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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송년 특집1] 좌담회: 2018 남북관계 대전환과 인도지원∙민간교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12-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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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송년 특집1] 좌담회: 2018 남북관계 대전환과 인도지원민간교류

2018년 한 해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진전의 측면에서 ‘대전환’이라고 할 만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올 한 해를 정리하는 취지에서 한반도 문제 연구자와 민간단체 관계자가 참석한 좌담회를 개최했다. 좌담회 참석자들은 지난 1년 동안 있었던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 평양 선언, 남북 군사합의 등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평가했다. 좌담회는 지난 12월5일(수) 오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회의실에서 열렸다. 아래에 좌담회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좌담회: 2018 남북관계 대전환과 인도지원민간교류

일시: 2018년 12월5일(수) 10:00~12:00

장소: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회의실

사회: 손종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부국장

패널: 이정철 숭실대학교 교수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이주성 월드비전 팀장


사회: 좌담회를 시작하겠다. 시작은 조금 가볍게 지난 1년 동안 있었던 많은 일 중 의미 있었다고 생각하는 한 장면을 뽑고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

이정철: 이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내 대답은 항상 똑같다. 2017년 12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평창동계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와 인터뷰를 했다. 강릉으로 가는 고속열차 안이었다. 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미군사연습의 연기를 제안했다. 나는 이 장면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한다. 11월 29일 북에서 로켓을 발사한 이후 12월 21일 유엔 제재 결의안 통과가 거의 확정된 상태였다. 제재 결의안이 나오기 이틀 전에 문대통령이 공식적인 제안을 한 것이다. 그 시점을 놓쳤으면 아마 2018년 신년사에서 북이 그런 수준으로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문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일부에서는 한미동맹과 제재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12월20일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이 ‘동맹이 결정하면 할 수 있다’면서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후 이 제안을 공식적으로 수용했다. 이 장면들이 2018년을 만들었던 셈이다.

강영식: 지난 6~7년 평양에 가지 못하다가 최근 2개월간 세 차례 평양을 방문하게 됐다. 북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문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5월1일 경기장에서 한 연설을 꼽아야 할 것 같다. 만나는 북쪽 사람들 다 그렇게 이야기하더라. 짧고 간결하지만 문대통령의 연설이 자기 마음을 움직였다고. 특히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 (중략)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 그 울림이 굉장히 감동적으로 북쪽 사람들에게 다가간 것 같다. 경기장에 모인 15만 평양 시민에 대한 연설이 아니라 2천만 북녘 동포에 대한 연설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주성: 저는 지난 5월 있었던 두 번째 정상회담을 꼽고 싶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정상회담은 여러 정치적 일정에 따라 예측 가능한 부분이 있었지만 두 번째는 정말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났다. 미국과 북의 외교전술이 서로 부닥치면서 판이 깨지려는 상황에서 남북의 두 정상이 만났다. 그 만남이 파국을 막았다. 그 만남 이후 이제는 무엇인가 판이 깨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기대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이러한 만남은 이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김성경: 마지막에 발언을 하면 이런 경우가 많다. 제가 생각했던 중요한 장면들이 이미 다 나왔다(웃음). 그래도 조금 더 말씀을 드리면, 저도 5.1 경기장에서의 문대통령 연설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북 체제의 특성상 집단 체조를 하는 공간 자체가 자신의 카리스마적 권력을 뿜어내는 굉장히 상징적인 곳인데, 그 상징적인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누구에게 내어줬다는 자체가 엄청난 의미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 매우 중요했고 그때 화면에 잡히는 김위원장의 표정 자체가 굉장히 미묘했던 것으로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상황을 보는 평양의 젊은 사람들 모습을 보며 북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요동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회: 네, 말씀 고맙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그럼 2018년 한 해를 전반적으로 평가해 보자.

김성경: 현 정부의 분명한 입장은 남북관계를 통해 비핵화를 견인하겠다는 것이다. 운전자든 뭐든 함께 만나 남북간 논의를 진전시키면서 북미간의 협상도 원활하게 진척시키겠다는, 미국에게도 비핵화의 이야기를 더 하도록 하자는 게 전반적인 기조다. 올 들어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도 했고, 그 중에 한 번은 이주성 팀장의 언급처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남북이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주변 이해관계국들에게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남북관계의 상징적 측면의 진전도 이뤄냈다. 그리고 군사 합의 부분은 실제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정도의 엄청난 합의를 이뤄낸 것이어서 충분히 평가할 만한 부분이 있다. 올 한 해를 돌이켜 보면 비핵화는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굴곡을 거치고 지지부진한 면도 있지만, 남북관계만큼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안 좋았던 상황을 돌파하고 뚫어나갔다는 점에서 큰 진전을 만들어 냈다.

