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와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 공동 칼럼을 발표합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쉬어갔던 평화
고병관 요셉 (천주교의정부교구 신부)
유치원을 다닐 무렵, 아버지가 사주신 토이 스토리 비디오는 한국어 더빙도, 한글 자막도 없었다. 다섯 살의 나는 영어를 몰랐지만, 우디와 버즈가 다투다 앤디와 멀어지고 다시 그에게 돌아가는 이야기라는 큰 흐름은 느낄 수 있었다. 말은 몰라도 이야기의 방향은 읽을 수 있었다. 손짓, 발짓, 표정과 어조가 잘 느껴졌기에 언어의 장벽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북아일랜드의 코리밀라(Corrymeela)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 이번엔 상황이 달랐기에 언어 앞에서 작아졌다. 외국인과 대화해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일랜드, 멕시코, 네덜란드 등 각국에서 온 사람들 앞에서 나는 할 말을 고르다 주저했고, 언어의 장벽은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실제로 넘어야 했던 것은 ‘언어의 산’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작은 턱’이었다. 그 턱을 넘자, 코리밀라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연대가 가능해지는 자리로 열렸다.
7월의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너무나 쾌적한 날씨 속, 조용하고 편안하고 광활한 풍경이 넓게 펼쳐진 북아일랜드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이들이 평화와 갈등, 분쟁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그 3박 4일간의 코리밀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두 시간이 있었다. 첫 번째로 인상 깊었던 것은 어떤 사람이 “How can I love Trump?”라고 질문했었을 때였다. 코리밀라 프로그램에서 첫 순서는 자신의 마음속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때 어떤 미국인이 이 질문을 던졌다. “How can I love Trump?”. 저 질문이 마치 “나는 어떻게 윤석열을 사랑할 수 있을까?”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그때 우리와 함께했던 미국인들 대부분이 트럼프를 싫어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때 함께 참여했던 한국인들도 윤석열을 싫어했다.
코리밀라의 풍경과 날씨는 정말 평화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로 평화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트럼프를 싫어하는 사람과 윤석열을 싫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둘을 잘 모르는 사람들만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최소한 나와 반대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싸울 일이 없었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내가 색안경 끼고 바라볼 일이 없었고, 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논쟁을 할 일이 없었다.
“How can I love Trump?”라는 이 질문이 내 마음속에서 맴돌았던 것은, 나와 반대되는 사람을 만나려고 준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었을 것이다. 그 질문을 한 사람은 정말로 트럼프를 사랑하려고 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적인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윤석열을 싫어하지만, 그저 민주주의에 근거한 이 나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 사람이 트럼프를 사랑하게 되진 못할지라도, 그 사람은 트럼프 지지자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나 또한 윤석열을 사랑하진 못하겠지만, 그 지지자들과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아갈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지지자들을 ‘머리가 이상한 사람’, ‘나쁜 사람’, ‘헛소리에 속은 사람’, ‘국가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내가 느꼈던 그 평화로움은 내가 싫어하는 것이 없었을 뿐인 평화로움이었다.
두 번째로 기억이 나는 것은, 논바이너리인 사람과 함께 한 잠깐의 추억이다. ‘논바이너리’는 자신은 어떤 성에도 속해있지 않다는 성소수자다. 그 사람에 대한 첫인상은 키가 크고, 다부지며, 턱수염과 콧수염을 잘 기르고 트윈테일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었다. 그래서 잘못 본 줄 알았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영어를 잘 못하기에 대화할 기회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저녁에 다 같이 모여서 춤을 출 때였다. 다 같이 춤을 추면서 노는 분위기가 벅차게 느껴졌고 자리를 피하려고 할 때 논바이너리 그 사람이 같이 춤추자고 했다. 단지 그 사람이 춤을 추자고 했기에, 그래서 춤을 추었다. 서로 손과 팔을 엉겨 잡고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었는데 그 사람도 나도, 힘이 좋아서 원심분리기 마냥 빙글빙글 돌았다. 음악이 멈추고 사람들도 환호하며 마무리할 때, 나는 그 사람에게 춤을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했다.
다음 날 저녁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이 나에게 천주교 신부였냐고 와서 물었다. 맞다고 하니 상당히 놀라워했다. 비록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였지만, 말과 표정에서부터 나오는 놀라움이 느껴졌다. 그 사람은 천주교 신부가 자신에게 춤을 가르쳐달라고 하고, 함께 춤을 추고, 춤을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했던 것이 상상하기 어려웠었던 것 같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내가 특별히 개방적이라든가 진보적이라든가 해서 그 사람과 춤을 췄던 것은 아니었다. 가톨릭은 분명 동성애를 반대하며, 나도 그 가르침을 분명히 따른다. 그렇게 놀라웠던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코리밀라에서 천주교 신부인 것을 드러내며 다녔다면 그 사람이 내게 와서 같이 춤을 추자고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이 적극적으로 내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내가 내밀기는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에게 충분히 불편한 존재라서 그렇다.
‘어떻게 트럼프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던 사람과 ‘논바이너리’인 그 사람은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14,27)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이 있어서 내가 코리밀라에서 경험했던 평화가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평화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누군가를 배제하는 편의적인 평화를 내게 주려고 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주시려는 것은 나와 반대되는 이들을 만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상상하는 평화로운 세상은 자신과 반대되는 혹은 적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세상일까? 누군가는 그런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할 것 같다. 반대하는 자들을 박멸시키는 것이 일종의 도덕이고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라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이미 평화롭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시려는 평화가 그런 평화라고 생각한다.
평화는 토이 스토리처럼 1시간 20분 만에 찾아오진 않을 것이다. 현실에선 우디와 버즈처럼 싸우는 시간이 그렇게 짧긴 힘들다. 그러니 우리가 우디와 버즈처럼 모두가 친구가 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갈등과 분쟁에 지치더라도 반대파의 소멸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일 게다. 편안한 평화는 타자를 지우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넘어야 하는 턱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함께 살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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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 소개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분단의 현장에 자리하고 있는 천주교의정부교구가 2015년 9월에 설립하였으며,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이웃 종교인들, 그리고 시민 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이 땅의 화해와 평화 정착 방안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북한의 식량난이 가장 극심했던 1996년 6월,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6대 종단 및 시민사회 인사들이 함께하는 국민운동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인도적 대북지원과 남북교류협력사업,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다양한 정책사업, 시민참여활동, 국제연대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