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20주년 특집] 사진으로 전하는 우리민족 4
당곡리 협동농장의 탄성
“와!!!”
“이~~야!!!”
북 특유의 억양과 함께 가슴 깊은 곳에서
함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사진 뒷 편에 보이는 기계는 도정기입니다. 도정기는 벼를 찧는 기계로 우리가 먹는 쌀은 이런 도정 과정을 거칩니다. 도정기 앞에 북한 주민 2명이 서 있습니다. 방금 도정되어 우윳빛이 감도는 뽀얀 쌀을 들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이들의 웃음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사진이 찍한 현장은 평양시 강남군 당곡리 협동농장입니다. 이곳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경기도와 함께 농업협력 및 농촌현대화 사업을 했던 곳입니다.
사진 속 협동농장원의 환한 웃음 뒤에는 2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첫 번째는 도정되어 나온 하얀 쌀을 만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대북지원 사업이 그렇지만, 당곡리 협동농장에 도정공장을 신축하는 것도 예상치 못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현지의 열악한 전기 사정이 가장 큰 난제였습니다. 부족한 전기도 문제였지만 일정하지 못한 전압과 주파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북쪽의 전기 표준 주파수는 우리와 같은 60hz이지만, 현장에서는 40hz까지 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이로 인해 도정기가 정상 작동하지 않거나 심한 경우에는 모터가 파손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승압기 등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생산된 전자식 장치들은 현지에서 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수소문을 거듭한 끝에 국내에서 80년대 사용하던 완전 기계식 수동 승압장비를 주문 제작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정공장의 시험가동에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열악한 전기 사정이 또 문제가 되었습니다. 수시로 정전되는 상황에서 전기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은 낮 시간을 피해 결국 밤 시간동안 가동하는 것으로 해법을 찾기도 했습니다. 사진 속의 하얀 쌀은 수많은 밤샘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두 번째는 이 도정공장으로 자신들의 일상이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곡리 협동농장에 도정시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시설은 과거 우리가 사용하던 방앗간 수준의 설비에다가 지붕의 절반 정도는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당곡리 협동농장에서는 가을이면 인근 농장의 도정시설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도정공장 신축으로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웃 협동농장들에서 거꾸로 당곡리 협동농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웃 농장에 주던 도정 비용도 아낄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용료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도정기가 정상 작동해 하얀 쌀이 쏟아져 나올 때, 벌써 9년 전 일이지만 그때의 상황과 감동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와!!!”
“이~~야!!!”
북쪽 사람 특유의 억양과 함께 가슴 깊은 곳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함성은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현장에 있던 북과 남의 ‘사람’들은 모두가 그저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1년간 당곡리 협동농장 곳곳을 누비며 미운정과 고운정이 함께 들었던 북쪽의 사업 담당자는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수고했어! 수고했어!“라는 말을 연발하면서 옆에 서 있던 나를 부둥켜안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북쪽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 남과 북이 만난 당곡리 협동농장에서는 수시로 벌어지던 일이었습니다.
--황재성 영국 서섹스대학교 석사과정
(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부장)
[편집자 註]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창립 20주년을 맞아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2016년 한 해 동안 이어질 특집 ‘사진으로 전하는 우리민족’은 지난 20년 동안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다녀왔던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히 전하려 합니다. 남북이 처한 현실의 벽을 조금씩 조금씩 넘어왔던 이야기, 사람과 사람의 만남 이야기가 녹아있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