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와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 공동 칼럼을 발표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이종원 바오로(사제‧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위원)
이주사목 특성화 본당으로 소임을 온 지 어느덧 3년째이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풍경이지만, 처음 본당에 도착한 날 둘러본 관할 구역의 모습은 참 생경했다. 약속대로라면 진즉에 폐쇄되어야 할 미 2사단 캠프 케이시가 가장 볕 좋고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생경했고, 외국인(이라고는 하지만 분명 미군) 전용 클럽들도 생경했고, 미군 부대와 왕복 2차선 차도를 마주한 구역에 이주민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것도 생경했다. 동네 지리도 익힐 겸 이주민들이 모여사는 골목에 들어서자 나를 바라보던 그 살벌한 눈빛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며 돌아나왔던 경험 역시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사진 1: 2사단 캠프 케이시 ⓒ한겨레
3년 동안 이주민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한 것이었고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이주민 정책”(강제 추방 정책)에 관한 것이었지만, 때로는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대한 것도 있었다. 특히 북한에 대한 대통령실의 부정적 언급이 보도되거나 남한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적대적 언급이 보도될 때면, 곧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이주민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물론, 한국에서 5년 이상 산 이주민들은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눈치이지만,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하기 시작한 이주민들에게는 대단히 큰 위협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나중에 이들이 내전 혹은 내전에 준하는 국내 상황 때문에 고국을 떠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들 얼굴에 서리던 당혹감과 공포를 이해하게 되었다. 전쟁을 현실로 경험한 그들과, 전쟁을 글과 사진/영상으로만 경험한 나 사이에는 내가 도저히 좁힐 수 없는 큰 강이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평화’를 갈구하는 간절함의 깊이 또한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얕은 간절함으로 평화를 이야기했는지 처절하게 깨달으면서 말이다.
본당 어르신들 중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참전 용사들이 꽤 계시기에, 따로 시간을 내어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각각 70년, 50년 전의 일이건만, 그분들이 풀어내는 전쟁의 기억은 바로 어제 겪은 것인 양 생생했다. 사람 감각이 얼마나 예민하고 그리하여 기억 속에 단단히 새겨지는지 알 수 있는 순간도 있었는데, 총탄과 포탄의 소리, 화약 냄새, 한순간에 죽음의 강을 건너간 전우들의 마지막 얼굴 등을 공통적으로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또 전쟁이 지속되면서 마음이 어떻게 무뎌져 갔는지를 말씀해주신 것도 공통적이었다. 처음엔 너무나 두렵고 떨렸지만, 나중엔 ‘저들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에 기를 쓰게 되더란 말에, 나는 아무것도 되물을 수 없었다.
이주민들과 참전용사 어르신들에게 전쟁의 경험이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물었을 때, 그들의 대답 또한 비슷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는 것, 더 정확하게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신뢰를 다시 세우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아직도 완벽하게 세워지진 않은 것 같다는 것. 전쟁이 남기는 상처는 몸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상하게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는 순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는 전쟁과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당장 “List of conflicts in Asia”라고 검색해 보면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별로 나누어야 할 만큼 분쟁이 많다. 그런데도 한국의 미디어에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처럼 서방 언론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사건만 보도하고 있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행태이지 않을 수 없다. 국제사회의 관심과 개입 없이는 끝나지 않을 전쟁과 분쟁은 수도 없이 많은데, 내가 걱정없이 지내고 있다고 해서 무관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전쟁 중인 국가이니 말이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이 “하느님과 비슷하게 하느님 모습으로”(창세 1,26 참조) 창조되었다고 고백하며, 인간이 하느님 모상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협력하는 존재라고 가르친다. 이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뜻이라면, 당신이 창조한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일 테다. 결국 우리가 평화를 위해 분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셈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군중에게 이렇게 말한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 우리가 평화를 이룬다면 정말로 모두가 행복할 수 있으니, 이 말은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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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 소개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분단의 현장에 자리하고 있는 천주교의정부교구가 2015년 9월에 설립하였으며,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이웃 종교인들, 그리고 시민 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이 땅의 화해와 평화 정착 방안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북한의 식량난이 가장 극심했던 1996년 6월,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6대 종단 및 시민사회 인사들이 함께하는 국민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인도적 대북지원과 남북교류협력사업,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다양한 정책사업, 시민참여활동, 국제연대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