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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규 상임공동대표 - 단일국가 방식의 통일담론 극복해야 [등록일 : 20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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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Date
2017-03-2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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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
 

환각지 현상에서 벗어나


단일국가 방식의 통일담론 극복해야


최완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

(신한대학교 설립자 석좌교수)

1민족, 1국가의 터전이었던 한반도가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두 개의 국가로 분단된 지 69년이 되었다. 이 긴 세월동안 남북한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끊임없이 통일을 말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통일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그동안의 비현실적인 통일론의 전개과정과 통일 환경의 대내외적 조건으로 미루어 볼 때, 남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단일 국민국가 방식의 평화통일을 성취한다는 것은 마치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과 같다.

남북한은 분단이후 지금까지도 환각지(幻覺肢)현상의 틀 속에 갇힌 채 통일논의를 해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환각지 현상은 전쟁이나 사고로 인하여 다리나 팔을 절단한 사람이 한동안 자신의 잘린 다리와 팔이 여전히 그대로 붙어있는 듯한 느낌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메를로 퐁티(M. Merleau-Ponty)에 의하면 이것은 일종의 질병 부인(anosognpsie)현상이다. 때로 어떤 환자는 잘려나가고 없는 팔과 다리에서 가려움증이나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남북, 체제와 이념의 상용도

높여갈 수 있나

어찌 보면 남북한은 모두 허리부분이 잘려 이미 두 개의 서로 완전히 다른 몸통이 되어 버린 한반도가 여전히 하나의 몸통인 것처럼 착각해 왔다. 이러한 환각지 현상 때문에 남북한은 평화적인 방식으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 방식 또는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 방식의 한반도(평화)통일이 가능한 것처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통일논의의 현실이 말해 주고 있듯이 이러한 통일론은 실천이 어려운 정치적 수사의 반복일 뿐이다

분단 이후 남북관계는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같은 민족 간의 대결과 경쟁을 그 본질로 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북 쌍방 중 어느 일방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지지를 더 받는 정통성 있는 체제와 이념인가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인 것이다. 따라서 분단이나 통일 이후에도 남북한이 공유했거나 공유할 수 있는 상상의 정치공동체(imagined political community)가 있을 수 없다. 즉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정치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남북한이 아무리 비정치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 나가도 정치권력 차원에서는 공유할 수 있는 이익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적어도 남북한이 정치권력 수준에서 공동이익 영역을 마련하려면 남북한의 체제와 이념의 상용도(compatibility)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통일 이후의 정치공간에서 남북한의 핵심 정치세력들 간에 권력을 공유하면서 협치(power sharing)가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의 체제와 이념이 상극인 한, 각각의 통일정책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통일 이후의 정치 공간에서 상대방의 체제와 이념 및 정치세력을 배제시키는 흡수통일이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시대와 통일의 국내외적 환경 변화에 따른 수사적 차원의 진폭은 있어 왔지만 통일정책의 본질이 변화된 적은 없었다.

한반도 통일의 주요 대외 행위자인 미국과 중국도 어느 일방이 일방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일국가 방식의 한반도 통일을 허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기존의 적대와 경쟁의 관계를 넘어 새로운 대국관계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지 않는 한, 미국에도 좋고 중국에도 좋은 한반도 통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일국가 방식의

통일담론 극복을 위해

그렇다면 현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통일논의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우선 한반도의 통일을 남북한이 단일국가를 수립하는 것으로만 보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상대방을 타자화시키고 권력에서 배제하는 단일국가 방식의 평화적인 흡수 통일방안은 존재하기 어렵다. 북한에서 정권 붕괴가 아니라 국가 붕괴가 일어나고 북한 주민과 주변 강대국의 동의 내지 묵인을 전제로 할 때만 상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설사 일어난다고 해도 상황을 잘못 관리하면 내전 등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직면할 수도 있다. 혹자는 독일 통일 사례를 들어 독일 방식의 통일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독일은 분단 이전에 이미 강력한 근대성을 갖는 정치공동체를 공유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내전을 겪지 않았고 동독 또한 사회주의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발전도 성취하였다. 동독은 이러한 저력을 바탕으로 소련이 개입을 철회하자 자체의 정치적 역량으로 서독과의 통합을 추구할 수 있었다. 통일문제에 있어서 동서독과 남북한은 적절한 비교성이 없다.

