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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M 평화칼럼] (6) 평가되지 않은 전쟁은 되풀이된다: 아르빌에서 호르무즈로
[KSM 평화칼럼] (6) 평가되지 않은 전쟁은 되풀이된다: 아르빌에서 호르무즈로
김태경 성공회대학교 교수(KSM 정책연구위원)
2003년 4월 2일 국회는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을 찬성 179, 반대 68, 기권 9로 가결했다. 미국의 침공 2주 만이었고, 반대 여론으로 표결이 두 차례 미뤄진 끝에 대통령이 본회의장에서 연설한 뒤 통과됐다. 건설공병·의료 인력 666명의 서희·제마부대 파병 뒤 9월 4일 미국은 사단 규모 전투부대를 추가 요청했고, 대통령은 10월 18일 추가파병을 결정했다. 국회 표결은 이듬해 2월 13일, 찬성 155, 반대 50, 기권 7이었다. 본회의는 찬성 발언 없이 반대 발언만 들은 뒤 표결에 들어갔다. 방침은 넉 달 전에 발표됐고 내용은 두 달 전에 확정됐다. 국회가 한 일은 결과적으로 사후 추인에 가까웠다.

사진 설명: 2003년과 2026년, 23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시민단체들의 파병 반대 목소리는 같은 장소에서 계속되고 있다. (출처: 왼쪽 사진 ⓒKSM, 오른쪽 사진 ⓒ경향신문)
22년이 지난 2026년 9월,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에 전투병 혹은 비전투병 형식의 파병으로 기여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실상 결정이 내려진 상황에서 호르무즈의 긴장에 개입하는 형태가 되리라는 반대 여론이 커지자 대통령은 전쟁에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형태의 기여에는 여지를 열어 두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과 이란의 공개 경고가 이어지는 동안 국내에서는 헌법 5조 준수 의무, 파병의 형식과 범위 및 그에 대한 국회 동의권, 이라크전보다 명분 없는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나아가 해외 군사 파견에 관한 국회 동의와 국내 공론을 통한 합의 과정 자체가 결핍돼 있다는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동맹과 국익이 거론되는 동안 절차적 합리성과 민주적 공론의 과정이 방치돼 온 것은, 이라크 파병의 경험이 있었음에도 파병 자체, 국회와 시민의 숙의, 파병의 결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우리 사회에서 이뤄진 적 없다는 감각과 직결된다. 실제로 국회에서 파병의 과정과 결과를 공식적으로 평가한 적이 없으며, 파병 과정의 오류와 미결 문제에 대한 사후 평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 설명: 지난 9월 18일 열린 이재명 대통령 기자회견 모습. 이대통령은 이날 전쟁에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형태의 기여에는 여지를 열어 두었다. (출처: ⓒ청와대)
이라크 파병에 참여한 다른 나라들은 사후 재검토를 거쳤다.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는 2004년 6월 개전 전 정보 평가의 오류를 담은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해 7월에 공개했고, 2008년 6월에는 행정부가 정보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을 반복했다는 2단계 보고서를 10대 5로 공개했다. 네덜란드의 다비츠 위원회는 2010년 유엔 결의 1441호가 개별 회원국의 무력 사용을 승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고, 정부가 미국의 지원 요청 내용을 의회에 온전히 알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칠콧 조사위원회는 7년의 조사 끝에 2016년, 평화적 선택지가 소진되기 전에 침공에 가담했으며 블레어의 결정이 대미 관계를 지키려는 생각에 영향받았다고 결론 내렸다. 덴마크는 2012년 세운 조사위원회를 2015년 정권 교체 뒤 폐지했지만, 대신 위촉된 학술 조사가 2019년 정부가 의회에 정보를 왜곡해 전달했다는 결론을 냈다.
