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유코리아뉴스] 강영식 우리민족 사무총장이 말하는 남북관계 개선의 해법

작성자/Author
관리자
작성일/Date
2017-08-01 17:31
조회/Views
946
“강영식 우리민족 사무총장이 말하는 남북관계 개선의 해법”

인터뷰 <릴레이 통일코리아> 두 번째 -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비영리단체 사무실이나 실무자를 대할 때 갖게 되는 소회는 환경의 열악함이다. 또 그 환경과는 상반되는 열정이다. 서울 마포동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간판, 사무실은 유독 낡아 보인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대북 지원의 상징적인 단체인데 지난 9년 가까이 남북 관계가 전면 중단되다시피 하면서 대북 지원도 전면 중단되고 말았다. 대북지원 비영리단체엔 어울리지 않게 ‘개점 휴업’, ‘폐업’ 등의 말들이 나온 지도 벌써 수년 전이다. 말하지 않아도 어떤 ‘고난의 행군’ 시기를 보냈을지는 눈에 훤하다. 지난 26일 오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실에서 강영식 사무총장(55)을 만났다. 열정 넘치는 그 모습 그대로다.

지난달 29일 숙환으로 소천한 CCC 젖염소보내기운동 책임자인 고 이관우 목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어느덧 대북 지원의 현황과 과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향후 남북관계 등 묵직한 주제들로 이야기가 옮아갔다. 중간중간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호탕한 웃음을 보이면서 그는 대북 민간단체의 활동,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접근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아끼지 않았다’는 말은 그만큼 기대를 갖고 있다는 의미다. 또 그만큼 지금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회복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강영식 사무총장은 경실련 활동을 거쳐 19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창립 과정부터 실무자로 참여했다. 초대 이용선 사무총장을 이어 2008년 3월부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을 맡아오고 있다. 그 와중에 비상근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운영위원장을 거쳐 지금은 정책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1998년 시작된 방북이 2012년 9월 마지막이 될 때까지 100회를 넘겼다. 방북 횟수로만 보면 현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맞먹는다. 그것도 평양을 비롯해 대북지원 물품이 가는 농촌 구석구석을 다닌 터라 누구보다 북한 밑바닥 정서를 잘 알고 있다고 보면 맞을 것 같다. 그로부터 문재인 정부를 비롯한 남한의 대북 움직임을 평가하고 올바른 방향을 짚어봤다. 다음은 강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

-북한을 그렇게 많이 다녀왔다는 총장님조차도 북한의 실상을 알기가 그렇게 어려운 건가?(CCC 젖염소보내기운동을 비롯해 대북지원이 중단된 몇 년간 남한에서 보냈거나 설립한 물자와 목장 등의 상황에 대한 최근 소식을 못들어봤다는 언급에 대한 질문이다)

4년 넘게 못 가봤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한번도 못갔다.

-그럼 이명박 정부 때가 마지막 방북이었나?

남북 교류를 중단하겠다는 이명박 정부 때도 다 갔다왔다. 최소한의 물자지원을 유지하면서 방북을 했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는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을 허용하겠다고 했는데도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지금까지 못 갔다. 그건 모든 대북지원 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다. 현장을 못가다 보니까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그렇게 방치하다 보니까 현지 주민들과의 신뢰가 바닥이 되어 있는 거다. 차라리 (대북지원을) 안하니만 못한 게 되어 버렸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쪽의 지원으로 일정 정도 사업을 시작했다가 남쪽의 지원이 끊기면서 수습이 안되는 상황이 많이 있지 않았겠나. 그렇다면 앞으로 남북관계가 재개돼도 누가 남쪽 단체들과 협력하려고 하겠나. 아마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열려서 민간교류가 재개돼도 ‘이게 과연 제대로 될까?’ 하는 궁금증이 있다. 여하튼 몇 년 동안 어려가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중요한 건 몇 년간 쌓아왔던 북한과의 신뢰, 우리 나름의 네트워크 이런 것들이 다 무너진 거다. 남북간에 신뢰 관계를 쌓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반면 그 신뢰 관계를 무너뜨리는 건 하루아침 아닌가. 과연 이관우 목사님이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또 CCC가 제2, 제3의 젖염소보내기운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제대로 재개될 수 있겠나. 이게 바로 모든 대북지원 단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다.

-마지막 방북이 언제였나?

2012년 9월이 마지막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들어서고 난 뒤인데?

그렇다.

-이번에도 방북할 줄 알고 준비를 하신 것 같은데, 이렇게 갑자기 막히게 될 줄은 예상하셨나?

방북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게 남북 민간 관계가 정상이 되어야 한다. 정상이라는 것은, 최소한 북한을 가고 물자를 보내기 이전에 적어도 서로 어떤 원칙과 입장을 가지고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접촉들이 이뤄져야 한다는 거다. 만남과 접촉의 방법은 제3국에서 이뤄질 수도 있고 팩스나 이메일을 통해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그것도 부당하게 거부가 됐다. 지금 상황에서 일단 이러한 정상 관계만 이뤄져도 좋겠다. 저희가 5월 2일에 북한 주민 접촉 신청을 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서 5월 26일 (접촉 신청이) 수리가 됐다.

