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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겨울을 지나며…우크라이나 고려인 공동체가 보내온 편지

[스토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6-04-17 11:58
조회
14230
편집자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발발한 지난 2022년 이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우크라이나 현지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에게 쌀과 국수 등의 식량과 비누 등 생필품을 꾸준하게 지원해 왔습니다. 2026년 올해 들어서도 지난 3월 총 920가구의 고려인 2,416명에게 생필품 상자를 전달했습니다. 이 사업은 우크라이나 현지의 고려인 동포 단체 아사달과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사달의 박표트르 대표가 2026년의 첫 번째 지원을 마무리하면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고 합니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고려인들은 서로를 도우며 역경을 헤쳐가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2026년 재단법인 바보의나눔 후원으로 총 5차례 고려인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할 계획입니다.

—–

우크라이나 고려인 공동체가 보내온 편지

얼어붙은 겨울을 지나며

지난 겨울은 우리에게 오래 기억될 시간입니다.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리는 혹독한 추위와 긴 정전을 견디며

2025년∼2026년 겨울을 보냈습니다.

정전, 그리고 멈춰버린 도시

전기는 하루에도 여러번 끊겼고,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도

고작 2~3시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짧은 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음식을 만들고

집안일을 서둘러 마쳐야 했습니다.

어떤 날에는

며칠 동안 전기가 완전히 끊기기도 했습니다.

전기가 끊기자 도시의 공공 서비스도 마비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서고,

펌프장이 작동을 멈추면서

수돗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현대적인 도시 생활은 순식간에

기본적인 위생조차 지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변기 수조의 물까지 바닥나면서

많은 이들이 혹독한 추위속에서

야외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불굴의 거점쉼터

도시 곳곳에는 ‘불굴의 거점’이라 불리는

쉼터가 운영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잠시 몸을 녹이고,

휴대전화를 충전하며,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동이 어려운 분들에게는

그곳까지 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고층 아파트 노인들의 겨울

특히 고층 아파트에 사는 노인들에게는

매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상태에서

온기를 찾아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영하20도에 육박하는 추위 속에서,

그 분들은 집 안에 고립된 채 겨울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버텼습니다

그러나 이 차가운 정적 속에서도

우리 고려인들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촛불 하나에 의지하면서도

어르신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강제이주 때 황무지에서도 살아남았다.”
“우리도 여기서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시골에 사는 고려인 가정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겨울을 버텼습니다.

개인 주택에서는

발전기로 최소한의 전기를 확보하고

장작 난로로 집을 데울 수 있었습니다.

눈 덮인 마을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는

어떤 역경속에서도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표시였습니다.

보온병, 손전등, 휴대용 베터리

한국의 후원자 여러분 덕분에 우리 공동체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식량뿐 아니라 여러 생활 물품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 보온병, 손전등, 휴대용 베터리는

정전이 이어진 이번 겨울 동안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두운 계단과 복도를 밝혀 준 손전등

뜨거운 물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보온병

전기가 끊겨도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준 보조 배터리

이 물품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지켜 준 소중한 도구였습니다.

봄이 오며 다시 시작된 지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다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의 지원으로

올해 3월부터 생필품 지원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지원받게 된 가구는

총 920세대로,

2022년 지원 활동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규모입니다.

각 생필품 꾸러미에는

16종의 식료품과 위생용품,

그리고 한국 라면 두 봉지가 담겼습니다.

긴 겨울을 힘겹게 버텨 온 이들에게,

고국의 음식 맛은 그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번 지원을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군 동원령으로

많은 남성들이 징집되면서

창고에서 물품을 나르는 사람이 부족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활동하던

자원봉사자 두 명도 전선으로 떠났습니다.

고려인 공동체의 변화

지난 몇 달 사이

고려인 공동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일부 가족은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누군가는 돌아왔으며,

어떤 이들과는 연락이 끊겼습니다.

오데사 지역에서는

끝내 강 세몬 할아버님께 물품을 전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딸에게 연락했더니

아버지가 지원 물품을 기다리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할아버님 몫의 물품은

그 마을에 남은 아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

니콜라예프에서는

지난 3년 동안 고려인 공동체 지원 활동을 함께했던
강 올레그, 엄 예고르, 알렉산드르 일린 팀도

더 이상 함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강 올레그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엄 예고르는 전쟁 중 실종되었습니다.
알렉산드르 일린은 의무병으로 전선에서 생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고려인 공동체는 여전히 서로를 돕고 있습니다.

남성 봉사자들이 떠난 니콜라예프에서는

김 이스크라 할머니가

물품 배분을 맡아 주셨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직접 구호 물품 배분을 이끌고 계십니다.

우리는 서로를 도우며 살아남았습니다.

지난 겨울은 길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도우며 살아남았습니다.

한국에서 보내주신 도움은

우리가 이 시간을 견디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며

남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고려인 공동체를 계속 지켜 나가겠습니다.

앞으로도 어려움이 계속되겠지만,

서로를 돌보며

이 시간을 함께 이겨내겠습니다.

멀리서 우리를 기억하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6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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