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일~3일과 11월 9일~10일에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준비한 두 차례의 답사 기행이 있었습니다. 각각 1박 2일로 진행된 이번 답사기행에는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에 진행된 평양개성탐구학교의 참가자들이 북녘 땅이 보이는 강화도와 교동도, 김포 지역을 찾았습니다.
북쪽 지역을 여행지의 하나로 상정하고 북측의 먹거리와 볼거리, 놀거리, 즐길거리를 탐구하는 평양개성탐구학교는 올 상반기엔 경기도 성남시에서 평양탐구학교의 이름으로, 하반기에는 경기도 부천시에서 개성탐구학교의 이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강화도와 교동도, 김포로 이어지는 이번 답사 기행에는 평양탐구학교와 개성탐구학교 참가자들 약 25명이 참석했습니다.
강화도 연미정에서 시작된 답사기행은 인접한 고려천도공원을 거쳐 교동도의 대룡시장과 망향대로 이어졌습니다. 망향대에서는 북쪽의 연백평야가 손에 잡힐 듯 보입니다.
그 연백평야에 70여년 전 중학교 때 전쟁을 피해 교동도로 넘어오신 실향민 최종대 할아버지의 고향이 있습니다. 지금 서울에 사시는 최종대 할아버지는 다시 찾아갈 고향을 그리며 가을철 기러기가 남북을 오가고 은행나무가 열매를 맺는 가을이 오면 교동도를 찾곤 합니다.
무학리 은행나무 이야기는 최종대 할아버지의 말씀 중에 빠지지 않는 내용입니다. 교동도 무학리에는 수령이 1,000년이 되는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암나무로, 강화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이 나무에는 매년 엄청난 양의 열매가 열리고 있습니다.
은행나무 앞에는 보호수 지정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과 ‘무학리 은행나무’라는 제목으로 이 나무를 설명하는 목판이 있습니다.
최종대 할아버지는 자신의 고향 뒷동산에 수나무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최종대 할아버지에게 무학리의 은행나무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북쪽의 고향을 연결하는 남쪽의 한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의 은행나무 설명에는 최종대 할아버지의 주장으로 다시 살아난 지점이 있습니다. 어느 해 무학리에 와서 이 설명판을 다시 보니, 강화군에서 세운 설명판에 북쪽의 수나무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은행나무의 열매가 북쪽의 수나무 꽃가루가 날려와 만들어진 것이라는 내용이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죠. 이를 본 최종대 할아버지는 강화군청을 방문해 그 내용을 다시 살려 설명판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얼마 후 강화군청은 최종대 할아버지의 주장을 받아들여 설명판을 위와 같이 다시 만들었다고 합니다.
해질 녘의 교동도는 멋진 낙조를 선사합니다. 낮 동안 북쪽 연백평야에서 먹이 활동을 하던 기러기들은 잠자리를 찾아 한강하구 중립수역과 철조망을 넘어 남쪽 교동의 넓은 벌판으로 날아옵니다.
꽃가루가 날아오고 기러기가 넘나드는 한강하구의 그리 넓지 않은 바다를, 고향을 지척에 둔 87세의 실향민은 아직 건너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