-북한주민 접촉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인가?

신고제다. 허가제 아니다. 과거에 그걸 1년, 2년, 3년 단위로 해줬다. MB 정부 때도 해줬다. 천안함(사건)이 있었음에도 해줬다. 그건 법에 보장된 거기 때문이다.

-1년, 2년, 3년간 북한 주민 접촉을 보장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팩스가 오고가고 하는 거다. 그 기간이 최소 3년이라는 거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3년 짜리를 내줬다. 중간중간 보고하고 접촉하고 하는 거다. 그건 민간단체의 최소한의 권리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처럼 하는 거다.

-(북한 주민)접촉할 때마다 신고하는 게 아니고?

그렇다. 그리고나서 (북한 주민과의) 협의 결과 물자를 보낸다. 그리고 방북을 하려고 할 때는 건건별 승인 신청을 낸다. 그러니까 대북지원을 위해서 방북을 할 때는 3단계를 거쳐야 한다. 북한주민 접촉 신청, 그 다음 물자반출 승인 신청, 그 다음 북한방문 승인 신청이다. 물자지원이나 북한방문은 지금 굉장히 왜곡됐기 때문에 쉽게 풀릴 거라고 보지 않는다. 적어도 민간단체 활동의 가장 기본요소인 북한주민 접촉신청은 이제 제대로 법률대로 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뜻에서 5월 2일 접촉 신청을 했고 24일 만에 수리가 된 것이다. 새 정부 들어선 뒤 16일 만에 수리된 것이다. 놀랐다. 그것이 대단한 뉴스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게 뉴스거리는 아니지 않나. 평양에 가는 것도 아니고.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미리 대북 접촉신청을 낸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빨리 신청했던 거는 제대로 정상화시켜야 된다는 측면도 있었고, 새로운 대북지원 사업을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해야 되지 않겠나 했던 게 바로 우리가 매년 해왔던 말라리아 방역사업이다. 말라리아 방역은 남북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거다. 모기한테는 휴전선이 없지 않나. 말라리아 방역은 인천시나 경기도 등 지자체가 참여하는 거니까 국민적 공감대를 넓힐 수 있다. 그래서 5월 말이나 6월 정도에 물자가 지원되면 효율적일 거라고 판단해서 서두른 측면도 있었다. 새 정부가 ‘민간교류는 원칙적으로 전면 지지한다’는 방침이 있었으니까 저는 빨리 될 줄 알았는데, 26일에야 수리가 된 것이다. 물론 그때만 해도 통일부의 새 장관, 차관도 없었을 때니까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사실 그것은(북한주민 접촉 신청 수리는) 통일부 과장의 권리다. 과장의 전결사항이다. 놀란 건 통일부가 북한주민 접촉 신청을 수리하면서 그걸 발표했다. 그런데 발표 내용에 전제가 붙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를 신중하게, 유연하게 하겠다.’ 난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박근혜 정부 때 나온 얘기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얘기하는 ‘대북지원의 틀’이라는 것은 유엔제재의 틀이라는 거다. 그런데 유엔이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는 인도적 지원을 중단하거나 그 제재 때문에 인도적 지원을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되어 있다. 가장 앞장서서 대북제재를 하고 있는 미국이나 EU조차도 인도적 지원은 막지 않는다. 그런데 새 정부가 그것도 제3국 접촉이라고 하는 간접 접촉조차도 대북제재의 틀 안에서 하겠다는 얘길 듣고 저는 깜짝 놀랐다. 물론 국제적인 제재 분위기 속에서 우리 정부만 북한과 대화하는 게 어렵다는 정치적·국제적 입장은 알겠는데 인도적 지원을 거기에 거는 건 아니다. 적어도 대북제재와 관계없이 정부는 민간단체와 대북지원단체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존중해줘야 한다. 그동안 부당하게 침해당해왔던 권리를 조건없이 복원해줘야 한다. 그리고 계속 북한주민 접촉 신청을 수리해줘야 한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북한주민 접촉신고가 50여 개가 갔는데 수리할 때마다 건건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틀 속에서’란 말을 되뇌이고 있다. 발전이 없다. 그걸 듣는 순간 ‘북이 또 이걸 걸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 정부, 그 전 이명박 정부 때 남쪽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을 승인하고 불허하고 하면서 정부 일방이 독점적으로 그걸 규제했지 않나. 그러니 북이 반발하고, 또 민간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 측면도 있고, 이런 것들을 우리가 종합적으로 반성도 해보는데, 저는 이게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9년간 막혀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당국간 회담이 가능하겠나. 그렇다면 어쨌든 문재인 정부가 민간 차원, 종교인 차원의 대북 교류를 통해서 나름대로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터보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적어도 민간단체의 자율성은 존중해줘야 한다. 이게 민간교류이고 민간협력인데 여전히 가장 기본적인 민간교류의 대북활동조차도 대북제재의 틀 속에서 한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놀랐던 것이다. 지금도 (새 정부의 입장은) 그러하다. 그러니까 아니나 다를까, 북과 예전부터 협의해왔던 말라리아 방역이라든가 민간단체 방북을 똑같이 북에서 걸고 들어오는 거다. ‘남쪽 정부가 대북 민간단체 교류를 대북제재 틀 속에서 한다는 게 무슨 의미냐’며 반발하고 있는 거다. 물론 저는 북의 태도도 잘못됐다고 본다. 근본적인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민간단체의 교류협력은 조건없이 재개시켜 주는 것이 당국간 관계 개선의 중요한 마중물인데 북이 지금 저렇게 나오는 건 온당치 않은 것이다.-첫걸음이란 뜻은?

