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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 평화 칼럼](3) 전쟁 시스템과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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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026-05-1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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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 평화 칼럼](3) 전쟁 시스템과 한반도 평화


김동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센터 정책연구위원 / 한신대 석좌교수)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폭탄 소리를 들으며 잠들지 못하고 있다. 2026년 봄, 중동의 하늘은 다시 연기로 물들었다. 2024년부터 계속된 가자 대량학살의 참화가 채 가시기도 전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시작되었다. 외교적 협상이 진행되던 바로 그 순간 폭격이 가해졌고, 수천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중동 전역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고, 휴전 협상도 거듭 결렬되고 있다. 우리와 멀리 떨어진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불편한 곳에 있다.

전쟁 시스템과 우리 삶의 자리

평화학자 이언 에이택(Iain Atack)은 전쟁을 단순한 개별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system)'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이해하기 위해 '피스 빌딩(peace-building)'과 '피스 메이킹(peace-making)'을 구분하듯, 전쟁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워 빌딩(war-building)'과 '워 메이킹(war-making)'을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무기를 생산하고, 군대를 훈련시키고, 군사 기지를 구축하는 워 빌딩이 지속되기 때문에 언제든 워 메이킹이 가능해진다. 전쟁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사회·경제·정치 구조 깊숙이 누적된 투자와 의지의 산물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2조 8,870억 달러(약 4,256조 원)로 11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세계 GDP 대비 군사비 비중은 2.5%로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이며, 미국·중국·러시아 세 나라만으로 전체의 51%인 1조 4,800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유럽의 군사비 역시 한 해 만에 14% 급증해 냉전 종식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거대한 전쟁 시스템 안에서 한국인의 삶의 자리를 생각해보자.

표 설명: SIPRI의 2021~2025 세계 무기 수출국 순위. 한국은 9위를 차지했다.  출처: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2025년 한국의 방산 수출액은 154억 달러(약 23조 원)로 전년 대비 60% 이상 급증했으며, 2026년에는 270억 달러 이상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방산 4사의 수주 잔고는 이미 130조 원에 달한다. 폴란드 평원의 전차부터 중동의 지대공 유도무기체계까지, 글로벌 전장 곳곳에 이제 K방산이 있다. 누군가가 전장에서 죽어가는 동안, 한국의 주식 시장에서는 방산주가 오른다. 언론은 이를 '방산 르네상스'라 부르고, 증권가는 '국가대표 성장주'라 치켜세운다.

우리는 이 수치와 표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시해야 한다. 직접 무기를 들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전쟁 시스템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누군가의 전쟁이 우리 경제의 '기회'로 읽히는 순간, 우리는 그 전쟁의 방관자가 아니라 그 구조의 직접적 참여자가 된다. 기후 위기 앞에서 우리 모두가 탄소 배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듯이, 전쟁 시스템 앞에서도 우리 자신의 책임을 돌아보아야 한다. 전쟁은 절대로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없다.

인간화의 문제: 베들레헴에서 한반도까지

물론 전쟁이 잠시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있다. 전쟁은 나와 다른 집단에 속한 이들을 사람이 아닌 무언가로 만드는 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비인간화할 때, 그들의 죽음은 수치가 되고 통계가 된다. 우리의 이익 앞에서 저쪽의 고통은 보이지 않게 된다.