강영식: 최근 남북이 서로 가지는 화두는 평화와 번영이다. 실질적인 평화를 담보하는 체제가 되었느냐는 차치하더라도, 남북이 새로운 평화 공존의 시대에 들어왔다는 점에서 올 한 해는 대전환의 시기였다. 이 지점에서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최근의 대전환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가 보지도 못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평화의 시대에 어떻게 창조적으로 평화 체제를 정착시킬 것이냐 라는 점이다. 문제는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변하고 있는가라는 성찰이다. 그리고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평화와 공존, 번영이라는 화두를 두고, 이를 되돌릴 수 없게 만들고 미래로 전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나도 그렇지만 예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와 이를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상상, 젊음을 바탕으로 한 담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인데, 이런 것이 아직 부족하다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민사회가 평화의 시대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분석만 하고 있다. 북은 지난 1년간 엄청난 발상의 전환을 하면서 지금의 문제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어쩌면 이 점에서 뒤처져 있다. 앞으로 우리 한국 사회가 담대한 발상의 전환을 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려는 우리 시민사회의 과제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주성: 우리를 만나는 북쪽 담당자들은 최근 인민들의 관점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과거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최근엔 ‘우리 인민들이 보기에는’라는 토를 달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인민 중심적인 사고방식, 우리식으로는 여론일 텐데, 그걸 전하면서 ‘우리 주변에서는 원상태로 복귀될 것이다, 안된다’라는 생각들이 팽배하다는 분위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여전한 가운데 ‘제재 때문에 안된다면 우리끼리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북도 위에서는 변하는 것 같은데, 실제 밑에서는 과거의 관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갔다가 잘못되면 자신들이 더 다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고 최근의 협상 진전 정도가 더딜 경우 이를 안정적으로 가져가기에 북도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많은 것 같다.

이정철: 올해를 솔직히 보면 대통령이 힘들게 이끌어온 측면이 크다. 우리도 별로 준비가 안되어 있었고. 사실 남북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우리도 ‘저게 될까?’라는 의심을 하면서 구경꾼으로 방관해 온 측면이 크다. 그래서 저도 요즘 최근의 상황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한국 정부가 생각보다는 자율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 시기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면 대통령이 설득을 하고 있다. 일본의 아베 정부와는 여전히 마찰을 빚는 부분이 있지만 그동안 우리 정부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아서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안될 것이라는, 소극적인 생각만 해 왔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최근 10월~11월에 특히 많이 했다. 하여튼 지금은 대통령이 강한 의지로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입에서 1~2월 북미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는 말을 이끌어 냈고. 그래서 올해를 아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그동안 우리가 보였던 방관자적인 태도, 소극적이고 냉소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대통령 혼자 지금의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소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한다. 내년에는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어야만 협상 동력을 계속 살려나가고 그것이 선순환이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성경: 이교수님 말씀하신 맥락이 사실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전문가 집단인 것 같다. 기존의 관성에 젖은 사고방식이 우리를 규율하고 있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너무 앞서 나가서 오히려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촛불의 힘이 문재인 정부의 동력이 되고 대통령은 그걸 바탕으로 남북관계에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을 고무줄 당기기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이 고무줄을 당겨 쫙 끌고 나가면, 몇 달 안에 다시 되돌아온다. 그런데 제 자리로 돌아온 건 아니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 부분도 있다. 그런데 비핵화도 그렇고 여러 가지들이 일순간에 바뀌진 않을 거다.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지루한 싸움이 있을 테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사고가 변하지 않으면 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내년이 참 가슴 아플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동력이 떨어지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해 내면 여론으로 만들어 내는 데도 한계가 많다.