-한마디로 새 정부가 들어서서도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이나 교류는 딜레마 상태라는 건데?

농담 같은 비유를 들자면 이런 거다. 북한은 남쪽의 민간단체를 인질로 삼고 우리 정부는 민간단체를 총알받이로 삼고 있는 셈이다. 북은 민간교류를 풀려면 한국 정부가 근본적으로 6·15, 10·4선언을 이행하고 군사적 긴장을 없애라고 한다. 그러면 민간교류를 풀겠다는 것인데 이게 바로 인질 아닌가. 한국 정부는 아직은 제재 국면이고 북핵 문제 해결할 때까지는 어렵다고 하면서 (북에게) 민간의 대북교류는 적어도 먼저 받으라고 한다. 이건 총알받이 아닌가. 지금 그런 상황이다. 참 어렵구나 하는 걸 느낀다. 새 정부가 들어서서 어쨌건 ‘운전석’이란 말이 의미하듯이 한반도 문제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남과 북이 주도권을 갖고 풀어보자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난 정부와 달리 많이 풀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저절로 풀어지는 게 아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할 일이 있고 민간은 민간대로 할 일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민관분리이고 적어도 민간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민간이 자기 통제하에서 일하도록 해줘야 한다. 대북지원단체가 사업을 해나갈 때 회원들의 입장을 안 살피겠나.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가 (회원들의 입장과) 전혀 다른 일을 하겠나. 민간 자율의 틀 속에서 후원자, 회원들의 입장을 가지고 해나갈 수밖에 없다. 민간단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한 알파부터 오메가까지의 책임은 다 각 민간단체가 지는 거다. 그걸 왜 정부가 나서냐는 거다. 민관분리가 되어야 민관협력이 잘 되는데 아직은 민관분리가 필요한 때다.

-지금 말씀하신 내용을 새 정부에 전달하신 적은 없나?

북민협 정책건의서 등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많이 전달한다.

-그런데도 새 정부는 ‘대북제재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입장인가?

문재인 대통령께서 7월 6일 ‘신 베를린 선언’을 하셨는데, 중요한 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겠다고 했는데 그 이후의 여정을 보면 과연 담대한가? 예전 정부보다 한 발 더 나아가긴 했지만 여전히 예전 관성대로 가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우리가 주도권을 가져야 하고, 우리 희망대로 북이 움직여야 하고, 민간도 그런 질서에 부합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 관심은 북한의 영유아’라고 하는데, 이것은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과 비교해보면 언어의 체계는 똑같다고 본다. 따라서 저는 (문 대통령의 신 베를린 선언이) 결코 담대한 선언이 아니었다고 본다. 담대한 선언의 핵심은 의지와 능력이고, 의지는 지난 관성에서 벗어나는 거다. 담대하겠다고 해서 대북제재 쪽으로 담대하게 하겠다는 이런 얘기는 아니지 않나. 문재인 정부가 국민적 지지를 받고서 시작했는데 남북관계나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운전대에 앉으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분명해야 하는데 결코 담대하지 않다. 이건 의지, 능력의 문제다. 요즘 문재인 정부나 청와대의 외교안보라인을 보면 과연 그런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걱정이 된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민간단체가 정신을 차려야 할 때라고 본다. 남북대화에 관심있는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남북대화가 결코 저절로 열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민간단체는 여전히 민간단체의 자율성을 가지고 민간단체 차원의 한반도 평화를 주장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평화운동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이 ‘영구적인 한반도 평화 정착’ ‘담대한 발걸음’ 이런 걸 얘기로는 했지만 실제로 행동은 담대하지 않다고 지적하셨는데 그게 대통령 스스로 그러는 거라고 보나, 아니면 미국의 압력에 의한 거라고 보나?

