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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평연-우리민족 공동칼럼](22) 이름 부르기, 그리고 새로운 관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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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Author
관리자
작성일/Date
2025-10-2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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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7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와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 공동 칼럼을 발표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이름 부르기, 그리고 새로운 관계 만들기


댄 가즌(Dan Gudgeon)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북한학유럽센터 부원장


자아와 타자는 인간 존재와 인식의 기초를 이루는 개념이다. 개별자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나와 나 이외의 외부 세계를 구분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 존재의 필수불가결한 요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분이 선을 넘어 과도해지면 그 위험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개별 인간 단위를 넘어 사회나 국가 단위에서 상대의 모습을 단순화하거나 왜곡시키는 구분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나타나는 위험성은 학살이나 전쟁 등의 형태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국가 차원의 구분은 ‘우리’와 ‘그들’로 표현된다. 이러한 구분은 보통 국가 정체성과 깊이 연결되기도 하는데, 이는 종종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구분이 있어야만 우리가 누구인지 설명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이러한 구분은 결국 끝없는 경계짓기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한반도는 이러한 문제의 극단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남과 북은 동일한 민족을 공유하면서도, 분단 이후 서로 다른 국가 정체성을 절대화하며 스스로를 ‘진짜 코리아’로 규정하고자 했다. 남쪽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충성하는 국민만이 온전한 한국인으로 간주되었고, 북쪽에서는 ‘사회주의적’ 충성을 다하는 인민만이 올바른 조선 사람으로 인정되었다. 이렇게 남북은 각자의 체제 논리에 맞춰 한국인과 조선인의 범위를 제한했고, 그 결과 ‘민족’은 화해의 자산이 아니라 배제와 적대의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사진 1: 올림픽 시상식에서 나란히 게양되는 태극기와 인공기, 사진은 2024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54kg급 시상식 장면으로 한국과 북한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했다. 연합뉴스

절대화를 넘어서는 목소리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는 이러한 절대화를 넘어서는 목소리들이 존재했다. 민주화 운동은 냉전 시대의 ‘빨갱이’ 담론에 도전하며 북한을 무조건적인 적으로 규정하는 언어를 뒤흔들었다. 이후 민간의 많은 대북 협력단체들은 북쪽에 직접 들어가 지원과 협력사업을 펼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새로운 실천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노력은 추상적 평화 담론을 넘어 ‘우리’와 ‘그들’을 절대화하지 않는 관계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한국의 민간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일하는 홍상영 사무총장은 지난 2019년 사무총장 취임식에서 이전의 협력 경험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비록 같은 민족이지만 삶의 궤적이 다르기에 생각도 다르고 행동방식도 달랐다. 처음에 저는 그들을 일방적으로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제가 변해야 상대방도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변화는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간에 이루어져야 했다. 이제 저는 함께 하면 모두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

이 발언은 단순한 경험담이 아니다. 그것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흡수하는 방식으로는 평화가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이며, 자기와 타자를 넘어서는 새로운 관계의 논리를 보여준다. 국가가 절대화한 민족주의의 경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상호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일깨우는 것이다.

사진 2: 민간의 많은 대북 협력단체들은 북쪽에 직접 들어가 지원과 협력사업을 펼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새로운 실천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2006년 평양시 강남군 당곡리 협동농장에서 진행한 남북 벼베기 공동행사 장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한반도가 앞으로 나아갈 길도 역시 통일이라는 단일한 목표로만 설명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오늘날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통일은 절박한 과제가 아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생존과 미래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이들에게 통일은 현실적 관심사가 아니라 피곤하게 반복되는 정치 구호일 뿐이다. 또한 남북 문제를 이야기하는 순간 치열한 남남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니, 많은 청년은 아예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 이미 답이 ‘통일’로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대안을 모색하기란 어렵다. 결국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남북 문제는 일상적 삶과 멀리 떨어진 주제가 된다. 이와 동시에 지난 30년간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조선은 서구 언론에서 ‘문제적 국가’로 각인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핵무력을 갖춘 한 체제가 언제 붕괴할 지를 가정하며 긴장을 이어가기보다는, 남북간 긴장을 줄이고 공존의 공간을 넓히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필요한 과제다.

그들이 선택한 이름을 부르는 것

분단국가의 주권은 ‘불완전하고 겹쳐 있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평화는 상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변화된 상황에서 평화를 위해 중요한 것은 두 국가가 서로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는 것일 게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한반도 전체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단 하나의 정통 국가만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고정시킨다. 그 결과 다른 한쪽은 불법적이거나 미완성된 ‘타자’로 규정되고 평화를 위협하는 흡수 논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만일 대한민국이 이 조항을 수정할 수 있다면, 한국은 더 이상 조선과의 대립을 통해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을 통해 ‘자기’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여러 형태의 ‘코리아성’이 함께 존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이 될 수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그들이 선택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그 시작일 수 있다.

조선을 별도의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미래의 통일 가능성을 닫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게 하며, 통일이라는 목적론적 사고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화해의 미래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평화는 단순히 체제 경쟁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과정이다. 한반도는 국가의 절대성이 어떻게 갈등을 낳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공간이지만, 동시에 그 절대성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금 ‘우리와 그들’을 넘어서는 실험이 시작된다면, 그것은 한반도의 범위를 뛰어넘어 전세계에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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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 가즌(Dan Gudgeon)은 한국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당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일하기도 했으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상근 활동가로 재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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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 소개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분단의 현장에 자리하고 있는 천주교의정부교구가 2015년 9월에 설립하였으며,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이웃 종교인들, 그리고 시민 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이 땅의 화해와 평화 정착 방안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북한의 식량난이 가장 극심했던 1996년 6월,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6대 종단 및 시민사회 인사들이 함께하는 국민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인도적 대북지원과 남북교류협력사업,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다양한 정책사업, 시민참여활동, 국제연대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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