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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전쟁의 기억을 평화의 기억으로…

[스토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6-23 14:01
조회
6289
6월, 전쟁의 기억을 평화의 기억으로…

매 년 6월은 누군가 걸어놓은 ‘호국의 달’ 현수막으로 시작된다. 참혹한 전쟁에서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 이들을 기억하고, 남북은 여전히 대치중이란 현실을 잊지 말자는 의미일 것이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이지만, 세계 곳곳의 열전 지역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71년 전 한반도 전장의 모습을 조금은 엿보게 된다. 지난 5월 단 열흘 만에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이슬라엘-팔레스타인 분쟁,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 군부 쿠테타로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는 미얀마. 한국전쟁으로 250만명 이상이 사망했으니 당시 한반도의 참혹함은 현재 이들 국가의 그것에 비할 수 없으리라.

전쟁은 기억돼야 한다. 최대치의 물리적 폭력이 남긴 상처도 상처지만, ‘해소되지 못한 전쟁’ – 남북은 휴전중이다 – 이 70년 넘게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기억돼야 한다. 전쟁 이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남북관계는 불신과 반목으로 점철됐다. 남북은 서로에게 멸절시켜야 할 적이었고, 그래서 남과 북의 위정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쉽게 상대를 악마화 했다. 남북의 대치는 휴전선 이남과 이북 모두에서 군사문화를 지속시키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았으며, 주민들을 겁박하는데 가장 손쉬운 핑계거리였다. ‘전후 세대’가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는지는 몰라도 ‘전쟁의 후가’는 이렇듯 현재 한반도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6월, 전쟁의 기억을 이제는 평화의 기억으로 돌릴 때가 아닐까. 70년이면 족하지 않은가. 다행히 6월은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뜨겁게 포옹하던 6.15의 기억을 품고 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그 날의 감동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울었고, 어떤 이들은 이제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으며, 다른 이들은 조금 더 상식적인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부풀었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이제 남북관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6.15 이후 21년. 한반도에 평화는 왔는가? 2018년 1년 남짓 지속된 남북 화해 분위기는 또다시 과거의 기억이 되었고,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금 냉랭해졌다. 2018년의 ‘봄’은 다시 올까?

한국전쟁 발발 70년이던 지난 해, 한국의 7대 종단과 36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끝내고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마련하자며 ‘한반도 종전평화 캠페인’을 시작했다. 세계 60여개 파트너 단체들도 참여하고 있는 이 캠페인은 정전협정 체결 70년이 되는 2023년까지 한반도 평화선언에 대한 전 세계 1억명의 서명과 지지선언을 이끌어 내겠다는 목표로 활동중이다.

종전선언. 어떤 이들은 종전선언은 정치적 효력이 없는, 말 그대로 ‘선언’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한다. 전쟁이 끝났다고 말한들 한반도의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종전선언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중요한 카드인데 악행을 일삼는 북한에게 이런 큰 선물을 아무 조건 없이 주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나는 종전선언으로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이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렇다고 종전선언이 북한을 우리 입맛대로 끌고 갈 수 있는 너무나 매력적인 카드인지도 의문이다. 다만, 나는 ‘종전’이 전쟁의 기억을 평화의 기억으로 바꾸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잠시 전쟁을 쉬고 있는 상태에서의 대화와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의 대화는 동일하지 않다. 휴전 중에는 ‘현재 적’과의 협상이지만, 종전 후에는 ‘과거 적’과의 협상이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은 이렇듯 대화 상대로서 남과 북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바꿔낸다.

남북관계는 진전되고 있을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지난 20여년 동안 남북은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웠고, 해소되지 못했을지언정 물리적 폭력의 수위는 훨씬 낮아졌으며, 서로의 인도적·경제적 필요에 호응하며 (최소한) 서로가 미래를 함께 할 동반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진전과 후퇴, 정체를 반복하면서 남북관계는 이렇듯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재 남북관계는 정체기이다. 이 정체를 끝내고 또 다시 전진의 사이클을 만드는 일은 전쟁을 경험했든 경험하지 않았든, 전쟁의 후가를 나눠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는지.

6월을 ‘평화의 달’로 기억하게 될 그날을 기다린다.

* 이예정 사업국장 (‘통일’ 6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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