현재 (한반도) 상황이 어렵다. 17년 전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은 먹혔지 않나. 그때의 북과 지금의 북은 다르다. 그때의 국제정세와 지금의 국제정세는 다르다. 17년 동안 여러 가지가 달라진 것이다. 미국도 엄청 변했지 않나. 일본, 중국도 변하고, 우리도 변했지 않나. 북한은 더 많이 변했다. 지난 17년 동안 변화된 북한을 제대로 보는 것도 중요하다. 새 정부가 관성대로 움직인다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정부의 희망대로 북한이 움직여주길 바란다는 뜻이다. 지난번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발표한 것을 보면 한반도 평화체제 시작을 2020년으로 명시했다. 깜짝 놀랐다. 그건 우리의 희망일 뿐이다. (남북관계는) 아직 시작조차 안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올바른 조건’을 내세우는데, 북핵을 동결하면 입구에 들어선다는 것, 이게 정부가 말하는 ‘올바른 조건’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올바른 조건’이 없을까. 북한도 마찬가지다.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대화에 나서겠다는 거다. 그것이 북한의 ‘올바른 조건’이다. 이렇게 해서 무슨 대화가 되겠나. 북한에서 핵에 대한 모라토리엄(불능)을 선언하고 우리는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축소하는 것, 이것은 서로의 협상의 산물 아닌가. 대화를 통해서 서로 주고받고 해야 할 문제다. 그걸 통해 북한핵과 한미연합 군사훈련 문제가 입구로 들어간다는 거다. 우리 정부는 올바른 조건을 내세워 북핵을 동결하면 입구에 들어설 수 있다고 하는데 이건 입구를 막아놓은 거다. 북한도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해야 대화에 나서겠다고 하는데, 이것처럼 조건있는 대화가 어디에 있나. 서로가 서로의 입구를 봉쇄하고 있는 거다. 초기 기싸움일 수도 있는데 그러려면 근본적 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우리 정부는 대화에 나서고 있는데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고려해야 할 게 있다. 예전 베를린선언, 10·4선언이 먹혔던 것은 그 당시만 해도 북의 핵무기가 고도화되지 않을 때였고, 그럴 때 우리의 경제적 지원과 북의 안보가 교환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북의 핵무기는 돌이킬 수 없다. 북이 핵을 동결하거나 모라토리엄하거나 그 안보를 교환하려면 경제를 가지고는 안된다. 우리도 안보를 교환해야만 한다. 한미정상회담에서 그런 얘기를 한 것 같다. ‘북핵이나 북한 미사일은 불법이고 한미연합 군사훈련은 합법이기 때문에 불법과 합법을 바꿀 수 없다.’ 이게 외교부 당국자의 말이다. 그런 인식을 가지고 되겠나. 지금 불법, 합법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법을 따지자면 지금 법상으로 북은 불법정부인데 그러면 북과는 대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지 않나. 저는 이러한 지나온 관성에서 벗어나가는 게 담대한 여정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안보는 안보대로 교환하고 경제는 경제대로 교환하고 협력은 협력대로 교환해 나가는 거다. 그러면서 국제제재 분위기 속에서 우리 정부가 어려운 건 당연하기에 그런 사정을 얘기해 나가고, 남북 대화가 진전돼 나가다보면 그것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좀 세게 말하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과거 정부와 별 차이가 없다고 보는 건가?

지금 ‘대북제재의 틀 속에서 민간교류를 유연하게 검토해 나가겠다’고 하는 게 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조치의 1번 아닌가. 그게 뭐가 담대한가.(웃음) 솔직히 그렇다. 새 정부가 2개월 동안 하는 걸 보면 걱정이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문재인 정부가 북한 문제의 전문성이나 경험이 부족하다고 본다. 사실이 그렇다. 지난 9년이란 시간이 어떤 기간이었나. 그 기간 동안 정권 교체를 위한 노력에 비해서 (북한 문제는) 등한시될 수밖에 없었던 거고,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몇 십년 동안 줄기차게 대남전략을 가지고 해왔던 거고, 또 국제사회는 우리 편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이렇게 어려울 때는 국민적 동의를 받는 담대한 정책이 되어야 하는데 저는 적어도 대북 문제에 대해서 국민적 동의를 얻으려는 노력이 너무 적었다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의 동조를 받으려는 노력은 있지만 말이다. 아직은 굉장히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 초기 2개월 동안 군사당국회담, 적십자회담 삐끗하는 걸 보면서 더 절감했다. 물론 ‘북이 문제다’라고 얘기하면 시원할 수는 있다. ‘왜 그럴까?’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대북특사를 보내는 게 필요하다고 보는 건가? 아니면 북한이 요구하듯 김련희 씨나 12명 종업원들을 돌려보내는 게 필요하다고 보나?

