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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식량난과 우리정부의 대응

작성자/Author
관리자
작성일/Date
2017-03-2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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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식량난과 우리 정부의 대응

강영식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최근 북한의 언론매체 기사 중 이례적인 기사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북한의 식량문제에 대해서이다. 지난 5월 7일 조선중앙방송은 “최근 세계적으로 식량문제가 심각한 난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흰쌀과 밀, 강냉이 가격이 급속한 속도로 뛰어올라 커다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하며, “지금 37개 나라가 식량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급격히 악화되는 세계적인 식량사정은 모든 나라들이 자체의 힘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을 더욱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고 북한 특유의 ‘자력갱생’을 강조하였다. 이어 8일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을 위한 북미간 협의가 "진지하게 잘 진행됐다"며 "미국 식량협상 대표단이 5일부터 8일까지 조선을 방문하였다. 방문기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사이에 인도주의적 식량제공 문제에 관한 협상이 있었다... 협상은 진지하게 잘 진행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17일 미국이 50만톤 식량지원을 공식발표한 직후, 12시간만에 북한은 “부족되는 식량 해결에 일정하게 도움”이 되고 “두 나라 사이의 이해와 신뢰 증진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사의표시와 함께 곧 식량이 도착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주민들에게 신속히 알렸다.

이러한 기사들이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현재 북한의 식량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가고 있고,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주민들의 동요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을 북한당국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조만간 미국의 대규모 식량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알리면서 주민들의 인내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

올해 북한의 식량사정을 90년대 중반수준과 같이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다음 세가지 근거를 들 수 있다. 우선은 작년에 발생한 대규모 수해 피해로 자체 식량 생산량이 10% 이상 감소하였다는 점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작년 한해 북한의 곡물생산량을 최저 300만톤으로 추정하고 있다. 작년 외부로부터 지원받은 곡물량을 70만톤 정도로 본다면 2007년 북한의 총 곡물공급량은 370만톤 수준에 불과하여 올해 식량부족량은 100만톤에서 150만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대규모 기근사태가 발생한 90년대 중반 북한의 곡물공급량이 400만톤 수준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10년만에 대규모 기근사태가 다시 닥치고 있다는 주장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물론 전적으로 중앙배급체계에 의존하던 당시와는 달리 시장의 발달과 북한 자체적인 곡물도입능력으로 당장은 90년대와 같은 비극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면 심각한 식량난이 초래될 것이라는 주장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하고 특히 주 식량수입국이었던 중국이 북한에 대해서도 수출관세와 쿼터제를 도입함으로서 외부로부터의 식량구입비용이 매우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이점은 또한 한국정부가 향후 대북 식량지원을 재개한다 하더라도 곡물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지원할 수 양이 대폭 축소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대북지원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북한의 식량위기를 초래하는 주요 요인은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중단되었거나 매우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대체적으로 북한은 하반기에 자체 생산한 물량으로 식량을 공급하고, 다음해 봄부터는 외부의 지원으로 식량을 충당하여왔다. 지난 8년 동안 남한과 국제사회가 매년 50만톤 이상의 식량을 지원해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외부지원의 불확실성은 배급 중단과 식량가격의 급상승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북한 시장(장마당)에서 쌀 1kg의 값은 2,200 북한원을 넘어서고 있다. 작년 이맘때 가격이 1,000원 내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장에 공급되는 식량의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급등세가 매우 가파름을 알 수있다.

사정은 이러한 데 남북관계는 꼬일대로 꼬여있다. 그리고 미국의 대규모 식량지원이 참으로 반가운 소식임에도 환영만 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고민이다. 미국의 전면적이고 신속한 식량지원 결정으로 꼬일대로 꼬인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는 명분과 기회를 동시에 놓치고 본격적인 대북정책을 추진도 하기 전에 너무 빨리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시험대에 올려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말이다.
일차적 요인은 북한 식량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인식과 대응이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한데 있다. 외교통상부가 국제기구를 통한 조건없는 지원방침을 내비치면서 미국의 식량지원을 환영하며 북한 식량난을 해소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했으나 다음날 통일부는 “긴급 지원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정부 판단이며 지원요청이 있어야 지원한다”는 기존 입장만을 재확인했다.

대북정책의 주무부처인 통일부의 이러한 상황인식이 무엇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이런 입장이 정부의 식량지원이 실기(失機)했기에 고육지책으로 택할 수 밖에 없는 ‘묘수’(妙手)라고 생각한다면, 정부가 내세우는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도 아닐뿐더러 남북관계를 더 꼬이게 만드는 또 하나의 자충수가 될 뿐이다.

정부는 ‘지원요청 없이는 먼저 인도적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발목만 묶는 원칙에서 벗어나 미국의 식량지원과 북미관계 개선을 남북관계 복원과 발전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러면 우선 북한 식량난의 실제를 인정하고 신속하게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 대규모 지원은 당국간 협의를 통해 진행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적어도 춘궁기를 버틸 수 있는 5만톤 정도의 식량은 조건없이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당국이 대화 테이블에 나설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현재 남쪽 당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유일한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지난 정권에서 이루어진 6.15공동선언과 10.4 정상회담 합의를 부정하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현 정부는 출범 후 공식적인 대화를 제의한 바가 없다. 북한이 대화를 거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짐작일 뿐이다. 문제는 현 정부가 6.15선언과 10.4합의사항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계속 유지하는 데 있다. 남북간 대화는 우리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한다. 우선은 2007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남북총리회담에서 합의한 2008년 상반기 제2차 총리회담 개최를 제의해야 하며, 이 자리에서 기존 남북간 합의사항에 대한 수정과 보완내용을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오는 6월 15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민간단체의 6,15공동선언 8주년 기념 공동행사를 정부가 지원하고 축하의 말 정도는 해줘야한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를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풀려고 하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북한당국도 남북관계의 복원과 발전에 책임있게 나서야 한다. 지원을 요청받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지원한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로서는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임을 이해해야 한다. 북한이 올해 공동신년사설에서 제시한 ‘앞으로 5년간 경제와 인민생활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겠다’는 대망론을 현실화하려면 앞으로 5년간 얼굴을 맞대야 할 남한당국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실익없는 명분으로 남북관계를 후퇴시켜서는 안되듯, 북한당국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기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미얀마를 강타한 싸이클론이나 중국 쓰촨성을 초토화시킨 지진보다 몇배 더 위험한 ‘대기근’의 태풍이 북녘땅에 몰아치지 않도록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대책을 강구해주기를 촉구하며 기대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