역설일 수도 있지만 남북한은 서로 단일국가 방식의 통일을 주장하지 않거나 포기할 때 사실상의 통일은 시작될 수 있다. 바람직한 통일의 기본 방향은 남북한의 기존 국가체제와 이념 및 정부를 일거에 허무는 빠른 통일이 아니라 서로의 국가를 인정하고 장기간의 평화공존 체제를 제도화하면서 체제와 이념의 상용도를 높여가는 데 두어야 한다.

영국과 남북아일랜드의 다양한 정체세력들이 우여곡절 끝에 체결한 ‘성금요일 협정’(Good Friday Agreement; Belfast Agreement)은 남북한의 평화공존체제를 제도화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계시적 모델(heuristic model)이 될 수 있다. 남아일랜드, 북아일랜드의 다양한 정치세력, 아일랜드공화국과 영국 간에 체결된 성금요일 평화협정의 핵심은 그동안 대결과 갈등을 해왔던 여러 세력들 간의 권력 공유, 즉 협치(협의주의)의 원칙에 있다.

이 협정은 체결 즉시 남북아일랜드의 국민투표에 부쳐 승인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아일랜드공화국의 국민투표에서는 아일랜드공화국의 헌법에 규정된 영토 및 통일조항을 수정했다는 사실이다. 아일랜드공화국 기존 헌법 2조에서는 아일랜드공화국의 영토를 아일랜드섬 전체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아일랜드섬에서 태어난 개인은 ‘아일랜드 민족(Irish nation)’의 구성원이라고 개정함으로써 북아일랜드에 대한 배타적 영토성을 주장해 왔던 기존의 입장을 포기했다. 또한 3조에서 아일랜드섬의 통일은 평화적 방식으로만 이루어져야 하고 통일은 남북아일랜드주민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전제조건을 명시했다. 이 두 헌법 조항의 수정으로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되고 성금요일평화협정은 비교적 순항하고 있다.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추진해야

많은 사람들이 남북한이 서로 불신과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평화가 제도화되지 않는 주요인으로 북한의 도발적 언사와 행태, 개혁·개방의 외면, 제재와 봉쇄를 자초하는 핵과 미시일개발의 강화 등을 들고 있다. 북한이 이러한 비타협적인 완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이면에는 남한이라는 대안 국가에 의해 자신들이 흡수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사실 북한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토완정론(한 국가의 영토를 단일한 주권하에 두는 완전한 통일)이 말해 주듯 북한의 주권이 전 한반도에 관통하는 북한 주도의 흡수통일을 상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표면적으로는 통일을 민족 최대의 과업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남한과 동등한 입장에서 최소한의 통일 명분을 확보하면서 현상을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선회하는 조짐을 보여 왔다 북한의 대표적인 통일방안인 연방제안도 패권 내지 혁명전략에서 점차 현상 유지 전략으로 변모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제부터라도 경제력과 사회 역량, 국제환경 등 모든 면에서 북한을 압도하고 있는 남한이 선제적으로 경제협력과 신뢰구축 조치를 시행하면서 강대국들과 적극적으로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면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선제조치의 일환으로 우선 고려해 보아야 할 사안은 헌법의 영토조항(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과 4조의 통일조항(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을 시대 상황에 맞게 개정을 검토하는 것이다.

사실 영토조항과 통일조항은 상호 모순적 측면이 있다. 영토 조항에서는 북한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통일조항에서는 사실상 북한을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주권 국가로서 유엔에 정식 가입함으로써 국제적으로도 두 국가적 실체가 공인되었다.

특히 통일조항은 자유민주적 질서에 의한 통일을 규정함으로써 흡수통일을 상정하고 있다. 남아일랜드는 영토조항과 통일조항을 전향적으로 개정함으로써 북아일랜드의 흡수 통일 의구심을 해소했다. 그 결과 남북 아일랜드의 평화를 제도화할 수 있는 성금요일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던 사실을 우리는 되새겨 보아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남북한 모두 단일국가 방식의 통일을 강조하면 할수록 쌍방 간의 불신과 갈등은 심화되고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통일의 가능성도 그만큼 멀어진다. 이제야 말로 통일이 반드시 단일국가체제를 수립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환각지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때 실질적인 통일이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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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발행하는 격월간 「민족화해」誌 2017 1/2, 통권 84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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