대북특사는 필요하다고 본다. 특사가 됐든 특사를 위한 특사가 됐든 여하튼간에 지난 몇 년간 거치면서 지금은 완전히 (남북관계가) 단세포가 되어 있지 않나. 적어도 2007년 10·4정상선언 때까지는 하나가 막혀도 다른 실핏줄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지난 몇 년간 다 막혀버렸다. 다양한 형태의 공식·비공식 대화라인을 만들어가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특사라는 건 조건이 되어야 하는데, 특사든 밀사든 공식적·비공식적 대화라인을 구축해 나가려는 노력, 그런 게 필요하다고 본다. 북이 내거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몇 개는 선언적 의미가 있다. 6·15공동선언 17주년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공동선언 이행 의지를 분명히 했고, 최근엔 ‘김정은 위원장’으로 호칭을 통일하도록 하는 등 몇 가지 전향적인 조치를 취했다. 북한도 그렇기 때문에 문 대통령에 대한 실명 공격은 못할 것이다. 이게 바로 맞교환이다. 이런 선제적 조치가 북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김련희 씨의 문제는 단순하면서도 어렵다. 우린 법적으로 한국 국민을 북에 돌려보낼 권한이 없다. 그냥 방북 승인 내주고 안돌아오게, 즉 불법체류가 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요즘 탈북자 한 명(임지현 씨)이 또 넘어가서 문제가 되고 있지 않나. 탈북자가 남한에 넘어왔는데 관리도 잘 못해 다시 돌아가겠다고 한다. 법적으로는 자기가 잘못해서(속아서) 왔기에 돌려보내는 게 어려울지 몰라도 인도적인 관점에서 보면 적어도 그런 인간적인 조치를 하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여기에 대한 국민적 판단은 다 다를 수 있다.

-그럼 지난해 4월 8일 총선을 5일 앞두고 통일부가 전격 발표한 ‘북한 종업원 12명 집단 탈북 및 입국’ 사건은 어떻게 봐야 하나? 돌려보내야 하나?

그건 다른 문제다. 북한은 12명 전원이 국정원의 공작이었고 본다. 평소 신변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는 탈북자 입국 관례와 다르게 우리 정부가 지난 총선 직전 그것을 발표했다. 누가 봐도 이것이 정치공작이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한다. 많은 국민들이 이런 의심을 갖고 있다. 새 정부가 합리적이라면 풀어줘야 한다고 본다. 국정원 적폐청산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노무현 시계’ 등 현 정부의 정치적 문제만 적폐로 볼 게 아니라 이런 걸 적폐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진지하게 요청한 거라면 우리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데, 여전히 새 정부에서도 ‘그들이 자유의사로 왔고 돌아갈 의사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 않나. 여전히 우리 국민들은 합리적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앞으로 새 정부가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단 만나야 하고, 10월 4일 민간 차원의 10·4선언 기념을 성사시키고, 이산가족 상봉시키고 이렇게 해서 올 하반기 안에 남북관계를 적어도 최소한 정상적 관계로 올려놔야 앞으로 할 일을 할 수 있는 건데 그러려면 지뢰들이 있다. 북이 12명 종업원 문제를 거론하며 이산가족 문제도 걸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이건 별개다’, ‘아무 문제없다’고 하지만 북의 주장이 무리하다고 한다면 그게 왜 무리한지 공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진지하게 북한에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유엔이나 민변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또 몇 개의 그런 크고 작은 지뢰들이 있다. 그 지뢰들을 제거해야 남북대화가 본격적으로 갈 수 있다. ‘우리가 삐라 뿌리면 민간단체의 자유이고 북이 삐라 뿌리면 도발’이고, 북핵은 불법이고 한미연합 군사훈련은 합법이고, 우리 희망대로 이산가족 상봉하고, 북핵 동결 입구로 들어가고 비핵화하고, 우리 희망대로 일정을 제시하고, 이런 방식은 아니라고 본다. 지난 17년간 북한도 변하고 우리도 변했지만 이렇게 변화된 상황을 고려하고 담대한 정책을 시작해야 하는데 자꾸 옛날 관성에 따라간다. 12명 종업원, 어떻게 하면 이것이 지뢰가 되지 않고 남북관계 개선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방법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는 빨리 푸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북이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점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자신있게 설명해 나가야 한다. 12명이 들어온 과정도 그렇고 하나원에서 나온 과정도 그렇고 합리적인 과정을 안거치고 있지 않나. 12명 다 북에 돌아가기 싫다고 한다는데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통일부는 (이들에 대해) 접견조차 안되고 있다. 12명 입국은 통일부가 발표한 거니까 통일부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12명에 대한 통일부의 접견권이 하나도 없다. 여전히 국정원 관리이다. 이걸 보면 정상적인 탈북이 아니라고 합리적인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다. 이게 북한 관련 문제이기에 국가 안보적인 측면이 있더라도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려면 이런 지뢰들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없이는 어렵다고 본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지난 6월 21일 창립 21주년 후원의 밤에서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정의롭고 건강한 한반도 평화공동체’를 비전으로, 민족 공동 발전과 남북간 격차해소를 위한 교류·협력의 확대, 이를 위한 평양사무소 설치 등을 핵심목표와 실천과제로 각각 제시했다.)

