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와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 공동 칼럼을 발표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평화, 가까운 미래에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황수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민족 정책위원)
2025년 6월 4일 이재명 후보는 내란극복과 경제회복, 한반도 평화 회복 등을 공약하며 2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계엄과 탄핵 등의 6개월 간의 국내정치의 혼란 상황과 외교적 공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 일본 이시바 총리, 중국 시진핑 주석과 취임 후 전화통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의지를 피력했다. 남북관계 차원에서는 6월 11일 14시를 기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했고, 민간단체에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중단을 요청하며 전단살포 예방, 사후 처벌 등의 대책 강구를 지시했다. 특히 북한도 대북 확성기 방송에 호응하는 듯 접경지역의 대남 소음 방송을 중지하고 있다.
남북 간 신뢰 회복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예전처럼 밝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2025년 현재의 남북관계는 뜨거운 갈등(hot conflict) 관계라 할 수 있다. 남북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며 역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고, 남북회담, 대화, 교류, 지원, 통신, 연락 등 과거 남북 간 이뤄져 온 모든 교류협력사업들이 완전히 단절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단절은 남북 간 불신과 대립을 낳게 되고, 단절의 지속으로 인해 오해와 적대는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남북관계는 단순한 갈등을 넘어 적대적 갈등관계로 언제든지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새로운 정부는 출범과 함께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신뢰를 회복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정부가 최근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강력하게 요청한 것이 관계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대북방송과 대북전단 살포를 공식적으로 막지 않았던 기조를 이재명 정부에서는 임기 시작과 동시에 사실상 모두 중단시켜 남북 간 긴장 완화를 도모하고 접경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대북 메시지를 표명한 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남북 간 관리가능한 평화를 형성하자
남북 간 신뢰회복을 바탕으로 우발적 상황과 충돌에 대해 상호 관리가 가능한 단계인 차가운 평화(cold peace)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 차가운 평화는 냉전 즉 차가운 전쟁과 대별되는 개념으로 평화를 중심에 두고 향후 뜨거운 평화를 형성시키기 위한 준비작업이라 할 수 있다. 남북 간 차가운 평화를 형성하기 위해 우선 9.19 군사합의의 복원이 필요하다. 9.19 군사합의는 남북 군 당국 간 연락채널 복원 등 우발적인 충돌방지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등 남북군사당국대화의 정례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질서의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둘째, 접경지역 근처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 내의 군사훈련을 자제하는 선행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미연합훈련 중 민가에 전투기 오폭 사례가 발생하는 등 접경지역 내 우발적인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방안이 요구된다.
셋째, 재래식 군비통제를 통한 상호 위협 감소 방안과의 연계를 강구해야 한다. 남북 간에도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축소를 위한 합의가 있다. 남북 간 치열한 군사적 대치와 경쟁을 해소하기 위해 1990년대 초 탈냉전기 남북 간 화해와 협력 분위기 속에서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과 단계적 군축 가능성을 담은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가 대표적이다. 또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서도 남북은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신뢰구축의 정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시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9.19 군사합의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남북 간 군비통제를 통해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신뢰구축을 형성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같이 군비통제를 통한 남북 간 상호 위협의 가능성을 낮추는 방안을 적극 고민해야 하겠다.
넷째, 남과 북은 대화의 과정 속에서 서로에 대한 ‘적(敵)’이라는 표현을 자제하여 적대성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언어가 의식을 지배하듯 상호 적대적인 언사를 자제하는 모습을 통해 적대성 완화를 모색할 수 있겠다. 언어와 의식의 적대성 완화를 통해 상호불가침과 무력통일배제 등 남북 간 실질적 적대성 완화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
남북 간 관리가능한 평화를 넘어 평화를 사랑하고 주도하자
이재명 정부는 단순히 남북관계의 개선과 회복에 머무는 데 그치지 말고, 남북관계 개선을 발판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평화애호국, 평화를 선도하는 평화주도국의 이미지를 형성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분단, 전쟁, 갈등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한류 등의 영향으로 한국의 이미지가 다소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전쟁과 분단이라는 폭력적이고 대립적인 이미지는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재명 정부는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평화가 전 세계의 평화로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외교적 노력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평화의 형성과 주도가 이재명 정부에서 추구하는 실용외교의 발판이자 주춧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한국이 세계의 평화주도국가로의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 사회 내부의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가 성숙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 내의 폭력성, 차별, 불평등 제반 문제의 해결 노력과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국제적인 평화주도국가는 위선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주도해야 한다. 지난 남북관계의 역사는 대결과 군사적 해법이 결코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평화협정 체결, 군비통제 및 군비축소 협력 등 남북 간 공존을 제도화하고 평화를 창출하는 노력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물론 엄혹한 국제사회의 현실에서 강한 국방력이 필수적이지만, 이는 방어적, 억제적 성격으로 규정하고 상호 투명성을 확보하는 과정 속에서 군사적 긴장완화를 추진해야 한다.
셋째, 국제사회에 평화를 위한 갈등 중재, 개발협력, 분쟁 예방 등 평화중견국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신장된 만큼 소위 ‘한국형 평화메커니즘’을 구축하여 국제평화외교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늘려 군대보다 구호와 재건을 전면으로 내세워야 한다. 특히 가자지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류 참상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통해 평화회복에 앞장서야 한다.
넷째, 살상무기 수출과 방위산업 육성보다는 생태주의적 사고와 실천을 통한 ‘평화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류가 지속가능한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무기 개발 및 도입 등 군비증강 정책에 따른 소위 힘에 의한 평화를 지양해야 한다. 무기로 평화를 살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며, 세계 각국이 무분별하고 경쟁적으로 증가시키는 각종 군사비와 군사무기에 대해 감축시키는 노력을 하며 한반도의 평화가 전 세계의 평화로 확장되도록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평화주도국으로 역할을 할 때 실용외교는 지속가능하며 안정적일 수 있다. 국제사회에 남북관계 개선을 평화 이슈로 확장시켜 “평화를 위해 평화를 준비한다”라는 메시지의 성공사례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평화는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에도 충분히 실현가능한 영역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