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축구는 우리 학교에서 5년 동안 3, 4학년의 교육 활동으로 정착한 프로그램이다. 처음에 이 프로그램이 도입되었을 때 매주 2차시씩 4주 간의 수업을 지원해 준다고 하니, 어떤 프로그램인지 잘 몰라도 교사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프로그램 이름에 ‘축구’가 들어가니, 우리 어린이들은 완전 환영이었을 것이다. 올해 나와 만나는 4학년 어린이들은 3학년 때 이미 평화 축구를 경험했기에 수업이 시작되는 2학기를 매우 기다려왔었다. 나도 사실은 이전에 4학년 담임을 하면서 평화 축구 프로그램을 경험하였고 그 경험이 좋았기 때문에 우리 반 어린이들이 이 수업에 어떻게 참여하고 받아들일지가 궁금했다.
어린이들에게는 ‘축구’에 방점이 찍혀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수업은 ‘평화’로부터 시작한다. 예전에는 신체 활동 전에 운동장에서 동그랗게 둘러앉아 평화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올해에는 그것이 교실에서 이루어진 점이 달라졌다. 운동장에서는 어린이들을 집중시키기 어렵고 자료를 보여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는데, 교실에서 시작하니 훨씬 안정적이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평화 가치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15분 정도 진행되는 이 과정이 나는 이 수업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그램의 주제였던 남북 관계와 환경 관련 내용은 4학년 교육과정의 여러 교과에서 다루고 있어 교과 연계성 측면에서도 적합하다. 무엇보다 평화를 단순하게 ‘전쟁이 없는 상태’인 좁은 의미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억압과 폭력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는 ‘적극적 평화’의 가치를 지향하는 교육 내용이어서 좋았다. 지금의 교실은 체벌이 없어졌기에 ‘소극적 평화’는 이미 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학생들 사이의 신체 폭력은 학생보다 더 권력을 가진 교사의 개입을 통해 일시적으로 막을 수 있으나 폭력이 근절된 교실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적극적 평화’가 필요하다. 한 어린이가 다른 어린이를 때리는 일이 또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계속 ‘적극적 평화’를 이야기하고 지향해야 그 상태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린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게 ‘몸’으로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코치 선생님들의 진행과 태도에서도 나와 어린이들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4명 이상의 코치가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교사의 입장에서 마음이 놓이고 든든했다. 또한 코치 선생님들이 어린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정말 평화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어린이들을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으면서 어린이들의 행동에서 배울 점과 토론할 점을 찾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노련한 코칭과 그 과정에서 코치들이 서로 협력하는 모습이 이 수업을 평화적으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준비해 오시는 신체 활동이 재미있고 알차다. 매 수업에서는 워밍업 게임-기술 게임-축구 게임으로 이어지는 세 단계의 활동이 진행되는데, 내 수업 시간에 따라하고 싶을 정도로 구조적으로 잘 설계되어 있고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교사로서 체육 활동을 구상해 봤기에 아는데, 이 정도의 활동을 만들려면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코치 선생님들과 이 프로그램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매 활동이 끝날 때마다 모여서 이 활동에서 배울 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과정을 통해 어린이들은 친구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여 아낌없이 칭찬하고, 문제점을 찾아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등 서로 배움의 경험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다.
모든 어린이들이 축구를 좋아할까? 교사로서 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어린이들에게 축구는 권력이다. 축구를 잘하는 어린이는 특히 남학생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커지며 힘이 생긴다. 그렇기에 축구에서 배제되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이나 소수의 남학생들은 신체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더 없어진다. 어린이들은 몸으로 놀기에 자신의 몸과 신체 능력을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관계 형성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축구는 오히려 어린이들이 함께 놀기 어렵게 만든다. 축구는 운동장을 독점해서 사용하게 하며, 어린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다툼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축구는 교사에게 골칫거리가 될 때가 많다. 그런 축구를 우리 반 모든 어린이들이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교사에게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물론 평화 축구를 하면서 우리 반 어린이들은 다투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에서 배울 점을 찾았고, 짧은 기간 동안 작은 변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2주가 지나는 동안 한 번도 교체를 해주지 않던 우리 반의 축구 강자 어린이가 3주차에 드디어 교체를 해주었다. 평소에 축구를 하면서 자주 싸우던 한 어린이는 4주차 마무리 시간에 ‘그렇게 싸우면 재미있게 못한다’며 싸우는 친구들에게 한마디 했다.
평화 축구 프로그램 진행 기간을 늘려 어린이들이 평화 가치를 내면화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4주차이든 10주차이든 결국 프로그램은 언젠가 끝날 것이고, 이 경험을 통해 배운 가치를 계속 기억하고 지키려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관성대로, 또 본성대로 행동하여 평화는 쉽게 무너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학교 생활의 어떤 순간에 이 수업에서 나왔던 질문을 어린이들에게 던지려고 노력한다. 수업 진도에 여유가 생기면 평화 축구 게임을 어린이들과 함께 해볼 생각이다. 코치 선생님들 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모르지만, 대차게 싸운 데도 또 이야기 나누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