-우리민족서로돕기가 창립 21주년에 발표한 것 중에 한반도평화공동체, 평양사무소 설치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우리민족서로돕기는 대북지원에 초점을 둬왔는데 앞으로는 이걸 훨씬 뛰어넘는 사업을 하게 되는 건가?

20년의 경험에서 나온 거다. 저희가 인도적 지원을 표방하고 그런 원칙을 지향하고 있지만 20년간 절감한 게 남북관계는 특수성이 있기에 인도주의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남북한 정치에서 모든 게 좌우돼 나가는 거다. 남북한 정치 속으로 시민사회가 들어가서 그것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한반도 평화라는 큰 틀에서 작동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어떠한 것도 남북 특수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걸 뼈저리게 느꼈다. 남북관계와 상관없이 인도주의적 지원한다는 게 이제 먹히지 않는다는 거다. 북이나 남이나 마찬가지다. 인도주의 지원이라는 걸 한반도 평화라는 틀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인도주의 지원이 단순히 북한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차원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에 얼마나 기여하는 방향으로 가느냐, 그런 관점에서 인도주의 지원도 한반도 평화라는 큰 카테고리 내에서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제 대북 인도적 지원은 일방이 일방을, 즉 남쪽이 일방적으로 북에 지원하는 게 아니라 한반도의 건강한 평화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거다. 문 대통령이 신 베를린선언에서 영유아 얘기를 했는데 저는 그게 한반도 평화의 틀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즉 한반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게 평양이든 서울이든 신의주든 아주 어려운 데서 태어났건 상관없이 아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나가야 한다는 거다. 아동들도 건강하게 태어나고 살 권리가 있다. 남북이 서로 노력해서 한반도에 5세 미만의 아이들의 만성적인 영양실조를 책임지는 것이다(문 대통령은 지난 7월 8일 G20 회의에서 ‘2017년 UN 보고에 따르면 북한 전체 인구의 41%, 특히 5세 미만 아동의 28%가 영양실조 상태’라며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한 바 있다). 북의 아동 영양실조를 5% 이하로 내리고, 영아 사망율도 0%로 내려야 한다(북한의 영아 사망률-출생아 1천명당 1세 미만 사망자 수-은 약 23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4.51명보다 5.3배, 남한 3.86명보다 6.1배 높은 것으로 되어 있다). 심지어 결핵, 말라리아를 공동 퇴치하는 이런 공동의 비전을 갖자는 것, 푸르른 한반도의 생태계를 공동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걸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뭐라고 보나?

남한이 북을 돕는 게 아니라 남과 북이 협력해서 한반도가 보다 정의롭고 인권이 보장되고 평화로운 곳이 되도록, 공동의 번영을 보장하고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개념으로 인식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DMZ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의 산림황폐화다. 농업도 마찬가지다. 북한엔 아직도 배고픈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 언론에서는 ‘20년 전처럼 먹을 게 없어서 죽는 상황은 지났다’고 하는데 저는 이게 잘못됐다고 본다. 언제까지 20년 전인가. 그 기준에 따르면 1인당 하루 필요한 곡물이 400몇십 그램인데 언제까지 그만큼만 주겠다는 건가. 적어도 베트남처럼 600-700그램은 줘야 하고 그러려면 200만 톤의 식량이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30% 이내다. 적어도 남북이 공동의 농업개발과 농업협력을 통해 한반도 식량안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목축업이나 벼농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1년에 몇 십억 달러(몇 조원)를 들여 칠레나 브라질에서 돼지고기를 수입하는데 그럴 필요가 있냐는 거다. 북이 식량이 어려우니까 도와주자, 우리 나름대로 식량안보를 하자, 이 두 개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고 하나라는 것이다. 남북이 공동으로 한반도에 제2의 농업개발을 통해 식량안보를 공동 책임지는 공동체로 만들자는 거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농업이든 산림녹화든 보건의료든 각 분야에서 이제는 일방이 일방을 지원하는 단순지원이 아니라 공동의 개발협력을 통해 보다 발전된 선진 한반도로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본다. 통일을 얘기하기 전에 평화를 얘기하고 공생을 얘기하자는 거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민족서로돕기가 민족 공동의 협력사업을 비전으로 제시한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북한주민을 돕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공존 공영을 이루자, 그 안에서 남북한 격차를 줄이자, 저는 이것이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거라고 본다.

-지금 얘기하신 것은 남한의 구상 차원이 아니라 북한의 필요이자 요구이기도 한 건가? 지금 북은 단순 대북지원은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거니까.

