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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평연-우리민족 공동칼럼] (7) 다문화‧다인종 사회와 '우리 민족' 

작성자/Author
관리자
작성일/Date
2024-10-08 09:31
조회/Views
16346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와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 공동 칼럼을 발표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다문화‧다인종 사회와 '우리 민족' 


조민아(Georgetown University, Washington D.C.)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아가는 한국인 디아스포라들에게 ‘민족’이라는 말은 직관적으로 와 닿지는 않는 개념이다. 일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외국에서 보내는 내게도 마찬가지다. 나의 수업을 듣는 한국계 학생들은 유학생, 교포 2세나 3세, 다인종 가정의 자녀를 모두 포함하는데, 이들의 모습 속에서 혈연, 정서, 언어, 문화, 지리적으로 ‘한민족’이라는 동질성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각자가 생각하는 ‘한국인의 정체성’ 또한 다양하다. 피부색이나 언어 등 몇 가지 조건으로 ‘한민족’을 강조하며 정체성을 요구한다면 이들은 이방인이 되어 버릴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백인중심의 사회에서 인종적 소수자로서 겪는 차별과 아픔 못지 않게, 한국을 방문하거나 이민1세대 한국이민자를 만날 때도 뭔가 “한국인답지 못함”에 대한 핀잔으로 상처 받곤 한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한인 디아스포라의 경험은 동질적 공동체성을 전제로 한 ‘민족’ 범주에 의문을 제기한다. 동시에 한국인과 비(非)한국인 간의 모호한 경계에 더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일깨운다. 변화하는 사회와 환경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끊임 없이 재정립하며 ‘흔들리는 경계’에 서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경험과 역사 속에는 차별의 상처가 있다. ‘민족’ 혹은 ‘국가’라는 이름을 내세워 경계 밖의 이들을 배제하는 폭력 때문이다. 정체성의 ‘금’을 밟고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성찰한다면 폐쇄적인 민족관에서 벗어나 다양한 존재들과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생생한 상상력을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계의 상상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은 오늘의 남한사회다.



사진1: 난민캠프 그라피티 ‘NO BORDER NO NATION’ ©Unsplash

한국이 단일민족국가라는 믿음은 이데올로기 내지 신화에 불과하다. 한반도는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족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면서 결합하고 투쟁해왔던 공간이라는 사실이 학계의 정설로 인정된 지 오래다. 하지만 단일민족 신화는 아직도 공교육과 대중 담론, 미디어를 통해 끊임 없이 재생산 되고 있다. 단일민족국가 신념은 남한 내부에서 국가적, 공동체적 구심력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분단 현실에서 남북을 아우르는 민족집단을 상정하여 통일에 필연성과 정당성을 부여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운명공동체”인 북한주민과 중국동포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이중적인 인식을 남한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분열과 냉전의 시대를 거쳐 “동포”의 땅에 발을 딛은 북한 이탈 주민들의 모습을 보자. 남한주민으로 “동화”되는 과정의 심리적 고통과 갈등으로 인해 정착에 실패하거나 최하층 영세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대다수다. 흔히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동포들의 처지는 더 심각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들”로 간주되어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이 찍힌 채 기피직종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지난 6월, 안전관리를 무시한 불법 운영으로 결국 31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화재 희생자 중 8할이 중국동포였다. 이렇듯 한국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과 중국동포들은 피부색과 언어를 공유함에도 ‘한국인’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타인종처럼 간주되고 있다.

같은 핏줄을 이어 받았다는 뜻의 “동포(同胞)”라 불리는 이들에게도 이리 냉담한데, 피부색과 언어,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 이주 노동자들에게는 어떠하겠는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공개한 ‘2023년 12월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해 체류 외국인은250만7584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인구의 4.89%에 해당하는 수치로, 이제 한국은 본격적으로 다문화·다인종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과연 다양한 인종의 구성원들과 공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다문화·다인종 사회로서 남북 주민 뿐 아니라 이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나갈 한반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사진2: 2022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_행정안전부 발표

