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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M 평화칼럼] (5) ‘적대적 두 국가’ 시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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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
2026-08-28 06:31
조회
3690

[KSM 평화칼럼] (5) ‘적대적 두 국가’ 시대의 만남

— 내고향여자축구단 방한이 남긴 평화의 가능성

손종도 KSM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국장

지난 5월 수원에서 열린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북한의 내고향여자축구단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2018년 이후 사실상 중단되었던 남북 간 공식 접촉이 재개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이후 이루어진 첫 공식 방한이라는 점에서 이번 만남은 현재 한반도가 처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사진 설명: 지난 523일 경기도 수원 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AWCL)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출처: 한겨레)

KSM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지난 7월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과 공동으로 「적대적 두 국가 시대의 첫 만남 – 내고향여자축구단 방한이 남긴 질문들」이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개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실제로 북한 축구단의 방한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질문을 불러일으키면서 사회적 논쟁을 야기했기도 했다.

8년만에 이뤄진 남북간의 공식 스포츠 행사에 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언론의 관심은 경기 결과보다 경기장 밖에서 벌어진 여러 논란에 집중됐다. 공동응원단 구성, 남북협력기금 지원, 인공기 게양 문제, 북한 선수단의 국호 사용 요구 등이 잇따라 화제가 됐다. 일부에서는 왜 북한 선수단을 환영해야 하느냐고 물었고, 또 다른 일부에서는 오랜 단절 끝에 성사된 만남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상반된 반응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복잡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진 설명: KSM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지난 7월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방한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과 공동으로 개최했다. (출처: KSM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그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국호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북한 선수단은 자신들의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용을 요구했고, 일부에서는 이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됐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북한’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원칙적으로 스스로 정한 공식 국호로 불린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정식 국호로 불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북한 역시 자신들의 공식 명칭을 사용해 줄 것을 요구한다.

물론 국호를 존중한다고 해서 상대의 정치체제나 정책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최소한의 외교적·인간적 태도에 가깝다. 대화는 상대를 지우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적대가 깊어질수록 상대를 부정하는 언어도 함께 강해지지만, 평화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가장 작은 실천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 한반도가 마주한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분단 이후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통일을 민족적 과제이자 역사적 목표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분단은 어느덧 80년을 넘어섰다. 그 사이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정치체제와 경제구조, 문화와 정체성을 가진 사회로 발전했다. 젊은 세대에게 북한은 더 이상 반드시 통일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낯선 이웃 혹은 별개의 국가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북한 역시 변화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북한이 과거의 통일 담론을 사실상 수정하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다. 결국 남과 북 모두에서 기존의 통일 서사가 약화되고 있다는 현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반도의 미래가 적대와 단절만으로 채워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통일이라는 먼 목표를 둘러싼 이념적 논쟁보다 어떻게 평화를 유지하고 공존의 조건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국민들이 대북정책의 우선 목표로 꼽는 것은 통일보다 평화공존과 평화정착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통일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핵 위협과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는 현실 속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오늘날 한반도 정세는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북한은 핵무력을 체제의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으며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남북 대화는 장기간 중단된 상태이고 군사적 신뢰 구축 장치들 역시 상당 부분 무력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의 붕괴를 기대하거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접근은 현실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이 접촉이다. 정치적 갈등이 존재하더라도 만나야 하고, 대화가 어렵더라도 교류의 공간은 유지되어야 한다. 냉전 시기 국제사회가 보여주었듯이 적대와 교류는 반드시 양자택일의 관계가 아니다. 국가 간 갈등이 존재하더라도 문화와 스포츠, 학술과 인도주의 영역에서는 소통의 통로가 유지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통로는 종종 정치가 만들어내지 못한 평화의 기반을 형성해 왔다.

이번 내고향여자축구단 방한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것은 남북관계가 당장 개선되었다는 신호가 아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화해 국면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대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도 남과 북이 여전히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공동응원을 둘러싼 논쟁은 우리 사회가 평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누군가는 북한 선수단을 응원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운동장에서는 적이 아니라 선수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의 의견은 달랐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쟁 자체가 평화의 의미를 성찰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가 존재하더라도 대화와 접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태가 평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방한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정치적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경기장을 찾았고, 선수들은 같은 규칙 아래 경쟁했으며, 서로를 향한 최소한의 존중이 유지되었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방한은 마무리되었지만, 그 만남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적대의 시대에도 우리는 만날 수 있는가. 정치가 멈춘 자리에서 시민들은 어떤 평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가. 그리고 분단 80년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평화는 상대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를 지우기보다 존재를 인정하고, 단절보다 만남의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이번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방한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일 것이다. 적대의 시대에도 사람은 만난다. 그리고 평화는 언제나 그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떠한 만남이든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마침 오는 9월 일본의 아이치•나고야에서 개최되는 2026 아시안게임에서도 남과 북이 만난다. 여자축구의 경우 우리와 북한 팀의 경기가 오는 9월 21일 오후 4시로 예정되어 있다. 한반도가 아닌,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이번 만남은 또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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