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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평연-우리민족 공동칼럼] (4) ‘법제’라는 발판 또는 장벽 - 함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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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Date
2024-08-0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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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와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 공동 칼럼을 발표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법제’라는 발판 또는 장벽


함보현 (법률사무소 생명 대표변호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감사)


전단과 오물 풍선이 오가는 시대. 분단 80년의 역사에서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풍선에 이어 비난과 적대라는 감정의 벽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북한은 여기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선언하고 군사분계선 일대에 장벽 형태의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다. 심리적 장벽과 물리적 장벽이 동시에 높아진다. 북한은 이에 더하여 ‘평화통일’과 ‘민족대단결’ 등의 개념을 삭제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앞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의 법률 제정을 통하여 외부로부터 문화·사상의 침습을 막으려 애쓰고 있다. 제도적 장벽의 단면이다.

제도는 분단된 두 실체 사이의 교류·협력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지원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를 가로막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비록 현재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고 대결 일변도로 치닫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법제의 현황을 점검하고 정비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 사이 교류와 협력의 절차에 대하여 규율하고 있는 기본적인 법률은 1990년 제정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다. 과연 이 법이 남북한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한다는 법 목적(제1조)에 충실하게 운영되고 있는가.



남북교류협력법은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이 전면 차단되어 있던 때를 넘어 민간교류를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제정되었고,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고 나름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남북한 교류·협력의 폭과 깊이가 더해졌지만 큰 틀에서의 변화는 없었다. 남북교류협력법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남북 주민 간 인적, 물적 교류·협력 행위에 대하여 촉진과 지원보다는 지나치게 규제 중심의 법제라는 점이다. 교류·협력의 당사자는 방문, 교역, 협력사업의 수행에 있어 하나하나의 행위마다 통일부장관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심지어 가장 기초적인 행위인 접촉의 경우 미리 신고해야 하는데, 통일부장관은 이에 대하여 수리를 거부하거나 조건을 붙일 수 있다.

당국에 과도한 재량권을 부여해 민간의 자율성을 크게 위축시키는 것도 문제다. 통일부장관은 남북교류·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 방문 승인 취소(제9조 제7항), 접촉 신고의 수리 거부(제9조의2 제3항), 반출·반입의 승인 취소(제13조 제5항), 협력사업의 승인 취소(제17조 제4항), 수송장비의 운행 승인 취소(제20조 제3항)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렇듯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규정과 당국의 광범위한 통제 권한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교류·협력 행위의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남북교류협력법은 “남북 간의 교류협력이 헌법 전문과 제4조 등의 통일조항이 천명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데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인식하에 그 추진을 위한 법적 장치로 마련된 법률로서, 남북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를 다른 법규정과 달리 긍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대법원 1999. 7. 23 선고 98두14525 판결). 남북한 교류·협력의 가치에 대하여 이와 같은 사회적 합의를 법제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규제 중심으로 행위자를 옥죄는 법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뿌리 깊은 적대 관념과 이분법, 이에 더해 남북관계는 당국이 주도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 우리 체제에 우호적이라고 볼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법원도 북한에 대하여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적화통일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는 반국가단체의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며 이중적 성격을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2008. 4. 17. 선고 2003도758 전원합의체 판결 등). 이 가운데 북한을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 보는 관점에 대응한 법이 남북교류협력법이라면, 반국가단체라는 인식을 기초로 한 법은 「국가보안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남북교류협력법에는 반국가 활동을 규제하려는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북한 주민과 교류와 협력은 언제든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소로, 민간의 행위자들 역시 잠재적 일탈자로 불온시하기 때문에 당국은 규제 일변도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교류협력 자체가 절대 선이라거나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북한 당국은 물론 북한 주민과 교류·협력 행위를 싸잡아 평가절하해서도 안 될 것이다. 분단과 대립을 지속하고 있는 남북관계에서 교류·협력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고 민간을 중심으로 한 공존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은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다. 민간 교류·협력에 대하여 원칙적인 허용과 예외적인 금지, 인도적 지원 분야에 대한 규제 완화, 당국의 재량권 축소, 공익적 필요에 따른 재산상 손실의 보상 등 법제 개정의 목소리도 그러한 인식에 따른 주장이다.

현 정부는 남북 교류협력 관련 법령 위반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법과 원칙에 기반한 남북교류협력 체계 확립”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에는 교류협력 질서의 확립을 명목으로 접촉신고의 수리 거부 사유를 확대하고 각종 승인 조건 위반에 대한 과태료 부과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껏 교류·협력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법 위반 행위가 있었는지, 이에 대응한 규제의 강화가 능사인지에 대하여 객관적인 평가와 진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면서 힘의 우위에만 골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장 ‘질서 확립’을 내세워 교류·협력의 발판이 아닌 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높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 이미지 출처: 1. 픽사베이  2.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평양 강남군 당곡리 협동농장)


* 단체 소개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분단의 현장에 자리하고 있는 천주교의정부교구가 2015년 9월에 설립하였으며,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이웃 종교인들, 그리고 시민 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이 땅의 화해와 평화 정착 방안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북한의 식량난이 가장 극심했던 1996년 6월,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6대 종단 및 시민사회 인사들이 함께하는 국민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인도적 대북지원과 남북교류협력사업,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다양한 정책사업, 시민참여활동, 국제연대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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