북지원을 호소했다. 대북 제재와 별개로 인도적 지원은 ‘글로벌 스탠더드’인 셈인가.


“그렇다.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를 지낸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해야 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물론 남북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대북지원에 정치적 성격이 포함돼 있는 점도 맞다. 그러나 인도적 대북지원이나 민간교류까지 막으면서 대북 제재만 강조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제재의 설득력도 떨어진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퍼주기 논란, 핵개발 전용론 등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논리가 확산되면서 대북지원·교류가 북한의 핵개발에 이용된다는 오해가 커졌다.”


- 대북지원은 허용하더라도 남북교류는 시기상조라는 인식도 있는 것 같다.


“민간교류는 점진적이어야 하는 의견들도 있는 것 같다. 남북관계가 가장 활성화된 게 2006~2007년인데 민간교류가 다양하고 활발했지만 ‘질서 없다’는 지적도 있던 게 사실이다. 민간교류가 복원되더라도 이런 점들을 성찰해볼 필요는 있다. 앞으로 대북지원이나 사회·문화 교류는 단순히 10년 전으로 돌아갈 게 아니라 한반도 평화분위기 조성이라는 측면에서 통합적이고 포괄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자치단체, 종교계 등 각 부문의 자율적 교류는 존중하되 통합적 전략하에 진행될 필요가 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단순 지원이 아니라 북한의 중장기 개발에 실질적 도움이 되면서도 사업 내용이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러려면 남한의 민간단체들이 대북지원에 대한 통합적인 전략계획을 공동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유엔의 13개 산하기구가 북한 외무성과 맺은 개발협력 사업(2017~2021년)에 대한 유엔전략계획 합의서는 좋은 참고가 된다. 북한의 영·유아 사망률 감소, 식량 생산량 목표를 세우고 로드맵을 만들어 지원에 나서는 방식이다. 1회성 단기지원이 아니라 북한이 재난이나 위기를 극복할 복원력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북지원 사업이 업그레이드돼야 할 시점이다.”


- 업그레이드 방안은 어떤 게 있나.


“산림녹화 사업을 예로 들면 남북이 공동기구를 만들고 함께 법을 만들어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상황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투명성 논란을 불식하는 조치도 마련해야 ‘퍼주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가 지난해 ‘남북 간 인도지원과 개발협력에 관한 법’을 발의한 상태다. 인도적 지원을 법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 남북교류에 관해 정부의 승인 절차도 바뀔 필요가 있나.


“북한주민접촉, 물자반출, 방북 등 절차 때마다 정부 승인을 받도록 돼 있는 것을 ‘포괄승인제’로 바꿔야 한다. 어떤 단체가 1년간 사업을 하기로 하고 정부의 승인이 나면 방북·물자반출·북한주민접촉은 자유롭게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지원 물자도 금지 목록을 명확히 명시하되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민간단체들도 군사적 전용 우려가 있거나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에 포함된 물자들을 반출하지는 않는다.”


- 정부가 권한을 내려놓을지 의문이다.


“현재의 남북교류협력법은 규제에 강조점이 두어져 있는데 ‘촉진법’으로 바꾸고, 제재는 별도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은 대북 제재를 법에 의거해 진행하고 있다. 개성공단도 가동 중단이 필요하다면 한시법을 발의해 국회 통과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게 맞다. 대북정책이 통치행위가 아닌 법에 근거해 이뤄지는 게 안정적인 남북관계를 위해 필요하다.”









■ “북한 주민들 아직도 배고프다”





- 지난 9년간 중단돼 곤란을 겪은 사업들도 꽤 있을 것 같다.


“수액제 등을 만드는 평양 정성제약의 경우 의약품의 안정적 생산을 위한 필수 기자재를 지원했어야 하는데 중단돼 버렸다. 정치상황에 따른 것이긴 해도 약속했던 지원이 끊겨버리니 북측 관계자들은 ‘안 받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할 거다. 지난 9년간 남측과의 사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다시 지원하겠다고 해도 북한이 바로 받을 것 같진 않다. 대북지원이 제자리를 찾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 북한이 최근 몇 년 새 식량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는 관측이 많던데.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북한 주민들이 배고픈 상태로 잠자리에 든다. 북한의 식량 필요량을 언제까지 ‘굶어 죽지 않을 수준’으로 판단해야 하나. 적어도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 수준에서 판단해야 한다. 20년 전 잣대로 개발협력·인도지원을 판단해선 안된다. 북한 주민의 인간적인 삶의 기준을 높여야 하는 관점에서 지원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 지난 9년간 북한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해외 동포나 국제기구 관계자들에 의하면 일선 기관의 자율성이 커졌고, 식량 증산 등 주민들의 인도적 위기 해소를 위한 북한당국의 노력도 돋보인다고 한다. 북한의 복원력이 높아지면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데, 변화의 폭을 넓히고 가속화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북한의 변화를 외면한 채 체제 경직성에만 주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비교하면 어떤가.