이정철: 군사합의서를 예로 들어보자. 이건 거의 사변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하지 않는다. 군사합의서는 9.19 평양선언의 부속물이 아니다. 이는 사실 비무장지대 내의 70년 된 군사시설을 해체한 것이다. 그 길로 귀순병이 걸어오기도 했다. 보수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박수 칠 일인데, 여전히 정략적인 평가만 하고 있다. 평화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분단사에서 정말 획기적인 사변이다. 군사연습도 중단 혹은 연기를 하면서 우리는 지금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있어본 적 없는 군비통제 체제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군비통제 체제에 들어가야만 비핵화가 되는데, 그동안 비핵화만 이야기했던 측면이 있다. 군비통제 없이 비핵화만 이야기하고 이를 북에 요구하는 건 모순이다. 이러다가 비핵화가 정체되면 다 도루묵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군사합의서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거다.

문재인 정부의 대미 외교와 관련해서도, 우리 대통령이 직접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을 짓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중약국 외교에 사실 그런 측면이 있다. 상대국의 관료, 프로세스를 거쳐서 가는 게 아니라 정상 대 정상으로 할 수 있는 것, 그런 자리에서 풀어내는 게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이 우리의 외교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반론으로 정립해 줘야 한다. ‘미국 국무부를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은 잘못됐다.

 

사회: 중약국 외교의 모습은 중요한 지적인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이든 탑다운 방식은 그 자체로 약점이 있다. 탑에서의 합의가 밑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실행이나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김성경: 이런 지적이 계속 나오는 건 큰 논의가 일상 수준의 구체화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가령 평화를 예를 들어봐도 우리 국민들은 평화에 대해 먼 이야기로 인식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평화에 대해 ‘힙’하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모여 ‘평화가 오면 일상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라는 논의를 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도 기껏 ‘군대를 안 갈 수 있어요’라는 정도에 그친다. 진짜 자신의 삶과 연결되는 변화를 담아낸 논의가 많지 않은 것이다.

이정철: 2030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평화에 대한 인식은 실제 위기 상황이나 전쟁 상황에 가야 체감하는 게 있다. 체감이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고 언론의 문제도 있고 복합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그 해결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이를 가지고 젊은이들이 통일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라고 하는 것은 과잉 해석이다. 오히려 평화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역시 남북의 만남이다. 그 점에서 보면 금강산 관광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6년 내가 학교에서 금강산에 데리고 갔던 학생이 10명 있었는데, 그 중 6명이 지금도 북쪽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그 당시 북에 가서 느꼈던 것들이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이주성: 두 분 말씀에서 공감되는 부분으로, 남북관계나 평화를 이야기하면 그게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이벤트로만 비치는 게 많다. 과거에 회귀했던 경험도 있으니 냉소적인 생각이 앞설 때도 있다. 우리 자신, 남쪽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통일교육에 대해서도 우리의 깊은 고민이 없는 것 같다. 팩트에 근거한 메시지를 담으려 노력해야 하고 민간단체들의 현장 방문에도 이러한 고민이 담겨야 한다.

김성경: 요즘 이런 생각도 한다. 한국이라는 사회가 아주 다양해졌는데 북한, 남북관계, 통일, 평화 고민하시는 분들은 희망적 사고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뭐든 ‘열심히 하면 될 거야’라는 생각에서 통일교육, 평화교육 강화하면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북에 가서 북쪽 사람 만나면 큰 울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어쩌면 공정과 정의 시대에 들어서 있다. 다만 이 공정과 정의에 대한 많은 논의가 기계적인 공정과 정의에 머물러 있다. 북한과 관계를 맺어 나가는 과정에서 공정과 정의가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전문가들도 그것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공정과 정의가 좋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회가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래서 그 부작용으로 등장하는 게 혐오이다. 우리에게 평화가 무척 중요하지만 젠더 측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젠더 전쟁이 평화의 논의에 들어와 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이 부분을 놓치면 우리는 여전히 겉도는 방식의 평화 논의에 머무를 것이다.

이정철: 젠더 문제와 관련, 후쿠야마가 정체성의 정치 시대라는 말을 했다. 큰 담론이 사라지고 여러 정체성(identity)들이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후쿠야마는 큰 담론을 던지라는 제안을 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사실 장점이 있는 것이다. 통일이나 평화는 한국의 여러 정체성을 넘어설 수 있는 큰 담론이다. 물론 아직은 각각의 정체성에 작동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이나 리더가 좀 더 적극적으로 평화나 통일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 그게 오히려 우리 사회에 부각되는 젠더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김성경: 그런데 지금의 정체성 전쟁은 큰 담론이 작동하지 않으니 만들어진 측면도 있다. 문대통령의 5.1 경기장 연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태면 그 내용이 민족을 강조한 것과 국가 주도의 지점이 있다는 거다. 국가 주도, 그 중에서도 탑이 주도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일상의 문제들을 담아내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정철: 우리 입장에서 보면 타당한 지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연설의 청중이 누구냐? 북쪽 주민이다. 북쪽 주민들에게 ‘남쪽은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우리를 믿으세요’라는 말을 한 것이다. 전쟁 이후 빈터에서 시작한 북한 주민이 갖고 있을 트라우마를 일정 정도 깨 준 것이다.

