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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평연-우리민족 공동칼럼] (14) <청년 한반도 평화 대화>를 준비하는 마음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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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Date
2025-05-1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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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와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 공동 칼럼을 발표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청년 한반도 평화 대화>를 준비하는 마음가짐


김성경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센터 소장, 북한대학원대학교)


“한반도 평화요? 진부해요.”

오랜만에 집에 들른 조카 H에게 평화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고야 말았다. 한반도 평화와 청년이라는 주제를 받아들고 오후 내내 컴퓨터 앞을 서성거리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숙모는 여전히 평화 뭐 그런 것 하시나봐요. 진짜 오래하시네요.”

예의가 바른 편인 H는 상냥하게 답했지만 이미 표정에서는 딱하다는 감정이 깊게 배여 있다. 갑자기 조바심이 든다.

“아니, 난 너무 궁금하거든. 왜 너 같은 젊은 애들이 평화에 관심이 없는지. 우리나라가 분단되어 있기도 하고, 지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잖아.”

내 말이 점점 길어지자, H는 답답하다는 듯이 쏟아낸다.

“MZ라는 애들이요. 저를 포함해서. 사실 엄청 불안하고, 자존감도 낮고요. 그렇다고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없고. 그러니까 자꾸 자신이 누구인지에 집중하는 거예요. 주변이나 사회, 뭐 한반도 평화 이런 거창한 것보다. 지금 내 마음과 상태에 더 관심이 많은 거죠. 너무 먼 얘기잖아요. 당장 내 마음이 힘든데, 평화 그게 뭐 대수라고.”

마음속에서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든 거냐는 질문이 맴돌았지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정말 ‘꼰대’가 될 것을 직감했다. 만약 어쭙잖게 이해하는 척하며 ‘내가 네 나이 때는...’으로 시작하는 충고에 나선다면 상당 기간 동안 H를 만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이제 청년을 이해하기에는 나의 사고와 몸의 감각이 너무 뻣뻣해졌음을 절감했다.

하긴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경험과 의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역사상 단 한 번도 기성세대와 청년들의 조화로운 통합은 이뤄진 적이 없지 않았는가. 언제나 청년은 기성세대의 권위에 저항하고 비판하며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가지 않았던가.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인류 문명의 역사가 아니었는가.

여러 질문들을 이어가다 보니 한 가지 쟁점이 떠오른다. 과연 지금의 청년들이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질서에 저항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지 여부 말이다. 청년세대 하면 떠오르는 서구의 68세대나 한국의 386세대처럼 지금의 청년들이 그러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우선 68세대와 386세대의 특징은 이들이 자본주의의 물질적, 경제적 수혜를 본 집단이라는 데 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였던 68세대는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물질적 자원 속에서 마음껏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었고, 기존 질서와 권위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사회운동을 추동하기도 했다.

68세대의 로컬화 사례가 바로 386세대이다. 남한사회가 급속 성장을 이뤄내자 교육 자본이 확충되었고, 물질적 풍요가 가능해지자 당시 청년들이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냈다. 결국 과거 사회 변화를 추동했던 대표적 세대들은 자본주의 확산기의 물적 토대와 복지국가가 제공하는 교육 기회 확대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기성세대에 저항하고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만들어가는 미래 세계에 대한 확신과 희망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의 청년들은 어떠한가. 민주화와 산업화, 거기에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조건 내에서 성장한 청년들은 부모 세대보다 더 나은 교육을 제공받았다. 하지만 한계에 다다른 경제 시스템과 급속한 기술발전으로 인해 일자리 환경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때 불안정한 일자리의 상징과 같았던 비정규직은커녕 플랫폼 노동이라는 극단적 유연 노동이 확산되어 안정적인 경제활동은 꿈꿀 수조차 없게 되었다. 게다가 전방위적으로 유입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부는 극소수에게 편중되었고, 노동 임금으로 살아가는 대다수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현재 한국 청년세대에게 기성세대는 허물어뜨려야 하는 구체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기생’해야만 하는 자원이 되었다. 스스로 미래를 기획할 자원도, 경험도, 무엇보다 자신감도 결여된 청년들이 기성세대의 규범과 구조에 반기를 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미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들이 일상적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을 이겨내고자 온갖 종류의 심리검사와 성격유형 검사 등에 매달리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결과일는지도 모르겠다.

더 큰 문제는 한국사회가 매달려온 교육 제도에서 가장 똑똑한 청년들을 배출해왔지만 이들이 습득한 능력을 활용하여 사회적 성취를 이뤄낼 기회는 제한적이라는데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기성세대들이 여전히 노동 현장의 핵심으로 남아있는 까닭에 청년들이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스스로 자신들의 역량을 증진하기란 쉽지 않다. ‘MZ 세대’는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이기적’ 존재이자, 온갖 소비에만 매달리는 ‘철없는’ 이들로 재현된다. 탈이념적인 성향으로 스윙보터로 분류되는 까닭에 선거철만 되면 온갖 정치세력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지만 이들에게 자리와 역할을 제대로 내어주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몇몇 용감한 청년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보려고 나섰다가 좌절하며 다시금 각자의 동굴로 숨어 들어가는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너무 비관적으로 현 상황을 진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주변에는 나름의 역할에 열심인 청년들이 가득하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하긴 계엄과 내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응원봉을 든 청년들의 활약은 모두의 기대를 뛰어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떠한가? 탄핵 이후 광장을 가득 메웠던 청년들의 불안이나 고통이 대선 국면에서 다뤄지고 있는가? 대선 후보의 뒤편에 마치 병풍처럼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청년들에게 ‘자리’를 내어줬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가 과연 청년들에게 사회문제에 왜 관심이 없는 거냐고 물어볼 자격이 있을까?

이제라도 청년들이 마주한 물적 토대의 한계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이미 한국 사회는 충분한 물적 토대가 있고, 더 ‘잘 사는’ 사회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특정 분야에 편중된 자원을 다음 세대에게 제공하여 이들에게 자신들의 미래가 적어도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전환도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성장주의와 물질주의만을 추구해온 자본주의는 이미 한계상황에 다다랐다. 지금이라도 인류와 지구를 위해 인간, 동물, 그리고 자연 모두를 존중하는 ‘가치’를 사회적 지향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최악의 상황인 남북관계의 개선과 요동치는 국제질서 아래 한반도 평화를 이뤄내는 일은 시급한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일은 결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청년이 나서야만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늦었지만 기성세대의 성과를 청년들에게 조건 없이 내어줘야 한다. 그나마 있는 자원이 있다면 그것도 모조리 다 넘겨주자. 불안할 수도 있다. 관심이 없다는 청년들에게 자리와 역할을 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한시라도 지체 없이 시작해야만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존재적 위기’에 비로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기획한 <청년 한반도 평화 대화>는 청년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지금까지 통일평화운동에 열심이었던 우리 모두의 사고를 전환하려는 발버둥이다. 프로그램에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내어준 청년들을 통해 우리의 변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참가한 청년들이 즐겁고 편안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큰 변화는 시작된 셈이다.


  • 이미지 출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KYPI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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