대한민국은 이미 심각한 인종차별 사회다. 인종간 위계 또한 분명하게 자리 잡혀 있다. 한국인들은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은 괄시하고 천대하는 반면, 백인들에게는 관용적이며 우호적이다. 사실 한국의 인종차별은 최근에 발생한 현상이 아니다. 유교적 가치판단, 근대로부터 시작된 “발전된” 서구 문명에 대한 동경, 한국전쟁시 미군을 통해 유입된 흑인에 대한 편견, 유럽계 백인 그리스도교 선교사들로 인한 종교적 영향,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심화된 미국과의 관계 등 요인이 다양하고 뿌리도 깊다. 90년대 이후 가파르게 유입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선주민과의 관계성 안에서 차별과 폭력의 모습은 더욱 두드러지게 목격되고 있다.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설정한 채 포용과 융합, 소위 “한국화”만을 강조하는 이주민 정책과 사회적 태도는 다인종 사회로서 한국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든다. 그들의 문화와 역사,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한국 사회의 편의성을 위해 만들어진 법과 제도는 차별을 심화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싼값에 사들여 이윤을 확대하는 기업의 착취 시스템은 이미 거대한 차별의 구조로 굳어가고 있다. “우리민족”이 아닌 이주노동자들을 한국의 먹이사슬 가장 밑바닥에 고정시키고 관심의 사각지대로 밀어 버린 채, 위협, 폭력, 기만, 권력 남용 등 여러 형태의 강요를 통해 사업장을 이탈하지 못하게 하는 현행은 마치 현대판 노예제도와 같다. 이와 동시에 단지 “우리민족”이 아니기에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거나 보편적 권리를 누릴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상한 차별적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우리민족”의 범주에는 타인종 이주민들 뿐 아니라 북한이탈주민과 중국동포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 보면 “우리 민족”이란 단어는 화해와 공존의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라 하기에 상당히 날카로운 배제와 분리의 칼날을 품고 있다.

이주민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남북의 공존을 상상할 때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미래를 담고 있을지 모른다. 남북이 함께할 미래에는 언어, 문화, 정치적으로 “같음” 보다는 “다름”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된 사람만이 안전한다 느낄 수 있는 동질적 공동체성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이주민들이 경험하는 차별의 구조적 문제에 직면하지 않는 한, 남과 북의 상생과 화합은 낭만적인 향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흔들리는 경계’에 살고 있는 남한 땅 안과 밖의 많은 이주민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져야 하며, 그들의 경험 또한 한반도의 미래를 구상하는데 중요한 자원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3년 즉위 이후, 로마 밖으로 향하는 첫 방문지로 이탈리아 최남단의 람페두사 섬을 택했다. 북아프리카 정치불안과 내전의 여파로 유럽행을 원하는 난민들이 수 만명 몰려 들었던 곳이다. 유럽의 국가들이 수용 거부를 선언하는 바람에 오갈데가 없어진 이들이 이 곳에서 캠프를 치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난민들과 함께 한 람페두사 강론에서 교종은 “우리는 어떻게 울어야할지를, 어떻게 연민을 경험해야 할지를 잊었습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고통’ 말입니다. 무관심의 세계화가 우리에게서 슬퍼하는 능력을 제거해버렸습니다!”라고 강조했다 (2013년 7월 8일. 출처: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회교리문헌자료실). 단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호소하는 메시지는 아닐 것이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배척 당하고 차별 받는 이들의 아픔에 통감하고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은 인간됨의 도리다. “우리민족”의 범주를 설정하고 자격과 조건을 요구하기 보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라는, 생명이라는 이유 하나로 존중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남북이 공존하는 미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 단체 소개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분단의 현장에 자리하고 있는 천주교의정부교구가 2015년 9월에 설립하였으며,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이웃 종교인들, 그리고 시민 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이 땅의 화해와 평화 정착 방안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북한의 식량난이 가장 극심했던 1996년 6월,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6대 종단 및 시민사회 인사들이 함께하는 국민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인도적 대북지원과 남북교류협력사업,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다양한 정책사업, 시민참여활동, 국제연대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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