그렇다. 그렇게 해야지만 북의 참여가 가능한 거고 그래야만 남북 공동의 작업이 가능한 거다. 그래서 필요한 게 평양사무소다. 5세 미만의 영양실조를 돕기 위해서는 한국판 유니세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 사무소를 평양, 서울에 두고 남북 전문가들이 공동 운영하면 된다. 기금도 만들어서 10년, 20년에 영유아 문제 해결책을 공동 모색하고, 한반도 농업개발을 모색하고, 한반도 보건의료협정을 맺어서 공동 감염병 퇴치를 해나가고, 산림녹화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경험이 있다. 노하우, 자금이 있다. 이걸 가지고 북의 필요성과 전문성과 결합해 공동 해결에 나선다면 놀라운 일이 한반도에서 일어날 것이다. 휴전선 남쪽에서 휴전선 북쪽으로 일방적으로 물자를 보내는 게 아니라 휴전선을 공동의 발전 개념으로 파악해 나가야 한다. 소위 말해서 한반도 평화의 개념 속에 인도적 지원을 배치해야지, 인도적 지원만 따로 떼어놓을 수는 없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어려운 동포들을 위한 최소한도의 인도적 지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민족 공동의 개발협력 사업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해나가야 하지 않겠나. 그러면 모든 게 달라질 거라 본다. 어떤 원칙이 되어야 하고, 어떤 조직이어야 하고, 어떻게 기금을 모아야 하고, 어떻게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야 하느냐,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남북이 서로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한 협력의 모델을 만들어가야 되느냐, 이런 판단에서 모든 걸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혹시 이 사업과 관련한 타임테이블 같은 게 있나? 예를 들어 평양사무소를 몇 년도에 설치하겠다 등.

비전은 20년이고, 계획은 5개년이다. 5개년 계획으로 하겠다는 거다. 남북 공동의 개발협력을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KOICA(한국국제협력단), 즉 한반도 공동 사회개발을 위한 코이카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거기에 그동안 해왔던 민간단체들이 밑받침이 되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축산, 기술공여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공동의 개발계획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우리민족서로돕기가 평양사무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되돌릴 수 없이 지속가능한, 예측가능한 개발협력의 룰이 정해지면 거꾸로 그것이 정치환경에 휘둘리지 않게 만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몇 년간의 공백이 오히려 약이 되는 측면도 있다. 새롭게 시작한다고 해도 우리가 2009년까지 일을 했으니까 2009년 이전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인가 모든 대북지원 단체가 고민해왔다.

-수년간의 남북간 공백이 오히려 본질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뜻인가?

그렇다. 다시 협력사업 재개한다면 뭘 할까, 아무도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면 그럼 2009년으로 되돌아가서 2009년에 중단된 사업을 재개하겠다?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많은 단체들이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고 있는데 다들 변했지 않나. 이런 변화를 인정하고 변화에 맞는 사업이 뭐가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지 국민들을 견인해낼 수 있고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북한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있으니까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국민들 마음을 얻고 지갑을 열게 할 수는 있겠지만 미래지향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정의롭고 평화롭고 인권이 보장된 한반도평화공동체를 민간단체들이 견인하겠다? 여기엔 새로운 깃발이 필요하지 않겠나.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거니까. 국민들이 다 평화를 요구하는데, 평화에 인도적 지원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이걸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좋은 취지인 것 같다. 지금 남북 상황으로 봤을 때 ‘통일’은 너무 먼 얘기 같고, 대신 ‘남북 교류’를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뭐라고 보나?

