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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래와 통일 한반도 (최완규 상임공동대표)

[기타]
작성자/Author
관리자
작성일/Date
2017-03-28 13:34
조회/Views
1485
<특별기고>

북한의 미래와 통일 한반도

최완규(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

/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한반도의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 중의 하나가 북한이다. 앞으로 북한이 어떤 선택과 변화를 추구하는가에 따라 남북한관계의 성격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한국의 정치경제 및 사회지형과 동북아지역체제의 모습도 심대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최근 한반도의 대내외적 상황을 감안할 때, 북한의 미래는 더 이상 추상적 영역의 논의 대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즉 단순한 연구대상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정치적 프로젝트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북한 사람들이 상정해 볼 수 있는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이 구상하는 미래를 어떻게 이해하고 관계하며 소통하는가에 따라 북한은 희망의 대상일수도 있고 역으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의 미래는 점차 예측보다는 구체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북한의 미래를 다루기 위한 최상위의 궁극적 과제는 역시 통일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반세기를 넘는 세월 동안 분단 상황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통일논의는 점점 수사화 내지 신화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 논리에 밀려 통일의 당사자인 남북한의 역할 공간 역시 축소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이 고착된 것은 남북한이 힘을 모아 주도하는 통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암묵적 전제 하에 남북한 모두 적대적 상호의존의 통일정치 게임을 일상화시켰기 때문이다. 적어도 통일문제가 논의와 운동 수준에서 현실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와 같은 고정관념과 관성을 과감하게 털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통일과 연관된 복잡한 고리들을 좀 더 단순화시키고 때로는 사고의 단절적 도약, 혹은 발상의 전환도 각오해야 한다.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두 개 이상의 정치공동체가 하나로 통일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을 선택하던 간에 일종의 도약이 필요했고 이 도약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 기초한 새로운 비전, 정치적 의지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기예가 있을 때만 성공할 수 있었다.

한반도의 분단은 국토와 정치, 경제, 군사적 분리 및 대립 뿐 아니라 사회, 문화, 심리 등 여러 차원의 문제들을 야기 시켰다. 냉전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여전히 적과 우군을 가르는 냉전적 이분법과 사상의 획일주의, 군사주의, 국가주의 그리고 편협한 민족주의 경쟁의 산실로 남아 있다. 또한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사유 방식, 적대와 위기의식 등으로 특징화되는 분단주체들이 형성되고 의사소통의 경직화 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것은 창조적 사고, 토론과 협상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자유와 권리에 기초한 사회 형성 역량의 제약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분단은 남북한 주민들의 삶의 일상적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식과 남북한의 전환적 상황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통일담론을 만들어야만 한다. 이때의 담론은 당연히 통일코리아의 미래비전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 이제 새 통일 담론의 얼개와 그것을 구체화할 몇 가지 선차적 의제들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의제들을 쟁점화 함으로써 그것을 사회적 실천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통일담론의 얼개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가정을 토대로 다듬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한반도 분단과 통일의 문제는 체제와 이념의 문제인 동시에 남북한과 강대국이 연계된 민족의 문제이다. 적어도 분단된 한반도에서만은 민족의 문제제기가 강대국적 발상의 낡은 자민족중심주의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주변 세력 중 어느 일방에 경도되지 않고 균형을 유지했을 때 가능했었다. 냉전이 해체된 이후에도 한반도의 분단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주된 이유는 대륙 강대국과 해양 강대국들이 한반도에 대한 공동이익의 영역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고 남북한 역시 한반도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보다는 이들 세력의 어느 한 편에 안주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최후의 열쇠는 남북한 당사자들이 쥐고 있다. 강대국들의 한반도 분단과 휴전협정 체결과정, 그 후의 정책들을 역사적으로 되돌아 볼 때, 한반도 문제가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정책의 종속변수가 되면 근본적으로 풀어내기 어렵다.

셋째, 최근의 한반도 상황에 견주어 볼 때, 민족적 유대를 전제하지 않는 비대칭적 국제연대 내지 협력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보다는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킬 위험성이 있다. 남북한관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항상 대외적으로 고립된 일방이 고립되지 않은 일방에 대해서 공세를 강화하여 긴장을 고조시켰다.

넷째, 통일은 우리 민족을 기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분단 이전의 민족으로 회귀하려는 복고적 태도나 배타적인 자민족 중심주의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문화 현상과 복합적 동북아 신질서를 유의하면서 통일은 다중적 주체가 서로 소통하면서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민족’은 이러한 현상을 담아낼 수 있도록 재 개념화해야 한다. 또한 통일은 세계와 함께 호흡하는 열린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통일의 실현을 위해서는 국내의 다양성을 창조적으로 조직하고, 국제적 협력 체제를 긴밀히 구축해 나가야 한다.

