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와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 공동 칼럼을 발표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이해’와 ‘대변’ 사이에서, 통일부의 역할을 묻다
홍상영 사무총장(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지난 7월 14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북한 대변인’ 발언이 주목을 받았다. 청문회 중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북한의 시각을 설명하는 정 후보자에게 “북한의 대변인 같다”고 비판했고, 이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들은 “일방적 낙인찍기”라고 반박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청문회는 곧 이념 공방으로 번졌다.
사진 1: 7월 14일 있었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 모습
이 과정에서 눈에 띈 장면은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이었다. 그는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입장을 일정 부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는 정확한 인식과 전략 수립의 기본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한 표현 논쟁이 아니라, ‘북한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왜 낙인이 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었다.
‘북한 대변인’이라는 표현은 단지 정 후보자의 발언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보수 진영이 사용해 온 전형적 프레임이 작동한 사례였다. ‘종북’, ‘친북’ ‘반국가세력’ 등과 같은 이념적 낙인은 정책 논쟁을 단순화시키고, 상대를 배제하거나 침묵시키는 수단으로 작동해왔다.
이에 맞서 홍기원 의원은 통일부 장관이 남북 협력을 위해 북한의 입장을 일정 부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외교부가 외국의 시각을 국내에 전달하듯, 통일부 역시 북한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역할을 통해 실질적인 정책 조율과 전략 수립이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그는 이러한 설명이 북한을 옹호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줄이고 현실적 해법을 찾기 위한 전략적 판단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단순한 방어 논리가 아니라,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야를 넓히자는 실용적 제안으로 읽힌다.
이해하는 것과 대변하는 것
‘북한의 대변자’라는 표현은 보수 진영이 자주 사용하는 이념적 공격의 언어다. 하지만 ‘이해’와 ‘대변’은 분명히 서로 다르다. 이해란, 상대의 입장과 배경을 파악하고 분석해 그 행위의 맥락을 설명하려는 노력이지만, 대변은 그 입장을 그대로 옹호하거나 대신 말하는 것을 뜻한다. 북한의 논리를 맹목적으로 수용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조건과 인식을 바탕으로 움직이는지를 파악하고 설명하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남한 사회도 냉정하고 정교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의 당사자인 북한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바탕으로 대화를 주도하고, 변화된 조건을 정확히 파악하며, 평화적 공존과 공동 번영의 미래를 모색하는 것은 통일부의 본연의 사명이다. 오늘날 외교·안보의 세계는 ‘상대의 입장과 논리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에 따라 전략의 성패가 갈린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입장을 국민과 정치권에 정확히 전달하는 일은 오히려 통일부 장관의 핵심적 책무라 할 수 있다.
물론 보수 진영이 제기하는 우려 또한 경청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자’는 말이 현실의 안보 위협이나 인권 침해 상황을 과소평가하거나,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은 무시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분단과 전쟁, 냉전과 이념 대립의 긴 역사를 지나왔고, 그 속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안보 불안과 북한 체제에 대한 경계심은 결코 가볍게 다뤄져선 안 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냉정하고 차분한 접근이 필요하다. 적대와 낙인의 언어로는 결코 평화도, 공존도, 통일도 실현될 수 없다. 정책 논쟁이 이념의 충성도를 겨루는 싸움으로 바뀌면, 정작 중요한 해법과 방향은 사라지고 진영끼리 감정적 말싸움만 남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의 정치’이며, 다양한 시각을 포용하는 ‘소통의 정치’다.
열린 대화와 시민적 상상력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는 단지 한 개인의 자격을 따지는 자리를 넘어, 우리 사회가 남북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낙인찍는 말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논의이며,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는 태도이다.
사진 2: 7월 25일 취임 첫 날, 판문점을 방문해 남북직통전화 송화기를 들고 있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
남북관계는 단순한 구호로 해결될 수 없다. 북한의 태도 변화, 군사적 위협, 내부 억압과 국제 질서 속의 행보는 분명히 비판해야 할 지점이지만 동시에 교류와 협력의 가능성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이런 복합적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사람에게 소위 ‘북한 편’ 이라는 말로 낙인을 찍는다면, 우리는 평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쳐 버리는 셈이다.
이제는 정치적 낙인과 이념적 적대가 아니라, 열린 대화와 실용적 상상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토론 문화가 필요하다. 통일부는 북한을 정확히 이해하고, 조정하고 설계하는 전략부서로 거듭나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외교와 정보, 위기관리 등 오늘날의 안보전략에 꼭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다. 북한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북한을 대변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을 잘 지키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남북관계는 더 이상 정치권과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고 함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진영논리가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미래를 상상하고 만들어 가는 힘이다. 이제는 통일과 안보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과 언어를 바꾸고, 갈등의 시대에서 공존의 시대로 넘어가려는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은 북한 대변인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남북의 갈등을 넘어 평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가치와 기준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가 국민을 위한 진짜 전략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