쉽게 말하면 대통령이 요즘 ‘운전석’ 얘기를 하는데 그 말을 꼬투리 잡는 건 아니지만 한쪽에서는 그런다. ‘그 운전석이 얼마나 위험한 줄 아느냐’, ‘그 차는 누구 차일까.’ 등. 결국 우리 정부의 의지에 달린 거라고 본다. 풀기 어려운 한반도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인데, 그 전제는 남북이 공동의 운명이라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북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다. 많은 국민들이 평화와 남북 교류를 원하지만 북에 대한 판단은 더 나빠진 게 사실이다. 저는 이럴 때 한반도의 운명을 남북이 공동으로 감당한다고 하는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고 본다. 북이 우리의 희망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진지한 대화와 설득을 통해서 공동의 로드맵을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이건 굉장히 지난한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일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진행해 나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출발이 쉽진 않지만 지나간 관성은 벗어버렸으면 좋겠다. 북의 변화를 현실 그대로 인정하면 좋겠다.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정부 주도의 대북정책을 하려면 안된다. 그게 과거 정부 실패의 원인이다. 민간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 그게 바로 민주주의 아닌가. 저는 그런 점에서 대북정책은 민주주의를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본다. 문 대통령이 미국에서 대접받고 유럽에서 대접받고 한 이유는 한반도에서 촛불 국민에 의한 새로운 정부, 이것을 국제사회가 존중해준 것 아닌가. 저는 이런 국민적 지지, 국제적 존중을 등에 업고 담대하게 해나갔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독점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북과의 대응에서 인내심이 필요하겠지만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대화하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북도 조건을 내세우지만 저는 남북대화가 되고 나서 관계 개선이 본격화되면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바꿔나갈 수 있는 힘도 저절로 생길 거라고 본다. 대화와 제재는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건 병행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화는 대화고 제재는 제재다. 대화와 제재가 서로 상관을 해나가면 아무것도 못한다. 대화와 제재가 서로 관여하지 않도록 해나가면서 대화는 대화대로 제재는 제재대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나가야 되는 거다. 그런 점에서 국제사회는 제재 분위기지만 한국은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더 많은 비중을 두고 해나가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 이게 대한민국의 숙명이지 않나 생각한다.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헌법 개정이 있을 것 같은데, 통일과 관련해서 개정될 헌법에 들어가야 할 부분은 뭐라고 보나?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최근 미국 정부가 자국민들의 북한 여행을 금지시켰다. 이걸 위해 법을 만들었다. 미국의 모든 대북제재나 북한 관련 법은 한시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든 대북 정책이 ‘통칭’이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개성공단 작살난다. 도대체 민간인들의 대북지원이 왜 중단됐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5·24조치 이것의 법적 근거는 뭔가? 통일과 관련된 모든 조치나 정책은 헌법상의 통칭이 아니라 구체적인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고 본다. 제재도 마찬가지고 인도적 지원도 마찬가지고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우리 헌법은 한반도를 북까지 포함한 부속도서로 보고 있고, 거기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수단체는 건국절을 주장했다. 건국절이 되는 순간 국가보안법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건국했으면 그걸로 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북한은 상관이 없게 된다. 우리의 건국일은 1948년 7월 17일이고 북은 48년 9월 9일 아닌가. 서로 다른 나라가 되는 건데 이건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거다. 보수정부나 보수단체가 이걸 알고 ‘건국절’을 주장한 건지 모르겠다. 우리 헌법 정신은 평화통일을 주장하지만 헌법이 규정하는 북은 여전히 주권을 참칭하고 있다.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런 것들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대북정책, 통일정책은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고 하는 걸 분명히 해서 정치적 환경이나 정권이 바뀌더라도 대북정책만큼은 일관성 있게 가야 한다. 서독도 그랬지 않나.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이번에 만들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통일 하면 전문가, 정치인들의 전유물로 생각하지 자기 자신과는 거리가 먼 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개인이 통일이나 평화, 남북교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저는 지금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평화, 평화로운 한반도라고 본다. 우리민족서로돕기도 ‘평화로운 한반도’가 비전인데, 문 대통령 정책도 보니까 공교롭게도 평화로운 한반도다. 평화는 자기가 관심 갖고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현재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해 나가다보면 답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그렇게 발전시켜 오지 않았나. 그런 의미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동포애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위해서는 일단 우리 시민들이 북한 주민들을 같은 동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면서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처럼 한강의 기적을 넘어 대동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기적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통일한국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분단으로 인해서 겪는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통해 남북한이 얻는 이득이 어느 정도인지를 꾸준하게 생각해야 나중에 자기 자신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겪는 분단, 한반도의 정치적 불안성이 얼마나 자기 자신의 삶에 마이너스가 되는지 따져보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분단이 주는 일상의 마이너스, 예를 든다면?

최근 젊은이들의 일자리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걸 한반도 경제로 돌파해 나가야 하는데 남한은 섬이지 않나.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북을 돕는 게 아니라 한반도 경제를 통해 그것이 우리의 일자리가 되고 우리의 경제적 발전이 된다. 그것을 통해 젊은이들이 꿈꿀 수 있는 다양한 직종이 열릴 수 있다. 그런 꿈을 갖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저는 북을 블루오션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적어도 블루오션과 같은, 우리 젊은이들한테 미래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걸 함께 고민해보자는 거다. 통일이 되면 내가 뭘 할 것인지를. 그러면 생각이 확 달라질 거다. 방학 때 뭘 할지를 생각해봐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비싼 돈 내고 산티아고 길을 걸을 필요가 없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처럼 북한을 거쳐 북경까지 가는 여행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의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하고 사고범위가 넓어져야 한다. DMZ라는 게 국토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 모든 걸 다 막아놓는다. DMZ 없는 한반도를 생각하는 순간 우리가 갖는 비전이나 지향은 몇 백배로 확 발전할 수 있다. 우리의 머릿속에 일단 DMZ를 없애버리고 교류가 자유롭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상상한다면 무한한 꿈을 꿀 수 있다. 그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할 것이다. 일단 꿈을 꿨으면 좋겠다. 저도 예전에 평양 갈 때 고려항공 기내에서 ‘이걸 중국으로 안가고 직항으로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더 이상 휴전선이 없고 교류, 평화가 깃든 한반도를 생각하면 얼마나 무한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겠나. 상상하고 꿈꾸는 건 개인의 권리이고 자유다. 그것을 꿈꾸게 하는 건 대한민국 정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상상력만 키우다가 또 현실을 보면 더욱 절망하지 않을까?(웃음)

뭐 그럴 수도 지만 지금은 아예 상상조차 못하니까. 일단 상상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끝>

[기사원문] 강영식 우리민족 사무총장이 말하는 남북관계 개선의 해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