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와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 공동 칼럼을 발표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남북 간 적대성...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가 우선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2024년 벽두에 북한이 남북한 관계를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선언하여 국내외에 큰 충격을 안겼다. 북한은 남한과의 국력 격차 증대, 경제난 지속, 국제적 고립 심화 등의 요인과 함께, 남북 간 대립상황의 장기화로 인해 이질성이 증가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통일이 실현되기 어렵다고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이유가 무엇이든 북한이 일방적으로 남북관계를 화해·협력 관계가 아닌 적대적 관계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2024년 5월 통일연구원은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 총 1,001명을 대상으로 한 통일의식조사를 실시했다(95% 신뢰수준에서 최대허용 표집오차는 ±3.1%P). 이 통일의식조사에서 국민들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정책 대안으로 ‘한미일 협력 강화’ 35%, ‘대화 재개 및 협력관계 회복’ 31.9%, ‘압박을 통한 북한 내부 변화 유도’ 29.8%의 순으로 응답했다. 국민들은 대화와 압박, 남북 채널과 국제 채널의 균형을 주문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2024년 8.15 경축사에서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하며 한반도 전체에 자유민주통일 국가가 만들어질 때 소위 완전한 광복이 실현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한국 사회 내에서 통일에 대한 공론화 작업이 충분하지 않고, 경색을 넘어 파탄에 이른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실질적 조치도 없는 일방적인 통일 구상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 북한이 전혀 화답하지 않고 있는 상황은 현 남북관계의 단절을 잘 나타내고 있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하며 통일을 폐기한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에게 일방적인 통일과 자유의 확산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과연 실효성이 존재할 지 의문이다.
남과 북 모두 일방적인 형태로 적대성을 드러내며 언제 충돌할지 모르는 긴장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서로 다른 사상과 이념, 체제를 바탕으로 수립된 남북한은 상대방의 존재에 대해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적대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다. 한국전쟁의 경험이 상호 간 신뢰를 부족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이러한 신뢰부족이 반세기 이상 지속되며 군비경쟁으로 이어져 한반도의 비평화 구조를 형성시켰다.
최근에는 남북이 서로 ‘자유의 북진’,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주장하며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남북 모두 서로를 향한 증오와 공격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매우 심각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급기야 9.19 군사합의 파기 및 무력화 이후 대북전단과 오물풍선이 남북을 오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긴장과 우려사항에 대한 대책은 간단하다. 평화적 수단과 방식으로 평화를 구축하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힘에 의한 평화는 일시적으로 평화 상태를 만들 수 있지만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북이 서로 적대성을 강하게 드러낸 현재의 상황에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서로 함께 취해야 할 과제가 있다.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억제하고 평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들을 파기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실천의 노력을 진행할 때 가능하다. 예를 들어 9·19 군사합의의 경우 남북이 함께 준수할 때 의미가 있고 유지가 될 수 있다. 최근 남북이 서로 9.19 군사합의를 무효화하고 파기를 선언한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남과 북이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려는 9.19 군사합의가 파기된다면 경색된 남북관계를 회복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북 간 상호 자신들의 행위만 정당하다는 일방주의를 배제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자신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고 상대의 행위만을 위협으로 보는 일방주의적 접근은 적대행위의 악순환과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적대관계를 상호이해와 상호존중의 관계로 전환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표명해야 한반도 평화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평화의 기조를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언제나 갈등이 존재하고 폭력의 씨앗이 자란다. 그리고 오해와 오판이 어우러지면서 전쟁이 일어난다. “평화가 전부는 아니지만, 평화가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라는 전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평화는 공기와 같아서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평화가 사라지면 등장하는 비극의 실체를 우리는 역사 속의 많은 사례들에서 생생하게 보고 있다. 아니 지금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같은 분쟁 지역에서 평화가 사라진 비극을 목도하고 있다.
평화는 폭력이 남긴 상처 위에서 자라나고,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다짐 속에서 퍼져간다. 전쟁을 겪은 한반도는 아직도 많은 상처를 안고 있다. 치유의 정치가 필요하며, 특히 평화적 감수성이 널리 퍼질 필요가 있다.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의 지혜를 추구하며, 대화와 소통으로 평화에 관한 생각의 차이를 좁힐 필요가 있다. 평화의 감수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평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평화는 갈등의 원인을 찾아서 얽힌 매듭을 풀고, 상처를 치유하고, 친구가 되어야 만들어진다. 평화는 그래서 평화적 수단으로 이루어야 지속 가능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가 우선이라는 생각 속에서 남북 간 적대성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다.
※ 이미지 출처: 1. Urbanbrush.net 2. 한반도 평화행동, 7.27 평화대회
* 단체 소개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분단의 현장에 자리하고 있는 천주교의정부교구가 2015년 9월에 설립하였으며,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이웃 종교인들, 그리고 시민 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이 땅의 화해와 평화 정착 방안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북한의 식량난이 가장 극심했던 1996년 6월,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6대 종단 및 시민사회 인사들이 함께하는 국민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인도적 대북지원과 남북교류협력사업,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다양한 정책사업, 시민참여활동, 국제연대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