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공지

[가동평연-우리민족 공동칼럼] (14) <청년 한반도 평화 대화>를 준비하는 마음가짐

[함께읽기]
작성자/Author
관리자
작성일/Date
2025-05-12 11:50
조회/Views
4038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와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 공동 칼럼을 발표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청년 한반도 평화 대화>를 준비하는 마음가짐


김성경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센터 소장, 북한대학원대학교)


“한반도 평화요? 진부해요.”

오랜만에 집에 들른 조카 H에게 평화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고야 말았다. 한반도 평화와 청년이라는 주제를 받아들고 오후 내내 컴퓨터 앞을 서성거리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숙모는 여전히 평화 뭐 그런 것 하시나봐요. 진짜 오래하시네요.”

예의가 바른 편인 H는 상냥하게 답했지만 이미 표정에서는 딱하다는 감정이 깊게 배여 있다. 갑자기 조바심이 든다.

“아니, 난 너무 궁금하거든. 왜 너 같은 젊은 애들이 평화에 관심이 없는지. 우리나라가 분단되어 있기도 하고, 지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잖아.”

내 말이 점점 길어지자, H는 답답하다는 듯이 쏟아낸다.

“MZ라는 애들이요. 저를 포함해서. 사실 엄청 불안하고, 자존감도 낮고요. 그렇다고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없고. 그러니까 자꾸 자신이 누구인지에 집중하는 거예요. 주변이나 사회, 뭐 한반도 평화 이런 거창한 것보다. 지금 내 마음과 상태에 더 관심이 많은 거죠. 너무 먼 얘기잖아요. 당장 내 마음이 힘든데, 평화 그게 뭐 대수라고.”

마음속에서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든 거냐는 질문이 맴돌았지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정말 ‘꼰대’가 될 것을 직감했다. 만약 어쭙잖게 이해하는 척하며 ‘내가 네 나이 때는...’으로 시작하는 충고에 나선다면 상당 기간 동안 H를 만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이제 청년을 이해하기에는 나의 사고와 몸의 감각이 너무 뻣뻣해졌음을 절감했다.

하긴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경험과 의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역사상 단 한 번도 기성세대와 청년들의 조화로운 통합은 이뤄진 적이 없지 않았는가. 언제나 청년은 기성세대의 권위에 저항하고 비판하며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가지 않았던가.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인류 문명의 역사가 아니었는가.

여러 질문들을 이어가다 보니 한 가지 쟁점이 떠오른다. 과연 지금의 청년들이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질서에 저항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지 여부 말이다. 청년세대 하면 떠오르는 서구의 68세대나 한국의 386세대처럼 지금의 청년들이 그러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우선 68세대와 386세대의 특징은 이들이 자본주의의 물질적, 경제적 수혜를 본 집단이라는 데 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였던 68세대는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물질적 자원 속에서 마음껏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었고, 기존 질서와 권위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사회운동을 추동하기도 했다.

68세대의 로컬화 사례가 바로 386세대이다. 남한사회가 급속 성장을 이뤄내자 교육 자본이 확충되었고, 물질적 풍요가 가능해지자 당시 청년들이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냈다. 결국 과거 사회 변화를 추동했던 대표적 세대들은 자본주의 확산기의 물적 토대와 복지국가가 제공하는 교육 기회 확대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기성세대에 저항하고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만들어가는 미래 세계에 대한 확신과 희망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의 청년들은 어떠한가. 민주화와 산업화, 거기에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조건 내에서 성장한 청년들은 부모 세대보다 더 나은 교육을 제공받았다. 하지만 한계에 다다른 경제 시스템과 급속한 기술발전으로 인해 일자리 환경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때 불안정한 일자리의 상징과 같았던 비정규직은커녕 플랫폼 노동이라는 극단적 유연 노동이 확산되어 안정적인 경제활동은 꿈꿀 수조차 없게 되었다. 게다가 전방위적으로 유입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부는 극소수에게 편중되었고, 노동 임금으로 살아가는 대다수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현재 한국 청년세대에게 기성세대는 허물어뜨려야 하는 구체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기생’해야만 하는 자원이 되었다. 스스로 미래를 기획할 자원도, 경험도, 무엇보다 자신감도 결여된 청년들이 기성세대의 규범과 구조에 반기를 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미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들이 일상적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을 이겨내고자 온갖 종류의 심리검사와 성격유형 검사 등에 매달리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결과일는지도 모르겠다.