2023년 성탄절 전날, 베들레헴 루터교회의 문터 아이작(Munther Isaac) 목사는 잔해 속에 놓인 아기 예수 형상 앞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설교를 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있음을 증언하면서도,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 걱정된다고 말했다. 대량학살을 수행하고 공모함으로써 스스로의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학살에 공모한 이들이여, 당신들은 이것으로부터 회복될 수 있겠는가?" 그 질문은 폭탄보다 더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이 물음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전쟁 시스템 안에 있는 모든 사회를 향한 물음이다. 한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수출 통계 안에 있지만, 우리의 시야 안에는 없다. 타인의 고통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이 반복될 때, 그 사회는 무엇을 잃어가는가. 방산주가 오를 때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은 돈이 아니라 인간성의 일부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전쟁 시스템에 맞서 인간성을 지킬 수 있는가? 평화학적 관점에서 그 응답은 두 차원으로 나뉜다. 개별 전쟁을 멈추려는 피스 메이킹과, 전쟁 시스템 자체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평화의 관계와 구조를 세우는 피스 빌딩이다. 워 빌딩이 무기 생산·군사 기지·군비 확장으로 이루어진다면, 피스 빌딩은 신뢰 구축·인도적 협력·교류 확대로 이루어진다. 피스 메이킹이 휴전이나 평화협정을 통해 전쟁이 없는 소극적 평화를 추구한다면, 피스 빌딩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을 통해 우리가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하고, 상대 역시 사람임을 기억하게 한다. 비인간화가 전쟁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면, 인간화는 평화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6.25전쟁 이후 남과 북은 서로를 인간이 아닌 존재로 교육해왔다. 학교에서 북한 사람을 '악마'로 그리도록 가르쳤던 역사는 멀지 않다. 북한 주민들은 악마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었고, 한때 가족이었다. 그 단순한 진실을 되찾는 것이 전쟁 시스템에 대응하는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이다. 그 대표적 실천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인도적 남북협력 활동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긴급 구호를 넘어 농업·보건의료 분야의 협력을 전개했고,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정책 활동과 국내외 연대 네트워크 형성에도 힘써왔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구조 안에서도 이념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이 실천은, 전쟁 시스템의 논리에 맞서는 구체적인 피스 빌딩이자 전쟁 시스템에 대한 평화적 저항이다.

워 빌딩에서 피스 빌딩으로

2026년 3월, 한국 정부는 한반도 평화공존을 기조로 하는 제5차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치적 수단이 아닌 목표로 삼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남과 북 모두 저마다의 국가이익은 한반도 너머 다른 지역 사람까지 포함한 평화공존보다는 전쟁 시스템을 통한 경제적 이익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이 외부에 알려지던 1996년, 천주교·기독교·불교 등 6대 종단과 주요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모여 창립되었다. 그 출발점은 분명했다. 남북 간의 반목과 대립을 넘어, 인도적협력과 교류를 통해 화해와 공존을 이루어가는 것. 그것은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응답이었다.

사진 설명: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창립 대회 모습

이 운동이 30주년을 맞이한 2026년 현시점에서 사람에 대한 응답은 남북이 서로 돕는 것을 넘어, 전 세계 분쟁 지역의 사람들이 서로 돕는 운동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중동의 전쟁과 한반도의 긴장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전쟁 시스템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가자의 어린이들과 연대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와 무관하지 않다. 중동뿐만 아니라 전 세계 분쟁 지역 민간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것이 동북아 평화 질서와 연결되어 있다. 한국산 무기가 참여하고 있는 전쟁의 사람들 역시, 우리가 서로 도와야 할 존재들이다. 서로 다른 분쟁 지역의 시민사회가 경험을 나누고 서로를 도우며 인간성 연대의 네트워크를 세우는 것, 그것이 전쟁 시스템을 해체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길이다.

전쟁은 잠시 이익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비인간화의 끝은 전 인류의 공멸이다. 문터 아이작 목사의 물음이 우리에게도 향한다. 방산주가 오르고 수주 잔고가 130조 원을 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겠는가.

6.25전쟁이 시작된 지 76년이 지났다. 그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같은 한반도의 시민사회운동은 끝나지 않은 전쟁 속에서도 서로를 돌보아왔고, 평화를 지속해왔다. 이제 전 세계의 전쟁 시스템 앞에서 우리는 그 시스템의 참여자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그 시스템에 평화적으로 저항하는 이들이 될 것인가. 한반도와 전 세계에서 평화는 우리가 서로를 지금 이 순간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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