“이명박 정부 때는 천안함, 연평도 사태 등에도 불구하고 말라리아 공동방역, 수해지원, 소규모 식량지원 등이 있었다. 반면 인도적 지원은 보장하겠다던 박근혜 정부 때는 민간단체의 접촉이 거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을 하자 북한이 오히려 더 닫아버렸다. (드레스덴 선언에서) 북한 영·유아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을 하겠다면서 ‘꽃제비’를 거론하고, 북핵 폐기 등과 연계시켰다. 민간지원은 막으면서 정부가 지원방침을 밝히니 북은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 지난해 북민협이 북한 수해 지원에 나서려다가 정부가 북한주민접촉을 불허한 것이 최근의 상황인 것 같다.


“박근혜 정부 때는 20년 전보다 더 좋지 않았다. 1996년 강릉 잠수함 사건 등으로 정치·군사적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빴지만 김영삼 정부는 적십자사를 통한 우회 지원은 용인했다.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이 김대중 정부 남북관계 개선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지난해 함경북도의 수해는 우리에게 알려진 것 이상의 대규모 재해였지만 민간의 직접지원은 물론이고 적십자사를 통한 간접지원도 불허했다. 2015년에는 단 1건의 방북, 물자반출도 없던 유일한 해였다.”


- 민간단체들에 박근혜 정권 4년은 어떤 시기였나.


“접촉과 방북 자체를 원천적으로 규제한 것이 가장 힘들었다. 지난 몇 년간 대북지원 사업 활동가들이 대거 그만뒀다. 정부의 허가를 받은 대북지원단체가 108개인데 이 중 몇 개 단체가 대북지원에 나설지 알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몇 년간 대북지원이 중단되면서 북한 주민들을 도와야 한다는 인도적 지원에 대한 공감대가 낮아졌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바뀌기 쉽지 않다.”


■ “인도적 지원은 헌법정신에도 부합”


강영식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활동하다 19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1998년 신의주 방문을 시작으로 100차례 넘게 북한 땅을 밟았다. 35세에 대북지원 사업을 시작해 청춘을 바쳐온 셈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오는 21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창립 21주년 후원의 밤을 개최한다. ‘평화의 꽃은 ‘나눔’이라는 거름 위에서 자랍니다.’ 홈페이지의 후원란에 쓰인 글귀다.


- 지난해 낸 백서를 보니 1996년 대북지원 시작 단계에 강릉 잠수함 사건이 터졌는데도 시민 지원 열기는 뜨거웠다던데.


“놀라울 정도였다. 그때만 해도 이념이나 대북 태도와 관계없이 북한 동포는 도와줘야 한다는 의식이 있어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대북지원이 진행됐다. 지금은 인도적 지원을 주장하면 좌파 취급을 받는다. 이명박 정부의 ‘퍼주기’, 박근혜 정부의 ‘핵개발 전용론’ 유포의 폐해다.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헌법정신에 비춰볼 때 북한 동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다.”


- 북한에 자주 다니면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북한에 가보니 맥주병이나 사이다병에 물 섞인 포도당을 넣어 수액제 대신 쓰고 있었다. 약인지 독인지 모를 정도다. 보건의료 분야의 개선을 위해 수액제 공장 설립에 착수해 2년 만에 준공했다. 2005년 6월 평양 낙랑구역에서 열리는 준공식을 위해 남측에서 100여명이 방북했다. 그런데 시험 생산한 수액제가 국제 우수의약품 제조관리 기준(GMP)에 미달한 거다. 남북 의료인들이 2박3일간 잠도 못 자고 밤샘 실험을 계속해 준공식 당일 아침에야 안전기준을 맞췄다. 그런 뒤 평양 순안공항에 나갔다. 태극마크가 찍힌 대한항공기가 공항 상공을 한 바퀴 선회한 뒤 착륙하는 장면을 버스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팍 터졌다. 순식간에 전염돼 버스 안이 눈물바다가 됐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6092107005&code=100100#csidx4b23bf2a01523e78f18e30e69834bef onebyone.gif?action_id=4b23bf2a01523e78f18e30e69834b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