더 큰 문제는 한국사회가 매달려온 교육 제도에서 가장 똑똑한 청년들을 배출해왔지만 이들이 습득한 능력을 활용하여 사회적 성취를 이뤄낼 기회는 제한적이라는데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기성세대들이 여전히 노동 현장의 핵심으로 남아있는 까닭에 청년들이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스스로 자신들의 역량을 증진하기란 쉽지 않다. ‘MZ 세대’는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이기적’ 존재이자, 온갖 소비에만 매달리는 ‘철없는’ 이들로 재현된다. 탈이념적인 성향으로 스윙보터로 분류되는 까닭에 선거철만 되면 온갖 정치세력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지만 이들에게 자리와 역할을 제대로 내어주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몇몇 용감한 청년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보려고 나섰다가 좌절하며 다시금 각자의 동굴로 숨어 들어가는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너무 비관적으로 현 상황을 진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주변에는 나름의 역할에 열심인 청년들이 가득하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하긴 계엄과 내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응원봉을 든 청년들의 활약은 모두의 기대를 뛰어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떠한가? 탄핵 이후 광장을 가득 메웠던 청년들의 불안이나 고통이 대선 국면에서 다뤄지고 있는가? 대선 후보의 뒤편에 마치 병풍처럼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청년들에게 ‘자리’를 내어줬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가 과연 청년들에게 사회문제에 왜 관심이 없는 거냐고 물어볼 자격이 있을까?

이제라도 청년들이 마주한 물적 토대의 한계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이미 한국 사회는 충분한 물적 토대가 있고, 더 ‘잘 사는’ 사회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특정 분야에 편중된 자원을 다음 세대에게 제공하여 이들에게 자신들의 미래가 적어도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전환도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성장주의와 물질주의만을 추구해온 자본주의는 이미 한계상황에 다다랐다. 지금이라도 인류와 지구를 위해 인간, 동물, 그리고 자연 모두를 존중하는 ‘가치’를 사회적 지향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최악의 상황인 남북관계의 개선과 요동치는 국제질서 아래 한반도 평화를 이뤄내는 일은 시급한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일은 결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청년이 나서야만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늦었지만 기성세대의 성과를 청년들에게 조건 없이 내어줘야 한다. 그나마 있는 자원이 있다면 그것도 모조리 다 넘겨주자. 불안할 수도 있다. 관심이 없다는 청년들에게 자리와 역할을 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한시라도 지체 없이 시작해야만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존재적 위기’에 비로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기획한 <청년 한반도 평화 대화>는 청년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지금까지 통일평화운동에 열심이었던 우리 모두의 사고를 전환하려는 발버둥이다. 프로그램에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내어준 청년들을 통해 우리의 변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참가한 청년들이 즐겁고 편안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큰 변화는 시작된 셈이다.


