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와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 공동 칼럼을 발표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격변을 예고하는 '트럼프시즌 2', '우리 민족'은 어디로
변진흥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
트럼프의 귀환으로 호명된 ‘트럼프시즌 2’. 미국 제47대 대통령으로 4년 만에 다시 백악관으로 금의환향하게 된 트럼프의 모습은 놀랍다 못해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트럼프의 첫 임기 말인 2020년 4월 6일, 미국 워싱턴 포스트(WP)에는 ‘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란 칼럼이 실렸다. 물론 트럼프를 빗댄 것이다. 그런 그가 불과 4년 만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만들겠다고 외치며 대통령에 복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사상 최악’이 언제라도 ‘사상 최선’으로 둔갑이 가능한 모양이다. 마치 가상현실처럼 지구촌 곳곳에 투사되고 있는 이 모습 앞에 미국의 양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연 누가 누구를 어떻게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단 말인가. 지구촌의 운명은 아랑곳없이 MAGA 모자를 다시 꾹 눌러쓴 트럼프의 귀환 앞에 떨리는 가슴으로 서 있어야 하는 지구촌. 한반도를 포함한 모든 지구인의 모습이 처량하다 못해 괴이하기 그지없다.
판도라의 상자
트럼프를 현대판 판도라로 투사시켜 보는 것이 너무 나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열자 인간이 겪게 될 온갖 재앙, 즉 증오, 질투, 잔인성, 분노, 굶주림, 질병 등이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는 마치 오늘 트럼프의 귀환으로 ‘트럼프판 판도라의 상자’ 뚜껑이 열리면서 21세기 인류사회의 고질병인 증오와 질투, 분노와 잔인함, 온갖 형태의 적자생존 질곡을 부채질하는 ‘유아독존식 오만의 정치’가 다시 유령처럼 지구촌을 휩쓸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공포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어쩌면 21세기 지구촌은 이미 곳곳에서 이런 유령과 하나 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위의 어디를 둘러봐도 크고 작은 트럼프의 모습만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트럼프의 재등장에 놀라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 제2, 제3의 트럼프를 상대해야 하는 현실에 하루빨리 익숙해져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앞으로 계절의 변화처럼 더 빨리 반복적으로 밀어닥칠 이 현상을 ‘뉴노멀(New Normal)’로 수용하고, 신속히 대처하는 것이 급박한 현실이란 충고일 것이다. ‘우리 민족’의 터전인 한반도는 언제나 그 ‘뉴노멀’이란 쓰나미의 첫 번째 희생양이었기에 마냥 흘려버릴 수 없는 충언이지만, 그야말로 가슴 깊이 아리게 다가온다.
샴쌍둥이의 운명
필자는 20년 전에 독일에서 “북한의 종교 자유와 인권: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의미”를 주제로 발표했었다. 북한이 1981년에 국제인권협약에 가입하고, 1983년에 첫 번째 보고서를 제출했으며, 2000년 3월에 두 번째 보고서를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는 사실 등을 소개했다. 이와 함께 북한이 2000년 3월 보고서에서 1983년 첫 보고서 제출 직후인 1984년부터 인권과 관련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북한 보고서의 내용을 가감 없이 소개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이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교류협력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런 역사적 변화에 주목해 줄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독일 참가자들은 미국 국무부에서 발간하는 보고서만 인정하고, 북한 보고서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을 제기할 뿐이었다.
그래서 토론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을 바꾸어 볼 심산으로 남과 북은 샴쌍둥이와 같다는 점. 외부에서는 한반도 통일을 샴쌍둥이 수술처럼 볼 수 있겠는데, 중요한 것은 수술의 성공 여부가 아니라 환자가 모두 살 수 있어야 수술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제야 참가자들은 수술이 성공해도 한쪽이 죽는다면, 수술에 동의할 수 없고, 모두를 살릴 수 있어야만 수술이 가능하다는 사정을 어렴풋이 이해하는 듯했다. 독일통일은 양쪽 모두를 살리는 수술 경험이었기에 그마저도 가능했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적대적 두 국가론과 ‘우리 민족’의 운명
김정은 위원장의 ‘두 국가론’은 샴쌍둥이란 현실 구조가 달라졌음을 표출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과연 그런 표현이 ‘우리 민족’이란 울타리 안에 있는 특정 정치지도자에 의해 표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한반도 두 국가론을 천명한 북의 진로 변경이 일시적인 전략 전술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면, 이해가 가능하다. 하노이 노딜이 결국 미국도 남한도 국제정치란 냉혹한 현실 앞에서 그들을 순수하게 포용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확인시켰고, 북은 그 마지노선 앞에서 우회하는 선택에 나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 여기에 ‘적대적’이며 ‘영구적’이란 의미를 덧붙이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한반도가 반만년의 역사를 공유한 백의민족의 터전임을 함께 외쳐온 숱한 세월을 뛰어넘는 독단적 정치적 판단과 진로 설정이 과연 영구적일 수 있으며 지속 가능하단 말인가. 평화공존을 앞세운 ‘두 국가론’이라면, 잠정적으로 동의할 수 있겠지만, 적대적 ‘두 국가론’은 차원이 다르다. ‘우리 민족’이란 DNA와 현실 구조가 샴쌍둥이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난 30년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통해 확인했던 ‘우리 민족’의 혈맥, 그 맥박의 숨소리를 지울 수는 없다. 반만년에 걸쳐 하늘과 땅, 강과 바다를 맞대고 살아온 ‘우리 민족’의 운명을 단지 ‘정치적 효용성’이란 도구로 단숨에 재단할 수는 없다. 인간의 어설픔과 상관없이 이 순간에도 새들은 오가고 있다. 홍수와 가뭄, 기후 위기는 똑같이 찾아온다. 샴쌍둥이는 성공적 수술 이전까지 서로 의지하고 보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공생의 노력과 지혜 없이 생존은 불가능하다. ‘탈 남한’과 ‘탈 북한’은 한반도의 탈골을 뜻할 뿐이다.
이미지 출처: 사진 1) 웨스트팜비치/AP 연합뉴스 2) BBC
* 단체 소개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분단의 현장에 자리하고 있는 천주교의정부교구가 2015년 9월에 설립하였으며,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이웃 종교인들, 그리고 시민 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이 땅의 화해와 평화 정착 방안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북한의 식량난이 가장 극심했던 1996년 6월,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6대 종단 및 시민사회 인사들이 함께하는 국민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인도적 대북지원과 남북교류협력사업,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다양한 정책사업, 시민참여활동, 국제연대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