다섯째, 이런 의미에서 한반도 통일은 반드시 분단이전의 단일국가체제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통일의 모습으로 여러 가지 형태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이 시점에서 평화적 방식의 가능한 최소 통일 형태로서 남북한과 해외 동포들을 포괄할 수 있는 상징적 통일 수준의 코리아 공동체를 상정할 수도 있다. 이 공동체는 남북한이 공동이익 가능영역을 점진적으로 확대시키는 방법을 통해서만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무리하게 단일국가체제 방식의 통일을 추구한다면 다시 한 번 비극적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내적 식민지화 현상 등 국가통합의 위기 때문에 민족통합에 실패할 공산이 크다. 이 시점에서는 코리아 공동체나 공동시장을 통한 국가연합 구성 방식이야말로 온전한 단일국가체제의 통일을 지향하는 가장 빠르고 옳은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한, 북한은 통일의 일방적 대상이 아니라 소통과 관계맺음을 통해서 통일 코리아가 추구해야 할 정치. 경제. 사회문화 영역의 새로운 규범적 가치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할 협력의 대상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일은 어느 일방의 변화를 강제하는 정치 경제적 통합보다는 우선 상호 변화를 통한 사회문화적 융합을 일구어내는 것이다.

사실 무력통일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면 통일은 단순한 민족의 재결합이거나 어느 일방의 이념과 제도를 타방에게 일방적으로 이식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때의 통일은 차이와 평등, 다름과 통합을 공명시키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일곱째, 기능주의 통합론에 근거한 기존의 대북 및 통일정책을 부분적으로 수정 보완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 사이의 진정한 신뢰와 교류 협력은 단순하게 기능적 연계망의 확대만으로는 어렵다. 기능적 필요에 의한 통합은 원래체제와 이념 및 사회문화적 배경이 유사한 국가 간에 추진되어 온 통합의 방식이다. 남북한은 한 민족이지만 이념과 제도 사회문화적 특성이 매우 다르다. 따라서 기능통합에 앞서 마음체계나 이념 및 제도의 상용도를 높이는 일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통일의 얼개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선 북한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정립하고 그것을 보편화시킬 수 있는 논의를 본격화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시각이 현실을 재구성하는 경우가 있다. 시각은 각 영역별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 강화시키는 중요한 기제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번 형성된 시각은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반증 불가능한 그릇된 시각과 가정에 기초한 대북정책은 재앙을 부를 수 있다. 북한이 점점 반증 불가능한 존재에서 반증 가능한 존재로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하면서 기존의 북한을 보는 시각들을 평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각을 기초로 북한이 대내외적 위기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체제내구력의 기본 동력을 유지하고 있는 원인을 유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사실 고난의 행군시기 이후 북한은 인민의 자발적 순응 및 동원기제로 유지되는 체제가 아니라 최소화된 핵심 지배 블록의 응집력을 토대로 버티고 있는 체제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위기대응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장화 현상을 비롯한 북한 사회 내부의 일련의 미시적 수준의 변화 징후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현상이 북한체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정교하게 분석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기존의 대북정책의 현실 적합성의 문제를 검토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사실상 분단이후 역대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은 정책의 대상인 북한을 타자화 시키는 것이었다. 무력으로 강제하지 않는 한, 정책의 다른 한 당사자를 배제한 정책의 성공을 바라는 것은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북한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 강압적 수단과 유화적 수단 중 어느 방식이 더 현실성을 갖는 수단인가를 철저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정권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하며 상대방을 대등한 참가자로 인정하는 정책이야말로 신뢰를 바탕으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적실성 있는 대북 정책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전제를 토대로 남북이 함께 살 수 있는 하나의 코리아를 형성할 수 있는 정책방안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가야 한다.

분단의 미래는 당연히 통일이어야 한다. 우리는 분단을 기정사실화하는 전도된 현실에서 철저하게 탈피해야 한다. 민족의 문제(남북관계, 통일)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진정한 자주. 민주. 평화. 복지국가를 만들어낼 수 없다. 남북한관계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민족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우리가 자주. 민주. 평화.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일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 우리는 민족의 논리와 자본(시장)의 논리를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면서 단계적 연속적 통합과정의 전형적 경로인 경제교류→공동시장(경제공동체)→다원적 안보공동체→국가연합→연방 또는 단일국민국가체제 수립의 길이 가장 현실적인 통일의 길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통일의 대내외적 환경을 무시하고 수사적 차원에서 단일국민국가체제 수립만이 진정한 통일임을 고집하면 역설적으로 통일의 가능성은 그만큼 멀어질 것이다. 그 보다는 오히려 당분간 통일 목표의 최대치를 국가연합 정도를 구성하는 것으로 축소하면서 단계적 연속적 통합의 과정을 밟아 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 진 다면 비로소 통일은 실현 불가능한 꿈에서 실현 가능한 꿈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긴 호흡에서 보면 통일목표의 최소화라는 발상의 전환이야 말로 가장 빠르고 올바른 완전 통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