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현지 고려인 동포 대상 긴급구호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는 구호 물품이 고려인들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과정을 말씀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의 박 이고리(Пак Ігор)씨와 타찌야나(Пак Татьяна)씨 가족을 통해 전쟁을 직접 겪고 있는 현지 고려인 동포들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여러분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전쟁 발발 후 2주가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제가 사는 마을에 심한 폭격 소리가 울렸습니다. 이에 남편이 혼자 남아 집을 지키고, 저는 두 딸을 데리고 숲으로 피신하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2주 후, 남편과 통화하는 중에 수화기 너머로 누군가 현관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는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 다음 날, 남편은 무너진 집 안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제 남편 박 이고르는 과거 소련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 후손입니다. 1982년 우즈베키스탄 치르치크 시에서 태어난 그는, 2000년에 가족과 함께 우크라이나로 이주했습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하르키우(하리코프) 주의 르찌쉐브 마을에 정착했고, 온실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습니다. 한번은 남편이 부모님과 함께 하르키우 주의 그라코보 마을에 사는 제 친척을 찾아왔습니다. 마침 저도 그곳에 잠시 머물고 있던 터라 그때 남편을 처음 만났습니다. 이후 우리는 결혼했고 두 딸을 낳아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꾸려나갔습니다. 어느덧 큰 딸은 18살, 둘째는 12살이 되었습니다.
이고르는 매우 부지런하고 심성이 고운 사람이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게 누구든 자신을 아끼지 않고 도왔습니다. 가족 간의 사랑을 중요하게 여긴 남편 덕에, 우리 가족은 항상 남편의 다른 가족과도 가깝게 지냈습니다. 남편이 떠난 지금도 그들은 제게 듬직한 버팀목이자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사진: 폭격으로 파괴된 이고리와 타찌야나씨의 집)
하지만 전쟁은 이런 따뜻하고 자상한 남편을 한순간에 앗아갔습니다. 이고리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날, 마치 제 인생도 함께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고,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다시 절망에 집어삼켜지는 기분이 듭니다. 남아있는 딸들을 생각하며 힘을 내보지만, 남편과 집을 잃은 상황에서 앞으로 삶을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현재 저는 딸들과 함께 파괴된 마을을 떠나 하르키우 시로 피신하여 지내고 있습니다. 하르키우 시로 넘어온 후 우리 가족은 한국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아사달을 통해 보내주신 구호 물품을 네 번 받았습니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직업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내주시는 식료품과 위생용품은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따로 지내고 있는 남편의 부모님도 하르키우 시로 피난 와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긴급구호 물품을 받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고려인들을 잊지 않고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다른 고려인들을 대신해서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