강영식: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평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꿈이다. 그게 안되어도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사실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는 북쪽 사람들에게 있다.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경제발전을 해야 한다는 강력한 동력이 있다.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같은 민간단체 입장에서는 다방면의 교류협력 등을 이야기하지만 북쪽에게 교류협력이나 평화는 둘째 문제일 수 있다. 그들은 지금 경제발전에 올인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민족 공동의 번영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평화의 일상을 느낄 수 있는 다방면에 걸친 교류협력의 틀을 생각하고 그것의 실질적인 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민간교류에 대한 내용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남북관계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민간교류는 아직 제 궤도에 올랐다고 하기 어렵다. 상반기에는 민간 패싱이라는 지적도 많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린다.

강영식: 여전히 액세서리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과거 남북 당국간의 관계가 나쁘면 민간 교류도 어려웠고 당국 관계가 좋으면 민간 교류도 원활했다. 하지만 당국간의 관계가 나쁠 때 민간교류가 활성화되어야 남북관계도 지속 가능하다. 게다가 남북관계는 기본적으로 정치군사적인 측면이 있어서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당국간의 관계가 항상 좋게만 이어질 수 없다. 민간의 교류협력이 당국관계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간의 독자성에 대한 인식은 확대되어야 한다.

이주성: 우리 정부 입장에서 남북 정상간에 합의한 내용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긴 하지만, 그러한 내용의 실현은 관에 더해 민간이 해야 하는 역할이다. 국제 사회의 제재로 정부가 움직이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분명히 있는데, 민간은 유연하게 사업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역량이 있다. 민간단체에는 또 많은 전문가들도 함께 하고 있고 과거의 경험도 갖고 있다. 남북관계가 완전히 새롭게 시작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과거의 흐름에 연결되는 측면이 있을 때 신뢰가 더 두터워질 수 있다.

강영식: 인도지원과 관련해서도, 예전처럼 순수한 인도지원, 동포애 등의 프레임이 달라져야 한다. 개발협력과 남북 공동 번영 등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에 걸맞은 새로운 캠페인이 필요하다.

사회: 이교수님은 일찍부터 남북관계 혹은 대북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강조해 주셨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드린다.

이정철: 최근 한 선배가 ‘국민협약도 중요한 데 민족협약도 해야 한다’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게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합의의 두 축인 것 같다. 원래 인도주의나 대북지원에 대한 사회적 협약은 민족협약 성격을 가진다. 남북이 직접 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남쪽에서 진행되는 통일국민협약은 일종의 공론화 작업으로 남남갈등 해소에 초점이 잡혀 있다. 공론화 작업은 이미 제기가 되었으니 어떻게든 진행될 테고, 민족협약의 측면에서 이에 대한 고민이 더 진척될 필요가 있다.

사회: 김교수님에게는 접촉지대 등 미시적인 측면의 연구를 많이 하셨는데, 이에 대한 마무리 말씀을 부탁드린다. 2018년 올해 큰 틀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실제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김성경: 올해 어떻게든 대전환이 이뤄진 것은 맞다. 앞으로 많은 가능성이 있다. 민간교류가 활성화된다면 사람이 만나는 일도 급속히 증가할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주 많은 문제들이 불거질 수 있다. 여러 곳에서 서로 다른 의견들이 봇물 터지듯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도 발생할 텐데, 그들이 그룹을 만들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확률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만날 때 다양한 논의, 상상력이 포용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 민족 등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개념에 더해 공동체성, 관계성, 호혜성을 바탕으로 한 또다른 방식의 민족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북에 대해 우리가 도와주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는데 함께 하는 협력자로서 정중히 대우를 하고 그만큼 관계를 맺어나가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우리 시민사회가 나서서 이에 대한 논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