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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우크라이나 고려인 김 류드밀라 가족의 이야기
[편집자 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고려인동포를 돕기 위한 긴급구호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현지 고려인단체 ‘아사달’과 협력하여 어려움에 처한 고려인 동포들에게 생필품과 의약품 기타 구호물품을 정기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포화속에서 힘겹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고려인 동포들의 이야기를 ‘아사달’ 대표 박표트르가 전해드립니다.
전쟁은 사람의 목숨만 위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일하며 마련한 집과 일터를 무너뜨리고, 한 가족이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갈 계획까지 흔들어 놓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살아온 고려인들도 전쟁을 겪으며 삶의 터전을 잃고 있습니다. 집을 떠나 다른 도시로 피란했지만, 그곳에서도 공습경보와 폭발음을 들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고려인 김 류드밀라(53) 씨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미콜라이우에서 일군 30년의 삶
류드밀라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부모와 함께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로 이주해 1990년 학교를 마쳤고, 1992년 미용사 자격을 땄습니다. 1993년 결혼하면서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로 이주했고, 2000년 우크라이나 국적을 얻었습니다. 그곳에서 가족을 이루고 일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습니다.
미콜라이우는 이제 류드밀라에게 단순히 이주해 정착한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온 집이 있고, 일터가 있고, 이웃이 있는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전쟁 전 류드밀라 가족은 샐러드를 만들어 도매로 판매하는 사업을 했습니다. 가족이 함께 일구어 온 이 사업은 안정적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었습니다.
한순간에 무너진 삶의 기반
하지만 전쟁은 오랜 시간 쌓아온 삶의 기반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전쟁으로 더 이상 사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되면서 가족은 주요 소득원을 잃었습니다.
일터만 잃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도 더 이상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미콜라이우에 있던 류드밀라의 집은 공습으로 지붕이 크게 파손되었습니다.
공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지붕을 제때 수리할 수도 없었습니다. 비가 내리면서 물이 벽과 천장으로 스며들었고, 집 안에는 습기가 차기 시작했습니다. 오래된 금속 수도관까지 부식되면서 수돗물마저 제대로 쓸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집을 대대적으로 수리하지 않고서는 다시 들어가 살 수 없는 상태입니다.

사진 설명: 사진에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벽의 마감재가 떨어져 나가고, 곳곳에 습기와 곰팡이의 흔적이 보입니다. 천장과 배관 주변도 크게 손상되어 있습니다.(출처: 아사달)
한 가족이 오랫동안 살아온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그 안에서 예전과 같은 일상을 이어가기는 어렵습니다.
전쟁을 피해 떠났지만, 전쟁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류드밀라 가족은 결국 미콜라이우를 떠났습니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 오데사로 피란했고 국내실향민(IDP) 지위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오데사로 옮겨왔다고 해서 평온한 일상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데사에도 미사일과 드론 공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공습경보가 반복되고 한밤중에도 폭발음이 들립니다.
집과 일터를 이미 한 차례 잃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들려오는 사이렌과 폭발음은 단순한 소음이 아닙니다.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그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났지만, 여전히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아픈 몸으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삶
류드밀라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류드밀라는 암으로 투병 중이며, 정기적으로 경구 항암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치료에는 심한 부작용이 따르고 약값도 계속 필요합니다.
게다가 남편은 만성 신장질환을 앓고 있어 정상적으로 일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의 생활비와 아내의 치료비를 마련하는 일이 힘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집을 잃었습니다. 일터를 잃었습니다. 안정적인 소득도 사라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치료를 이어가면서 생활도 꾸려가야 합니다.
현재 류드밀라 부부는 오데사의 임대주택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진 설명: 김 류드밀라와 남편(출처: 아사달)
“다시 우리 집으로”
류드밀라 가족이 지금 가장 소망하는 것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미콜라이우로 돌아가는 것, 그것뿐입니다.
부서진 벽을 다시 세우고, 지붕을 수리하고, 낡고 부식된 수도관을 고쳐 집에 다시 물이 나오게 하는 것. 그리고 가족이 오랫동안 살던 그 집에서 다시 일상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평화란 바로 이런 평범한 일상이 다시 가능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집이 있는 것.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
일하고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것.
그리고 내일도 오늘과 같은 일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것.
류드밀라 가족의 이야기는 한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이 겪고 있는 현실의 한 모습입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들에게 필요한 도움도 달라집니다. 긴급한 피란과 생존을 위한 지원을 넘어, 치료를 계속하고 생활을 유지하며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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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M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현지 고려인 공동체와 함께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의 곁을 지키고, 이들이 다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전쟁이 무너뜨린 것은 집과 일터이지만,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것은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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