이 사례들은 결정의 근거와 과정을 국가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한국은 한때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큰 부대를 보냈고 2003년 4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5년 8개월을 머물렀으면서도, 정부도 국회도 결정 과정의 오류를 검증하는 독립적 평가 보고서를 낸 적이 없다. 헌법재판소는 두 번 다 판단을 피했다. 2003년 12월 서희·제마부대 파병에 대한 헌법소원은 청구인이 파견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2004년 4월 추가파병에 대한 헌법소원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므로 위헌 여부와 침략전쟁 해당 여부는 대통령과 국회가 판단할 몫이라는 이유로 각하했다. 평가가 없으면 교훈도 없다. 정부가 국회에 낸 파병·추가파병·연장 동의안은 모두 한미동맹 발전을 첫 번째 이유로 들었다. 그 교환으로 무엇을 얻었는지 아무도 결산하지 않았고, 22년 뒤 같은 명분이 같은 형식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국익’이라는 말의 자리다. 헌법 제5조 1항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고, 제60조 2항은 파병에 국회 동의를 요구한다. 두 조항은 국익 판단을 정부 혼자 내리지 못하게 하려고 있는 것이다. 국익을 근거로 헌법의 원칙을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의 원칙 안에서 국익을 따지는 것이 순서다. 이라크 때 그 순서가 뒤집혔고, 이번에도 비슷한 역전이 있었다. 호르무즈 충돌은 유엔 안보리 승인 없이 시작됐고, 미국 의회조차 6월 양원에서 철군 요구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하원은 9월 15일 세 번째 전쟁권한 결의안을 220 대 204로 가결했다. 미국 유권자의 60% 이상이 개전을 잘못된 결정으로 본다. 이런 전쟁에 대한 기여가 헌법 5조와 양립하는지를 공론에 붙이는 것이 시민사회의 몫이고,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이 국회의 몫이다. 601개 단체가 9월 9일 헌법 5조를 근거로 파병 반대 기자회견을 연 것은 이 물음을 제기한 것이다.
우회의 전례도 있다. 2020년 정부는 청해부대 동의안의 ‘유사시 국민 보호 활동 때 지시되는 해역 포함’ 단서를 근거로 국회 동의 없이 작전구역을 호르무즈까지 넓혔다. 국방부 훈령은 개인단위 파병을 국회 동의 없이 장관 결정으로 가능하게 해 두었는데, 개인단위의 정의가 없어 2024년 우크라이나 참관단 논란 때 우회 통로로 지목됐다. 이번에도 정부 안에서는 처음에 기존 동의안 문구를 활용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파병 일반법을 만들자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그런 입법이 통제보다 근거를 제공하는 쪽으로 작동하리라는 시민사회의 합리적 회의가 있다. 2013년 국방부는 PKO 이외 파병에 법률 근거가 없다며 입법 필요성을 말하고 국회 사후동의제 검토를 언급했고, 2014년 국방위를 통과한 법안은 다국적군 파병과 비분쟁지역 교육훈련 파병까지 범주를 넓히는 내용이었다. 헌법 60조 2항은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이라고만 규정해 부대와 개인, PKO와 다국적군을 구분하지 않는다. 법률로 범주를 나누는 순간 어느 범주는 동의 대상에서 빠진다. 새 법을 논의한다면 그 법이 헌법의 동의권을 넓히는지 좁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호르무즈와 앞으로 있을 해외 분쟁 개입의 문제에서 국회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선 이라크 파병에 대한 국회 차원의 평가를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미국 상원이 개전 5년 뒤에, 영국이 13년 뒤에 보고서를 냈다. 22년은 늦었지만 영원히 하지 않는 것보다 낫고, 그 평가가 있어야 호르무즈 동의안을 심사할 기준이 생긴다. 시민사회의 역할은 결정 이후의 반대에서 결정 이전의 공론화로 옮겨 가야 한다. 2003년 9월 351개 단체가 만든 파병반대국민행동은 파병을 막지 못했지만 부대의 성격과 감축 일정에 영향을 끼쳤다. 이번에는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움직였다는 점이 다르다. 10월 17일까지 진행되는 국회 청원이 성립하면 상임위 회부로 끝내지 말고 공청회와 시민 공론화로 이어 가야 한다.
2003년의 한국 사회로부터 2026년에 얻을 교훈은, 미래의 의사결정을 위해 과거에 대한 평가가 우리 사회와 국회에서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 5조와 국회 동의권의 범위, 국익과 평화 수호의 의무 사이에서 정치공동체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를 숙의하는 과정에서, 정책적 합리성이나 효율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민주적 결정의 정당성이 도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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