  • 이미지 출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KYPI 2018

전체 1,410
번호/No 제목/Title 작성자/Author 작성일/Date 조회/Views
공지사항
[알림] [제82차 평화나눔 정책포럼] 새로운 남북관계 - 정부와 시민사회, 무엇을 해야 하나?
관리자 | 2025.06.13 | 조회 2192
관리자 2025.06.13 2192
공지사항
[캠페인]‘적대를 멈추고 평화로!’ - DMZ 생명평화걷기, 그리고 평화대회
관리자 | 2025.06.10 | 조회 2416
관리자 2025.06.10 2416
공지사항
[함께읽기][청년 한반도 평화 대화 후기 3]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분단’
관리자 | 2025.06.09 | 조회 2440
관리자 2025.06.09 2440
공지사항
[함께읽기][청년 한반도 평화 대화 후기 2] ‘우리는 적대와 혐오, 편견을 넘을 수 있을까?’
관리자 | 2025.05.31 | 조회 2612
관리자 2025.05.31 2612
공지사항
[가동평연-우리민족 공동칼럼] (15) "남북관계는 끝난 걸까?"
관리자 | 2025.05.31 | 조회 2620
관리자 2025.05.31 2620
공지사항
[알림]우리민족, ‘민간 남북협력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보고서 발간
관리자 | 2025.05.27 | 조회 2635
관리자 2025.05.27 2635
1404
[함께읽기][청년 한반도 평화 대화 후기 1] ‘통일은 먼 이야기지만, 평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관리자 | 2025.05.25 | 조회 2348
관리자 2025.05.25 2348
1403
[연대]북민협∙민화협∙시민평화포럼과 더불어민주당 선대위가 서명한 정책협약서(전문)
관리자 | 2025.05.22 | 조회 1272
관리자 2025.05.22 1272
1402
[연대]북민협∙민화협∙시민평화포럼,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와 정책협약 체결
관리자 | 2025.05.22 | 조회 1120
관리자 2025.05.22 1120
1401
[연대]차기 정부에 전달하는 남북관계와 평화통일분야 정책제안 토론회
관리자 | 2025.05.22 | 조회 1322
관리자 2025.05.22 1322
1400
[연대]<초대합니다> 남북관계 및 평화통일분야 정책토론회 - 차기 정부에 바란다!
관리자 | 2025.05.16 | 조회 3176
관리자 2025.05.16 3176
1399
[연대]6.6 모이자 임진각으로! - DMZ순례단과 함께하는 한반도 평화대회
관리자 | 2025.05.15 | 조회 4608
관리자 2025.05.15 4608
1398
[함께읽기][가동평연-우리민족 공동칼럼] (14) <청년 한반도 평화 대화>를 준비하는 마음가짐
관리자 | 2025.05.12 | 조회 4038
관리자 2025.05.12 4038
1397
[함께읽기]'아이들은 어떻게 평화를 배우지?' - 계수초 선생님의 평화축구 수업후기
관리자 | 2025.04.28 | 조회 6048
관리자 2025.04.28 6048
1396
[함께읽기]'아일랜드 청년이 바라본 한반도와 그 너머의 평화'
관리자 | 2025.04.22 | 조회 6516
관리자 2025.04.22 6516
1395
[알림]'평화, 미래를 만나다' - 청년 한반도 평화 대화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관리자 | 2025.04.22 | 조회 8170
관리자 2025.04.22 8170
1394
[함께읽기][가동평연-우리민족 공동칼럼] (13) 예측 불가능이 희망의 근거
관리자 | 2025.04.21 | 조회 6554
관리자 2025.04.21 6554
1393
[알림]2024년 연간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 실적 명세서
관리자 | 2025.04.14 | 조회 3414
관리자 2025.04.14 3414
1392
[알림]2024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업보고서 발간
관리자 | 2025.04.07 | 조회 6271
관리자 2025.04.07 6271
1391
[알림]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성명서 - 윤석열 파면은 주권자 시민의 승리
관리자 | 2025.04.04 | 조회 6894
관리자 2025.04.04 6894
1390
[함께읽기][가동평연-우리민족 공동칼럼] (12) 해방 80년의 남북관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관리자 | 2025.03.26 | 조회 9057
관리자 2025.03.26 9057
1389
“아버지의 이야기이자 딸 지형의 성장기” - '유령의 시간' 작가와 함께 한 북 콘서트
관리자 | 2025.03.20 | 조회 3640
관리자 2025.03.20 3640
1388
[알림]<참여신청> 제81회 정책포럼 - '유령의 시간' 김이정 작가와 함께하는 북콘서트
관리자 | 2025.03.04 | 조회 9157
관리자 2025.03.04 9157
1387
[함께읽기]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무국적 고려인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전합니다.
관리자 | 2025.03.03 | 조회 3813
관리자 2025.03.03 3813
1386
[스토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20기 첫 공동대표 회의가 열렸습니다
관리자 | 2025.02.28 | 조회 4259
관리자 2025.02.28 4259
1385
[캠페인]한반도 평화행동,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 발송
관리자 | 2025.02.21 | 조회 10110
관리자 2025.02.21 1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