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20주년 특집] 남과 북에 서로 도움이 되는 말라리아 남북공동 방역 사업
남과 북에 서로 도움이 되는 말라리아 남북공동 방역 사업
여러 대의 카메라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카메라 옆으로는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개성에 전달하는 말라리아 방역 물자를 실은 트럭을 배경으로, 그리고 수많은 취재 기자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말라리아 전문가인 박재원 당시 가천의대 교수입니다. 2010년 8월 17일, 도라산 CIQ 앞의 주차장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박재원 교수를 포함한 경기도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대표단은 이날 경의선 육로를 거쳐 개성을 방문해 말라리아 방역 물자를 전달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잠시 2010년 상반기를 돌이켜 볼까요?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당시 이명박 정부는 5월 이른바 5.24 조치를 발표합니다. 우리 정부의 이 조치로 남북간의 교류협력이 전면 중단되는데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마찬가지로 전면 중단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 8월 17일의 말라리아 방역 물자 지원과 대표단의 개성 방문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요? 이날의 물자 지원과 개성 방문은 5.24조치 이후 최초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통일부가 5.24조치 발표 이후 채 3개월이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말라리아 방역물자 반출과 대표단의 개성 방문을 승인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말라리아 방역의 경우 그 지원의 결과가 곧바로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라리아는 모기를 매개로 전염되는 병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3억명 이상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그중 200만명 정도가 사망한다고 합니다. 한반도에서 유행한 말라리아는 ‘삼일열 말라리아’로 치사율이 높지는 않지만 산모가 말라리아에 감염될 경우 그 영향이 태아에게도 미치고 아동이 감염되면 사망률이 높은 병입니다. 삼일열 말라리아는 수세기 동안 한반도의 대표적인 토착성 감염 질환의 하나였습니다.
사실 말라리아는 1980년대 접어들어 우리나라에는 심각한 질환이 아니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79년 한국을 말라리아 완전 퇴치 지역으로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93년 휴전선 인근지역에서 근무하는 군인 장병들을 중심으로 말라리아가 다시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1998년에서 2000년까지 연간 약 4천명의 환자가 발생합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말라리아 환자의 대부분이 현역 군인이었는데, 2002년 이후로 민간인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말라리아 환자의 발생지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0년대 초 주로 강화군, 파주시, 연천군, 철원군 등지에서 환자가 발생했는데,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주로 강화군, 김포시, 인천시, 파주시, 고양시 등으로 환자 발생이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역적인 특성에 비추어 볼 때 한국에서의 말라리아 발생은 북한에서의 말라리아 환자 발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경기도와 손잡고 말라리아 남북 공동 방역사업을 추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에서 말라리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북쪽에서도 환자가 발생하지 않아야 합니다. 통일부가 5.24조치를 발표하고 채 3개월이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말라리아 방역 물자 반출을 승인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당시 통일부는 5.24조치의 유효성을 강조하면서도 남북접경지역의 말라리아 방역이 남북 주민 모두의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6월 말 방역물자의 반출을 승인했습니다.
어느 지원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대북 지원은 그 결과가 일방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가 나뉘어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 한반도는 연결돼 있습니다. 북쪽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우리 남쪽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대북지원도 북쪽뿐만 아니라 우리 남쪽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그러한 영향이 선순환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