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註]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지난 2020년부터 평양(개성)탐구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노이 노딜과 코로나19 등으로 남북간의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 북한 지역을 하나의 여행지로 간주하고 북한에 대해 미리 탐구를 해 보자는 취지로 마련한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 이름도 ‘북한’을 쓰는 대신 북한의 여러 지역을 가볍게 여행한다는 측면에서 ‘평양’과 ‘개성’이라는 도시명을 사용했습니다.
평양(개성)탐구학교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시간, 참가자들은 조를 나누어 자신들이 직접 설계한 평양과 개성, 혹은 다른 지역의 여행 일정을 발표합니다. 이렇게 마련된 여행 일정이 지금까지 수 십 편에 이릅니다. 아래에 평양(개성)탐구학교 참가자들이 직접 마련한 여행 일정을 소개합니다.
여성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평양개성탐구학교 조별 과제를 마치고①
류재순(2025 평양개성탐구학교 참가자)
우연하게 참가하게 된 2025 평양개성탐구학교. 2025년 9월 18일부터 10월 30일까지 6차례에 걸쳐 준비된 강의와 소해금 연주를 들으면서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북한을 정말 알고 있는가? 아니면 만들어진 이미지 속 북한만을 알고 있는가?”
정답 없는 질문 속에서 헤매고 있는 중에 어느덧 다가온 평양개성탐구학교의 마지막 졸업식 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는 조별로 북한 지역의 여행 계획을 작성해 발표하라고 한다. 내가 속한 3조는 김미양 선생님과 나, 이렇게 단촐하게 구성되었다.
‘그래, 답없는 질문에 헤매느니 차라리 직접 우리만의 여행 계획을 만들어 보자.’ 그렇게 만들어진 여행 계획이 아래에 소개하는 평양과 개성, 해주를 잇는 ‘여성사 여행’이다.
‘여권통문(女權通文)’은 1898년 평양에서 작성된 한국 최초의 여성 인권선언이다. 평양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외친 도시였다. 백선행, 권애라, 강주룡 같은 여성들의 삶을 알게 되면서, 나는 ‘이 여성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공간을 직접 걸어본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여행의 목적은 분명했다. 첫째, 북한을 체제나 이념이 아니라 사람, 특히 여성들의 삶으로 이해하는 것, 둘째,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남과 북의 여성사가 실제로는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 셋째, 북한 주민의 일상을 가능한 한 실제에 가깝게 경험하는 것이었다.
예산은 현실적으로 1인 약 380만원 규모로 책정했다. 항공료와 비자 발급, 중국 체류비, 북한 체류비 등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고려항공으로 평양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결정했다.
1일차: 평양의 여성 사업가
1일차 일정은 베이징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뒤, 첫 식사를 옥류관에서 냉면으로 시작한다. 평양을 처음 접하는 순간, 일상의 감각으로 도시를 느끼고 싶었다. 그 다음은 백선행 기념관이다. 가난한 소녀로 팔려왔지만 스스로 자립해 거부가 되었고, 그 부를 사회에 환원한 백선행의 삶은 이 여행의 출발점으로 완벽할 것이다. 만수대 거리를 걸으며 도시의 상징성과 여성사의 접점을 생각하고 저녁에는 오리고기 전문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양각도호텔에서 짐을 푼다.
2일차: 여성 교육과 예술
둘째날은 숭의여학교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송죽회가 만들어지고 권기옥, 황혜덕 등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공부하고 자각했던 장소다. 나는 이 교정을 걸으며 그들의 학창시절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이어 최승희, 윤심덕, 강경애 등 여성 예술가와 작가들의 흔적을 따라 평양 시내 여러 곳을 방문한다. 저녁에는 평양의 4대 음식에 속하는 청류관의 숭어탕을 먹고 다시 양각도호텔에서 숙박한다.
3일차: 개성과 해주의 여성 독립운동
사흘째는 평양에서 개성으로 이동해 호수돈여학교를 방문한다. 이곳은 권애라가 활동했던 3.1운동의 중요한 기반이다. 개성 전통음식을 맛본 뒤 해주로 이동해 기생들이 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배포했던 사건의 현장을 찾아간다. 사회적 약자로 여겨졌던 기생들이 오히려 가장 용기있는 행동을 했다는 사실은 여성사에서 반드시 기록해야 할 중요한 장면이다. 밤에는 다시 평양으로 돌아와 호텔에서 숙박한다.
사진 설명: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간 강주룡.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
4일자: 강주룡을 중심으로 한 여성 노동운동
마지막 날은 을밀대에서 강주룡을 기억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한다. 강주룡은 1931년 여성 노동자의 임금을 지급하라며 을밀대 지붕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인물이다. 을밀대 앞에 서서 그 높은 지붕을 바라보게 된다면, 나는 강주룡이 그곳에 오르기 전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점심 식사 후 평양 순안공항으로 이동해 고려항공을 타고 베이징을 거쳐 귀국한다.
이 여행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나는 북한을 완전히 새롭게 보게 되었다. 북한은 여성이 살아온 역사와 일상이 담긴 공간이었고 남과 북의 여성사는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었다. 평양과 개성, 해주의 공간들을 따라가며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또 하나의 멋진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